한진중공업 최강서 동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이운남 동지가 22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사망했다.
올해 마흔 둘인 이운남 동지는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설립에 참여해 조직부장으로 활동한 이유로 2003년 해고됐다. 2004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분신한 사건은 고인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고인은 이 사건에 항의하며 현대중공업 내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다가 폭행당하며 끌려내려 왔고 구속까지 됐다. 한 지인은 고인이 “심성이 여려 그 기억을 계속 잊지 못하고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택시운전을 하며 어려운 생계와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 최근에는 12월 21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폭행을 당하면서도 파업을 사수하는 사진을 보며 “함께 하지 못해 괴롭다”고 고통스러워 했다. 특히 한진중공업 최강서 동지의 자살을 슬퍼하며 지인에게 울며 전화했다고 한다.
함께 택시운전을 했던 택시 해고 노동자는 “8년 해고 생활 때문인지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이운남 동지가 웃으며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 꼭 승리하길 빈다’고 했다. 지난 추석 즈음 1인 시위를 하던 내게 찾아와 건넨 말이다. 그 미소가 자꾸 떠올라 가슴이 메인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운남 동지의 죽음은 명백히 정몽준이 강요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사내하청 노조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19일 이운남 동지의 빈소를 찾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한 조합원은 “2003-4년 현대중공업은 노조 활동을 하면 조합원이 있는 해당 하청 업체를 통째로 들어내기(업체 폐업)도 했어요. 일명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해고 노동자가 인근 사업장에 취업도 못하게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해고되지 않은 조합원들은 잔업과 특근도 못하게 해 생계 압박을 주고 있죠. 이런 식으로 사내하청 지회를 고사시키려 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노조 깃발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며 계속되는 노조 탄압에 치를 떨었다.
덧붙여 그는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 소중한 목숨 스스로 끊었을까요. 살아남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힘내서 되갚아줘야 합니다”하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고인의 장례를 노동자장으로 치를 예정이며 현대중공업 정몽준의 책임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다.
오늘의 죽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선거에서는 박근혜가 이겼지만 투쟁에서의 성패는 결정되지 않았다. 분노를 차곡차곡 쌓으며 참을성 있게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많은 노동자와 투사들이 이운남 동지를 애도하면서 마음 속으로 분노의 칼을 갈고 있을 것이다.
탄압 속에서도 투쟁했고, 그 탄압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 삶을 마감한 이운남 동지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