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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망각을 거부하라》,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1949~2009》 상·하:
현대 중국 민중 투쟁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

중국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온다.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최고 지도자를 다룬 피상적 전기들이 나오고 이전 지도자들의 전기는 헌책방이나 할인 책방으로 간다. 반면에 중국을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인 중국 노동자·민중 투쟁에 관해 알고 싶은 독자들은 읽을 책이 별로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첸리췬(전리군)의 《망각을 거부하라》(이하 《망각》)와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1949~2009》(이하 《모택동》)가 출간된 것은 매우 반갑다.

이 책들은 중국 국가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가장 탁월한 과학적 분석을 제공하진 않지만, 그런 분석을 가능케 할 사실들을 지금껏 국내에 출간된 중국 관련 책들 중 가장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다.

일반적 상식과 달리 마오쩌둥 시대 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군사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중국은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짜는 폐쇄적 국가자본주의 체제였다. 이 체제에서 주된 착취자는 민간 자본가가 아니라 당과 국가의 고위 관료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가 미국과 소련이라는 세계 양대 열강과 군사적으로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공산당 관료들은 노동자·민중의 민주적 권리를 박탈하고 혹독한 착취를 강요했다. 당연히 관료들은 이런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자기 배를 채웠다.

관료 계급

예컨대, 《망각》에 인용된 한 사례를 보자. 1956년 7월 신화사 기자 다이황은 고향 근처 마을을 방문했다. ‘신중국’ 기치 아래 발전한 마을 모습을 기대했던 그는 충격을 받았다.

“고향 마을 친지들의 삶을 보면서 마음은 더 떨려 왔다. …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지 못했고 몸을 가릴 의복조차 없었으며 불치의 병이 아니면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해방 후 짧은 몇 년 사이에, 이곳의 일부 공산당원 간부들이 ‘신 악덕 지주’가 돼 버린 것이었다. … 1954년 그[당 간부]는 세 칸의 큰 집을 지었는데, 모든 기와와 벽돌은 다른 집에서 가져왔고 사람들을 무노임으로 부려 먹었다. 일하던 농민이 점심을 먹고 일하자고 요구했다가 사람들 앞에서 두드려 맞아 정신을 잃었다. … 사방에서는 ‘이 개자식들이 어디 공산당이란 말이냐? 그야말로 국민당이 부활한 것이지!!!’라는 원망의 소리가 일었다.”

다이황은 마오쩌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착취 관료 계급의 존재를 제기했다.

“이 편지에서 제가 중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관료 통치와 특권 계급의 유무’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 올 여름 여러 도시와 농촌을 다니면서 이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이 확연하고 명확해졌습니다. 즉 [중국에는] 특권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 전역에서 다이황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당시 베이징대학 학생이던 린시링은 연단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현재의 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 진정한 사회주의는 아주 민주적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민주적이지 않다. … 우리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들의 약점은 다른 관료들은 몰라도 마오쩌둥만은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수용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 그들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됐고 마오쩌둥의 해괴한 ‘과학적 사고’ ─ 계급이 핏줄에 따라 유전된다는 생각 ─ 에 따라 연좌제가 적용돼 그들의 가족도 우파로 낙인찍혔다. 강제수용소에서 그들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한 ‘우파’는 너무 배가 고파 몰래 생보리를 많이 먹고 뜨거운 물을 마셨다가 보리가 발효돼 고통 속에 발버둥치다 죽었다. 그러자 한 당 관료가 이 ‘우파 가족들’을 모아 놓고 시체 앞에서 일장 연설을 했다.

“우파 분자인 쉬00이 생보리를 먹고 배가 부풀어 죽었다. …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개조를 따르지 않고 당에 완강히 대항하더니 자기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간 것이다.”

“엄마, 무엇 때문에 엄마를 ‘대우파’, ‘나쁜 년’이라고 부르고 나를 ‘소우파’라고 부르지” 하고 불만을 토로하던 린시링의 어린 아들은 국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이런 ‘반우파’ 탄압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정부 발표로도 55만 명에 이르지만, 첸리췬은 전문가를 인용해 최대 2백만 명이 우파로 낙인찍혀 고통받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그렇게 가혹하게 탄압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당시 경찰 보고서를 보면 지배자들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공산당 정책에 항의하는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그중에는 무려 20만 명 이상이 참가한 것도 있었다.

공산당 지배자들은 체제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일부 개인들의 분석이 이런 분산된 운동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운동을 결합시키는 구실을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예컨대, 린시링의 연설이 끝난 후 일부 학생들이 “만약 지금 중국에 헝가리와 같은 사건[1956년 헝가리 혁명]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거리로 나가 시위할 것이다” 하고 말한 것은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문화혁명

《망각》이 1957년을 전후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마오주의 체제의 문제를 다뤘다면 《모택동》은 마오주의 시대부터 개혁·개방 때까지 현대 공산당 통치 체제 전체를 대상으로 문제의식을 확장한다.

이 책에는 지난 60년간 중국 체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계, 인용, 숨겨진 사건 들이 매우 풍부하게 기록돼 있다.

예컨대, 1960년 중공업 산업 육성을 위해 계란의 80퍼센트를 국가가 강제로 징발해 수출하고 남은 20퍼센트를 공산당 고위 관료들이 독점했다. 이를 두고 당시 국가 재정부장이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인데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달걀을 먹지 못하고, 노동자 농민 연맹인데 노동자 농민이 모두 달걀을 먹지 못한다”고 논평한 부분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 책에서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문화혁명’(이하 문혁) 부분이다. ‘문혁’에 아래로부터 혁명 성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이 부분을 반드시 읽어 보기 바란다.

저자는 마오쩌둥이 의도한 것과 문혁이 낳은 지배자들의 분열을 이용해 노동자·민중이 자기 요구를 제시한 것을 구분해, 문혁에 대한 온갖 혼란한 주장들보다 한발 앞서 나간다. 예컨대, 마오쩌둥은 ‘반란은 정당하다’고 말했지만, 막상 중국 노동자들이 “개인의 정당한 이익을 쟁취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고자” 하자 이들에게 ‘반혁명 경제주의’라는 죄명을 씌우고 진압했다.

정반대로, 한국 우파들의 머릿속에서 문혁과 홍위병은 ‘책임 있는’ 엘리트들이 민중의 ‘과도한 요구’를 억누르지 않았을 때, ‘무책임한’ 민중이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견해에 반대해 “지금 수많은 사람이 문혁 중의 학살과 사망을 홍위병과 조반파의 ‘폭민’ 행위로 전가하는데, 이는 국가체제의 죄과에 대한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은폐와 면책입니다” 하고 주장한다.

‘봉건 사회주의’

저자는 문혁 당시 마오쩌둥과 중국 체제 자체에 대해 총체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 ‘반정부 사상’들에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설명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반정부 사상’들은 마오쩌둥 시대 성격에 대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많은 이들은 문제의 근원이 세계적 자본주의 경쟁 체제가 아니라 중국 사회의 ‘봉건적 유산’에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문제가 ‘봉건 사회주의’였다면 기존 공산당 틀 내에서 ‘봉건’을 지우기 위한 개혁 투쟁으로 충분할 것이었다.

반면에, 진이진 등은 국가가 자본가 구실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진이진은 중국 노동자가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력 없이 자기 노동력만 파는 상품이자 “무조건적 복종물”이 됐고 공산당 관료들이 “권력귀족 자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도 중국이 아직 자본주의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존 틀 내에서의 ‘민주혁명’, 즉 정치혁명이면 충분하다고 봤다.

이들이 공산당과 국가에 독립적인 정치 조직을 결성하는 데 실패한 것은 공산당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1949년 혁명의 역사적 유산과 맹렬한 탄압 외에도 이런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첸리췬의 책들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첸리췬 자신이 이 체제의 근본 동력을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반정부 사상’들의 약점을 공유하고 있다.

첸리췬은 때로는 “[중국의 60년간의] 발전 성과는 노동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이익을 침해했습니다. 이는 사회주의 기본 원칙에 완전히 위배되는 현상인데, 왜 자칭 ‘사회주의’라는 국가에서 반복해 발생하는 것일까요?”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마오쩌둥 개인의 소신이 체제 전체의 문제를 초래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둘째, 첸리췬의 책에서 이른바 ‘포스트 모택동 시대’를 다룬 부분은 그 이전 부분보다 훨씬 덜 흥미롭다. 특히 실망스러운 부분은 1989년 톈안먼 항쟁을 다룬 부분이다. 이 운동은 첸리췬이 상세히 다룬 그 어떤 운동보다도 더 강력하게 중국 통치 체제의 근간을 뒤흔든 초대형 대중 운동이었는데도, 이 책에서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셋째, 서술 방식과 분량이다. 이 책들은 중국 역사를 친절하게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역사 지식을 어느 정도 알고 읽는 것이 좋다. 또, 《망각》이 7백 쪽, 《모택동》이 모두 1천 쪽이다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지나치게 비싼 책값도 부담스럽다.

현대 중국 자본주의를 더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찰리 호어가 쓴 《천안문으로 가는 길》(책갈피)을 추천한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현대 중국의 역사를 매우 명료하게 분석한 이 책은 첸리췬의 책을 뛰어넘는 장점이 있다.

물론 같은 시기 중국 민중 투쟁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첸리췬의 책들은 매우 훌륭하고 심지어 감동적인 자료 구실을 할 것이다.

천안문으로 가는 길

20세기 현대 중국사의 불꽃

찰리 호어 지음 | 김희정 옮김 | 263쪽 | 10,000원 |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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