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사태로 살펴 보는 공공의료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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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공공병원은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
공공병원은 정부가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병원을 뜻한다.
진주의료원 같은 지방의료원뿐 아니라 유일한 국립의료원인 국립중앙의료원, 목포결핵병원, 정신병원 등 특수 병원도 공공병원이다. 규모는 작지만 시군구 보건소와 보건지소도 공공병원이고, 가장 규모가 큰 국립대병원도 형식적으로는 공공병원에 포함된다.
이것만 봐도 공공병원의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과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공공병원은 돈과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민간병원이 하지 않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예방, 보건, 위생관리 등 공공병원이 수행하는 공공의료 사업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적은 비용으로 엄청나게 큰 효과를 낸다.
물론 국립대병원을 제외하면 대다수 공공병원의 서비스 질이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주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재정 지원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정 지원을 조금만 늘려도 의료의 질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
진주의료원만 해도 새 건물로 옮긴 뒤 환자와 노동자 모두 평가를 좋게 했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 사업으로 전국 최고 수준의 간병 서비스를 제공했다. 재정 지원이 비교적 탄탄한 국립암센터는 이 나라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가 스스로 공공병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것은 단지 재정 문제만이 아니다.
국민 건강에 끼친 실제 영향보다는 겉보기에 화려한 최신 의료장비나 대형 건물, 궁극적으로는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익성이 가장 중요한 평가 척도가 됐다. 보건의료에서 시장 논리를 강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과잉 진료와 약물 남용만 늘어났다.
무엇보다 공공병원 자체가 너무 적다. 유럽 선진국들에서 공공병원 비율은 대개 80퍼센트를 넘는다. 한국은 병원 수로 따지면 6퍼센트도 안 되고 병원 침대 수로 따지면 10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처럼 민간병원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존재하는 공공병원은, 영국처럼 대부분의 병원이 공공병원인 나라에서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약품이나 기기 등 재료의 가격이 민간병원의 수익 수준에 맞춰져 똑같은 재료를 써야 하는 공공병원의 부담이 갈수록 커진다. 민간병원에서 ‘성공’의 기회를 찾으려는 의사들을 고용하는 데도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든다. 민간병원의 과잉진료는 되레 공공병원의 진료를 뒤떨어진 것으로 보이게 한다.
요컨대 한국의 공공병원이 낙후한 것은 정부의 투자 부족과 시장화 정책 때문이다.
02 대다수 병원을 국가가 운영하는 나라에서도 문제가 많다?
이 나라 우파들은 많은 사람들이 영국, 스웨덴, 프랑스 같은 나라의 복지 제도를 부러워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래서 영국 같은 나라의 공공의료 제도도 문제가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영국 같은 곳에서는 한국과 달리 가족 중 누구 하나만 중병에 걸리면 ‘기둥 뿌리’가 뽑히고 돈이 없어서 부모와 자식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일은 드물다.
물론 영국에서도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공공병원에 대한 정부 투자가 자꾸 줄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최근 영국에서 논란이 된 스태퍼드 병원의 사례가 이를 보여 준다. 영국의 한 보건 기구가 2007년에 이 병원의 사망률이 유난히 높은 것을 발견해 조사단을 파견했다. 조사 결과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이 병원에서 경영진과 의료진의 직무 유기 때문에 1천2백 명이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공공병원 중심의 영국 의료체계가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고 보도했지만 진실은 정반대였다.
영국 정부는 2000년대 내내 공공병원에 시장 논리를 강요했다. 영국 정부는 스태퍼드 병원 같은 공공병원이 일정한 수익을 내면 경영 자율권을 일부 행사하도록 해주는 정책을 추진했다.
스태퍼드 병원은 수익성을 높이려고 2006~07년에만 예산을 1천6백50억 원이나 삭감했다. 이에 따라 간호사가 52명이나 줄었는데, 이미 간호사가 정원에서 77명이나 부족한 상황이었다. 감사 보고서는 “병원 직원이 모자라는 참에 간호사를 줄인 것을 보면 병원 이사회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었다. … 병원 이사회 기록을 보면, 온통 인력 감축이 낳는 경제 효과 얘기만 있다” 하고 지적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사건을 두고 “의료 분야에 만연한 돈과 인센티브, 성과에 집착하는 불건전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노동자들은 대처 이후 최악의 의료 민영화(사영화) 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다. 4월에는 3만 명이 ‘스태퍼드 병원을 지키자’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03 공공병원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현재 턱없이 부족한 국립병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특수병원을 제외하면 종합병원 수준의 ‘국립’ 의료원은 전국에 단 한 곳뿐이다. 게다가 법인화한 상태다.
정부가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는 국립병원을 전국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진주의료원 같은 지방의료원을 중앙정부가 국립화하면 지역별 격차에서 비롯한 재정난을 해결하고 의료의 질도 상향평준화할 수 있다.
이런 국립병원이 대폭 늘어나면 의료 서비스를 표준화해 과잉진료나 엉터리 진료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제약회사의 폭리와 약물 남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낭비적이고 무계획적인 시장이 아니라 정부의 체계적 관리와 계획이 전체 의료의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불안을 부추겨 폭리를 취하는 보험 광고, 외모 차별을 부추기는 성형 광고도 규제해야 한다.
이런 조처들은 노동자 개인의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도움이 된다.
정부가 이런 조처를 추진하면 지금까지 시장화된 의료 체계에서 이윤을 벌어들이던 병원, 보험사,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 등이 대거 저항에 나설 것이다. 늘어나는 세금 부담과 국가 개입을 반대하는 자본가 계급 전체가 반발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공공병원을 늘리는 과제는 거대한 사회 개혁 투쟁과 결합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이런 투쟁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체제에 타격을 가할 능력을 가진 조직된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 필수적이다.
진주의료원 폐쇄에 맞선 투쟁과 사영화에 맞선 투쟁이 결합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