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두 번째로 ‘맑시즘’ 포럼에 참가했다. 지난해 처음 맑시즘에 참가하고서 굉장히 강렬한 느낌과 인상을 받았다. 근본적인 사회변혁에 대해 이토록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연설과 청중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그렇게 현장감 있게 경험해 본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서 ‘좌파 몽상가’나 ‘이상주의자’ 딱지를 달고 사는 운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진지하고, 분석적이며, 실천적인 고민과 토론을 집중적으로 해나가는 모습들을 보며 나 스스로도 물렁물렁해진 사회적 정체성과 희미해진 계급적 관점, 자본에 포획된 노예적 일상의 단면 등 많은 것을 돌아 보고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래서 올해도 다른 일정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일 참가를 결정했던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가 집단무의식으로 작동하고,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건재한 한국사회에서 맑시즘이 13년간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맑스 르네상스’의 유령이 전 세계를 떠돌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아니, 사실 진정한 마르크스는 아직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국내에는 다양한 형태와 주제의 포럼과 학술세미나들이 연중 기획되고 진행된다. 하지만 60명 넘는 연사가 60개가 넘는 주제로 나흘간 집중적인 연설과 토론을, 연인원 5천 명에 육박하는 참가자들의 자발적 열정을 통해 성사되는 포럼은 단언컨대 맑시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20대에 마르크스에 경도돼 보지 않은 사람은 바보지만, 40대가 돼서도 마르크스에 경도돼 있는 사람 역시 바보다.”
이 말은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자들이 종종 써먹는 말이다. 맑시즘은 이러한 비판, 아니 비난이 얼마나 근거가 박약하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악의적 왜곡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줬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이나 기득권의 프레임, 어용학자들이나 자유주의 내지는 수구 언론들의 마르크스주의 분탕질이 얼마나 끔찍한 편견과 곡해로 가득차 있는지를 올바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맑시즘은 유익했다.
다양한 주제의 토론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분석력과 혁명의 실현 가능 전략으로서의 이론적 면모에 대해 초보적 이해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현실 감각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됐고,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한다. 물론 다소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나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사를 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교육 문제에 특히 더 관심이 많다. 마르크스주의의 통찰과 인식은 내가 교사로서 어떤 태도와 세계관을 가지고 교육 활동을 해야 하는지, 전교조 활동과 그 외 노동자 투쟁에 왜 연대해야 하는지, 국내 현안을 넘어서는 관심과 실천이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 매우 명료하고도 설득력 있는 내용임을 이번 맑시즘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지난해보다 풍부해진 주제와 내용들을 보면서 맑시즘이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동자연대다함께 여러분께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행사 내내 보여 준 노동자연대다함께 회원들의 친절과 따뜻한 인간미, 명료한 주장들은 맑시즘을 다시 찾게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음을 고백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야만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죽으려야 죽을 수가 없다. 천국에서 《신(新)자본론》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마르크스도 본인이 그만 얘기되는 세상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전 지구에서 자본주의가 종식되는 날까지 한국 최대 진보 포럼 맑시즘이 그 구실을 계속 이어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