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확인하는 17대 국회와 민주노동당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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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확인하는 17대 국회와 민주노동당 전망
최일붕
필자는 〈다함께〉 신문 29-30호에서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첫째, 총선 후 기대와 희망은 지난 대선 후 기대와 희망과 비슷하다. 그러나, 대선 후 기대와 희망과 마찬가지로, 4·15총선 후 기대와 희망도 실망과 분노로 바뀔 것이다.
이 일은 벌써 일어나고 있다. 열우당의 인기는 폭락했다. 총선 뒤 겨우 두 달밖에 안 된 시점인 김선일 씨 피랍 사건 전에 이미 노무현과 열우당 지지도는 3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김선일 씨 살해 사건과 문화관광부 장관 청탁설이 불거진 지금은 더 떨어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의 정국은 1997년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처럼 [주류] 정당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정치적 격변이 특징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둘째, 그러나 이것이 보수 반동을 강화하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한편으로 우파인 한나라당이 성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좌파인 민주노동당이 성장하는 정치 양극화가 전개될 것이다.
이 일도 벌써 일어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인기는 주류 정당들과 사실상 엇비슷하다. 첨예한 경제·정치 위기의 시대에 신생 노동자 정당은 매우 급속히 성장할 수 있다. 가령 그리스 사회당(PASOK)은 군사독재 정권이 물러난(1974년) 지 겨우 7년 만에 집권할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도 노동자당(PT)은 창당한 지 10년도 안 된 시점인 1989년 대선에서 47퍼센트의 표를 얻었다.
셋째, 민주노동당 내 좌파도 성장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이는 당직 선거에 반영됐다. ‘국민파’로 분류될 수 있는 옛 지도부가 물러난 자리에 대부분 ‘자주파’ 소속 당원들이 선출됐다. 그리고 김선일 씨 피살 방치 항의 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은 공공연히 노무현 퇴진을 주장하는 박용진 씨가 공동 대변인 중 한 명이 됐다.
넷째,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사회민주주의적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인사들과의 대화, 노회찬의 〈조선일보〉 관련 발언, 모건 스탠리 경영진과의 대화에서 이재영 전 정책국장의 “기업 국유화 계획 없다” 발언 등이 있었다.
민주노동당의 이런 사회민주주의적 본질은 바뀔 수 없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의 기반은 노동조합(민주노총) 상근간부층과 ‘진보적’ 지식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함께〉 신문 지지자들을 포함한 반자본주의자들과 급진 좌파는 되도록 민주노동당에 입당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계급의식의 불균등 발전 때문이다. 노동자 대중의 의식은 노동조합 의식에서 사회주의 의식으로 도약하지 않는다. 가령 선진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차노조 내 현장조합원 그룹들의 성원들은 거의 다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다.
(2) 상당수 간부들을 포함해 적잖은 민주노동당원들이 아직 명확히 자의식적인 개량주의자들이 아니다.
(3) 대중적 입증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스 사회당과 브라질 PT(노동자당)의 경우 각각 10여 년과 20여 년 걸렸다. 레닌·트로츠키·룩셈부르크 모두 1914년 이전까지 제2인터내셔널 소속이었다.
물론 경제와 정치의 위기와 이로 말미암은 사회 양극화(빈부격차)와 정치 양극화(좌우대립) 때문에 21세기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그 본질이 더 빨리 입증될 수도 있다.
물론 대중적 입증의 때가 온다 한들 더 나은 대안이 그 때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정치적 공백은 다시금 주류 정당들에 의해 메워질 것이다. 대부분의 서유럽 나라들에서 우파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교대로 집권하면서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가 갈수록 낮아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다함께〉 지지자들은 당내 우파에 맞서 좌파를 강화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당이 현재의 좌파적 성격을 되도록 오래 견지하게 하고, 트로츠키가 “의회 백치병”이라고 부른 것에 오랫동안 걸리지 않도록 분투해야 한다(가령 당직-의원직 겸직 불허 조처).
이것은, 비유를 들면, 독립적 노동조합의 건설 초기나 노동운동 고양기에 변혁적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 집행기구에 직접 진출하거나 적어도 좌파 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다함께〉 지지자가 고위 당직에 선출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당한 득표를 할 수 있다면 낙선이 예상되더라도 정치적 선전의 기회를 위해 각급 당직 선거에 참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운동이 침체하기 시작할 때는 당 지도자들이 급진 좌파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할 수 있다. 그러기 전까지는 이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좌파 재결집체(left regroument)이자 ‘광범한 사회주의 정당’이다. 현 시기에 이런 당은 기여할 것이 매우 많은 유용한 조직이다.
그와 동시에, 그 안에서 변혁적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한 반자본주의적 급진주의자들이 자체의 급진 좌파 블록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부시 일당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가 이라크 ‘수렁’에서 고사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고, 노무현이 다시 ‘불신임’을 거론해야만 하는 현 상황은 민주노동당과 그 내부의 진정한 좌파에게 기회가 열려 있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