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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우리 편을 위한 영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
[편집자] 이 영화평의 필자 애덤 털(Adam Turl)은 미국 사회주의자이다.
이라크 “주권”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첩자 이야드 알라위에게 이양된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을 정당화해 온 많은 거짓말에 또 하나의 사기극을 보탠 것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에 대한 반응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거짓말에 신물이 나 있고 뭔가 해결책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들의 절반 이상이 이라크 전쟁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었으며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뉴욕 시에서 오클라호마 시까지 〈화씨 9/11〉이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도 당연하다. 개봉관의 3분의 1이 여름철 블록버스터를 상영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권력자들을 조롱하는 문제에 관한 한 무어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대통령 취임 뒤 조지 W 부시는 뻔질나게 골프장에 가는데, 하루는 몰려든 기자들 앞에 잠깐 멈춰 서서 우리는 “테러리스트 살인자들을 저지해야 합니다.” 하고 강조하더니 숨돌릴 틈도 없이 곧장 “자, 이 드라이브샷을 좀 보세요.” 하고 외친다.
조롱
그러나 이 영화는 부시를 조롱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라크 전쟁과 점령의 피해자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전쟁과 점령을 고발한다.
이 영화에서 무어의 목소리는 그가 만든 다른 영화들보다 더 낮다. 그 대신, 이 영화는 병사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이라크인들 자신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춘다.
한 이라크인 어머니는 왜 크리스마스 이브 한밤중에 아들을 잃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미시간 주 플린트 출신 미군 병사의 어머니인 라일라 립스콤은 전에는 반전 시위대를 미워했지만 아들이 죽은 뒤 전쟁을 반대하게 됐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좋은 취업 기회”라며 아들에게 군 입대를 권유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무어는 충격과 공포로 다치고 망가진 이라크인들의 피투성이 얼굴을 보여 준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청소하던 한 남자는 자기 이웃의 시체 일부를 발견한다. 그 이웃은 채 스무 살도 안 된 여성이었다.
무어는 또 전쟁의 인종 차별 양상도 보여 준다. 미군 병사들은 한 이라크인의 시체를 가리켜 “알리바바”라고 부르며 장난치고 모욕한다.
자연히 우파들은 이 영화에 격분했다. 보수 단체인 ‘시티즌즈 유나이티드’(Citizens United)는 이 영화 광고들이 선거자금법을 위반했다며 고소했다.
그리고 무어가 편견이 있다는 비난도 곧잘 들린다. 〈폭스 뉴스〉의 3류 기자들이 무어의 편견을 개탄하는 것을 보면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려고 줄을 서는 이유는 〈폭스〉 따위가 떠들어대는 “편견 없고 균형잡힌” 거짓말들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한 미군 상병은 이라크로 돌아가서 “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자신은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한다.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편견이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마이클 무어는 매우 옳게도 애써 편견 없는 척하지 않는다.
전쟁의 공포와 그 이면의 기업 이익은 역겨운 사회를 밝히 보여 준다. 그것을 어떤 기업인은 이렇게 적절히 요약한다. “전쟁은 사람들에게는 나쁘지만 기업에는 좋은 것이다.”
편견
물론 이 영화에 몇 가지 문제점은 있다.
무어는 애국자법을 폭로하지만, 아랍인과 무슬림 수천 명의 대량 구속은 지적하지 않는다. 부시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돈 거래 폭로는 특정 상황에서는 반(反)아랍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해답이 제시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분노에 가득 차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이 이제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무어는 자신의 목표가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를 쫓아내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무브온[정치 참여 시민단체]과 여러 단체들은 극장 밖 거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존 케리를 위한 유권자 등록과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케리가 이라크 전쟁에 찬성했고 점령을 지지한다는 것, 다시 말해 그가 부시와 공범이라는 사실은 잠시 제쳐두자.
〈화씨 9/11〉은 부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민주당이 우리에게 그럴듯한 대안이 아니라는 점도 보여 준다. 예컨대, 이 영화에는 부시를 대통령으로 승인한 대법원 판결을 앨 고어가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하원 흑인의원단이 한 명씩 차례로 흑인 유권자들의 선거권 박탈을 비난하고 나서자 고어는 그들에게 침묵하라고 지시한다. 민주당 상원의원 어느 한 사람도 그 흑인 하원의원들이 목소리를 대변하려 하지 않았다.
그밖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무어가 분명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쟁을 반대한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커다란 과제가 남아 있다. 그것은 결코 부시나 이런저런 정책들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어는 그런 과제를 누가 떠맡을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존 케리는 아니다. 전쟁에 의문을 제기하는 병사들, 빈곤으로 내몰리는 노동계급 대중, 점령을 끝장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라크 저항세력 등등이 바로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