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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
시간제 일자리, 비정규직 확대가 드러낸 ‘여성 대통령 시대’의 실체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 대통령 시대’에 별 기대가 없었지만, 그나마 약속받은 정책들도 하나둘 파산하고 있다.

‘4대악 근절’에 포함됐던 ‘성폭력 근절’은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미국에서 여성 인턴을 알몸으로 찾아가 엉덩이를 움켜쥔 역겨운 성폭력 사건으로 조롱거리가 됐다. ‘별장 성접대’ 사건의 주인공인 전 법무부차관 김학의가 무혐의 처분된 것도 ‘여성 대통령 시대’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1백36개국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경제적 참여·정치 권한·교육 수준 등의 격차를 분석해 발표한 ‘2013 세계 성 격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백11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OECD 국가들 중 터키 다음으로 꼴찌다.

박근혜가 그나마 내세웠던 ‘무상 보육’ 정책은 지자체에 재정부담을 떠넘겨서 재정난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조차 질 좋은 국공립어린이집은 확충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간 어린이집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등으로 보육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민간 어린이집들의 행태를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복지 공약뿐 아니라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폐지하겠다’던 박근혜의 약속도 사기로 드러났다. 이 정책의 파산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박근혜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결국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 전환이었을 뿐이다. 임금 차별은 여전히 유지되는 것이다. 심지어 해고 사유가 광범해, 고용 불안조차 완전하게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전환 규모도 2015년까지 6만 5천 명으로, 1백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에 비춰 보면 새발의 피였다. 정부는 민간위탁 등 대다수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파악할 생각조차 없다.

106주년 여성의 날에 즈음해 노동조합의 여성 활동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는 바로 시간제 일자리다.

박근혜가 ‘고용률 70퍼센트’의 대표적 수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는 주로 여성을 겨냥한 것이다.

박근혜는 이를 뒷받침하려고 최근 ‘일하는 여성의 생애주기별 지원 방안’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이 지적하듯이, 이 방안은 경력 단절의 주된 원인을 ‘고용 유연성 부족’에서 찾고 있고, 시간제 일자리 등 고용 유연화를 더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잘못됐다.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 차별을 고착화시킬 것

이미 존재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최악의 일자리다. 월평균 임금은 65만 원밖에 안 되고, 시간제 노동자의 37퍼센트가량은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 근속년수가 1년 미만인 비율이 69퍼센트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현재 시간제 일자리의 73퍼센트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일자리가 자발적 선택일 리 만무하다. 2012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를 보면, ‘취업자를 제외한 15세 이상 인구’ 중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14.2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도 시간제 일자리의 열악함을 의식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시간에 비례해 차별 없이 임금, 승진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전일제보다 승진이 곱절가량 뒤쳐질 수 있고, 노동시간이 적은 만큼 저임금에 시달린다는 뜻일 뿐이다. 정부조차 이런 현실 때문에 시간제 공무원과 시간제 교사들이 ‘투잡’을 해도 된다고 허용했다. 독일에서는 시간제 교사가 피자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정부가 발표한 시간제 공무원 제도를 보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의 실체를 알 수 있다. 공무원 연금도 받지 못하고 무엇보다 전일제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

정년 보장 약속도 믿기 어렵다. 영어회화전문강사 제도가 도입될 때도 계약서에는 정년 보장이 명시돼 있었지만,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대량으로 해고됐다. 대선 공약 중 지키는 게 거의 없는 박근혜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시간제 일자리에는 문제의식이 있으면서도, 시간제 일자리 자체에 반대하기보다는 시간제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고 시간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시간제 노동에 대한 차별 금지라든지, 전일제로의 전환 같은 방안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네덜란드나 독일 모델이 이런 시간제 보호 장치가 보장된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두 나라에서도 시간제 일자리 도입 자체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카텔레네 파쉬어 네덜란드노총 부위원장은 “노동자가 요구한다고 무조건 [전일제] 전환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파트타임 노동자가 풀타임으로 전환을 요구해도 기업에서 ‘일감이 없다’고 하면 풀타임으로 전환할 수 없다”, “[법과 달리] 현실에서는 풀타임에서 파트타임 전환이 더 쉽고 그 반대는 여전히 어렵다” 하고 말했다.

독일의 좌파 정당 ‘디링케’ 활동가인 다비트 마이엔라이스 역시 독일노총이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의 수준만 비판했지 개악 그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은 점을 지적하며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줄어든 임금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보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일단 급한 위기를 넘기자 기업주들은 결코 호의에 보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정규직을 비정상적인 고용으로 대체했다” 하고 증언했다.

따라서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은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도입에 문을 열어주지 말고 유보 없이 반대해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 이중의 굴레!

물론 보육이 여성의 부담으로 남겨져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 자체를 얻지 못하는 것보다는 시간제 일자리라도 얻길 원하는 여성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는 이런 여성들의 절박한 처지를 악용해,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차별을 더 고착화시키려는 것이므로 반대해야 한다.

실제로 독일의 시간제 일자리는 “일을 하지 않는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했지만 전일제로 전환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하고, 주로 전일제 일자리에 속해 있는 남성과 주로 미니잡을 채택하는 기혼여성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낳았다(민주노총, 〈시간제 일자리 확대 비판 정책보고서〉).

시간제 일자리처럼 저임금에다, 정규직과의 차별이 심한 일자리가 확대되면 일자리 전반의 하향평준화가 이뤄지고, 노동계급 내 격차가 심화되고,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이 고착화된다.

저질 일자리에서 저임금으로 일도 하고 애도 보라고? ⓒ이미진

박근혜의 ‘일과 가정의 양립’ 주장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결국 가사노동과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 계속 지우면서, 저질 일자리에서 낮은 임금을 감수하며 일도 하라는 뜻일 뿐이다.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는 데서 시간제가 유일한 해법은 결코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등 다른 선택을 했다. 그래서 스웨덴은 출산율도 높고, 정규직도 많다.

반면 네덜란드는 보육시설이 부족하고 최근에는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보육시설이 축소됐다. 이런 상태에서 여성들은 계속해서 가사와 양육 책임을 떠안으며 경력 기회가 제한됐고, 시간제 일자리를 강요받았다.

따라서 조직노동자 운동은 시간제 일자리에 적극 반대하고,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진정한 대안을 요구해야 한다.

여성들이 질 좋은 일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려면 보육에 대한 국가의 대대적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어린이집이 아니라, 국공립보육시설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

또, 여성들이 육아기에도 유급 휴가를 차별 없이 쓸 수 있어야 하고, 육아휴직비의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 출산을 이유로 해고되지 않고 출산 후 원래의 업무로 복직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남성들이 녹초가 되도록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구조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육아를 분담하기가 몹시 어렵다.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해야만 한편에선 전일제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때문에 고통받고, 다른 한편에선 저임금 시간제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투잡’, ‘쓰리잡’을 뛰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하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공공부문부터 확산하겠다고 밀어붙이고 있으므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도적으로 막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부문의 그나마 있는 양질의 일자리마저 고용이 불안한 단시간 노동으로 만드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 시간제 공무원 도입 등을 막지 못하면 ‘공무원연금 받는 공무원’과 ‘공무원연금 못 받는 공무원’으로 분열돼, 공무원 노동자들 내의 단결에도 해롭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가 노동계급 전체, 특히 나쁜 일자리를 강요받을 여성과 청년에게도 해악적이므로 공공부문 시간제 일자리 도입 반대 요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인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비정규직 확대 정책, 보육 책임 여성 전가로 여성 차별을 심화시키는 것에 맞서 싸우는 것이 여성운동의 중요한 과제다. 조직 노동계급이 고유의 강력한 잠재력을 발휘해 여성 차별 반대 투쟁을 뒷받침해야 한다. 지난해 철도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부에 억눌린 피억압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호민관 구실을 했듯이 말이다.

106주년 3·8 여성의 날 여성노동자대회

여성을 반쪽짜리 노동자로 내모는 시간제 일자리 중단하라!

저임금, 고용불안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

여성 노동권, 생존권 외면하는 박근혜 퇴진하라!

2014년 3월 8일 (토) 2시, 보신각

주관: 민주노총

주최: 3·8 세계 여성의 날 공동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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