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세월호 참사의 진실 ― 무엇을, 어떻게 밝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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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4월 17일 진도 체육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에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사가 벌어진 지 1백70여 일이 넘도록 책임 지는 고위 인사는 아무도 없다. 그저 해경과 세월호 선장 같은 잔챙이들만 처벌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던 국무총리 정홍원도 다시 돌아왔다.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이하 《민변의 기록》)은 우리가 밝혀야 할 진실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잘 규명하고 있다. 민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의 권영국 변호사는 이 책의 출판 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세월호 참사에 이르게 된 근본적인 배경과 원인을 제시함으로써, 지엽말단적인 수사나 꼬리 자르기식 처벌로 세월호 사태를 덮으려는 시도를 견제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함에 있다.”
참사 경위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 세월호는 승객 4백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로 떠났다.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오하마나호에 탑승하도록 돼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세월호로 갑자기 바꿔 타게 됐다. 그 이유도 아직 해명되지 않고 있다.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단원고 학생이 전남소방본부에 신고전화를 했다. 세월호는 제주VTS에 사고 신고를 했다. 그러나 해경과 해수부가 진도와 제주VTS를 각각 관리하면서 구조 요청이 원활하지 못했고 초기 골든타임을 아깝게 흘려 보내야 했다.
9시 35분 경 연안 경비정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해경은 승객들이 오가는 출입구가 있는 선미 쪽이 아니라 조타실이 있는 선수 쪽으로 가 구조를 했다.
세월호는 사고 발생 약 30분이 지난 오전 9시 34분경 왼쪽으로 약 52.5도 기울어졌다. 최근 광주지법 ‘가상 시나리오에 근거한 승선원 대피경로 및 탈출소요시간’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60도까지 기울어도 적절한 퇴선 명령만 있다면 승객들은 6분 만에 전원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탈출 방송은 없었다.
3백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최악의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안전보다 이윤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을 운항한 노후한 배를 사들였다. 이명박 정부가 선령 제한을 30년까지 연장해 준 덕분이었다. 또한 청해진해운은 승객을 더 실을 요량으로 증개축을 했고 이 과정에서 배의 복원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청해진해운은 직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워 인건비를 줄였다. 세월호가 인천과 제주를 2백40차례 오가는 동안 과적은 1백38회에 이른다. 청해진해운은 30억 원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매출액이 3백20억 원에 달하는데도 안전교육훈련비용에 고작 54만 1천 원을 썼다(매출액의 0.001퍼센트에 불과).
문제는 대부분의 연안여객선들이 이런 위험 요인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배는 왜 침몰했는가
저자들은 “세월호 침몰의 근본적인 원인과 경위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의 첫 단추로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검찰 측 주장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명확한 분석이라 할 수 없다.”
우선,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자료가 부실하다.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으로 증설이 배의 복원성에 끼친 영향을 평가하려면 여러 자료를 입력해야 하는데 식량과 같은 기본적인 화물이 입력되지 않았다.
검찰은 화물 과적을 침몰 원인의 하나로 꼽는다. 그런데 침수가 없다면 보통 배는 기울더라도 표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적을 침몰의 주원인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 당국은 침수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았다.
또, 과적 계산이 부정확하다 보니 변침이 침몰에 끼친 영향이 제대로 시뮬레이션에 반영 됐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법정에서 3등 항해사는 “선박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선회 했다는 진술”을 했다. 세월호가 단순 조타 과실로 침몰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검찰수사의 초점은 선박 침몰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선장과 선원들의 처벌에 집중되어 모든 관련 요인을 침몰 원인으로 나열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구조의 무능력과 무의지
규제 완화와 부패는 세월호 참사를 빚은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안전보다 선박회사의 이익 챙겨주기에 몰두”했다. 여객선의 엔진개방검사 주기를 늘리고, 안전검사기준과 차량적재도 승인규정도 완화했다. 선령 제한도 30년으로 늘렸다. 노후 선박 정밀검사를 위한 장비와 검사원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박근혜 하에서 이런 기조는 강화됐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된 과적과 초기 대응 등 모든 부분에서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중요한 원인으로 언급되는 이유다.”
안전관리업무마저 민간에 맡겨졌다. 선박관리를 맡은 한국선급과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정부기관 사이에는 “민관유착 관행이 고착화”됐고 안전관리는 더욱 부실해졌다.
“구조업무의 민영화”도 참사를 키웠다. 2012년 ‘수난구호법’ 개정의 핵심 내용은 “국가의 기본적인 공공영역에 비용의 논리를 가져온” 것이다. 2012년 해양경비 역량 강화에는 2천2백69억 원을 썼지만 해양재난구조 인프라 확충에는 고작 1백67억 원을 사용했다. 심해 잠수 인력은 해경 전체를 통틀어 8명뿐이다. “가장 신속히 현장에 도착해 인명구조를 펼쳐야 했던 특공대는 타고 갈 헬기가 없어 출동이 늦어”졌다.
해경은 구조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고 당시 해경은 구조는커녕, “승객들이 스스로 소방 호스와 커튼을 던져 아이들을 구조하는 것을 물끄러미 구경”만 했다. 중앙119가 수난전문구조대원들을 현장에 보냈지만 해경은 시원찮은 반응을 보였고 민간잠수사들은 지시를 받지 못한 채 대기하다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편, 수난구호법에 따르면 사고 책임선주는 사고 초기에 직접 구난구조업체를 선정해 계약을 맺어야 한다. 촌각을 다투는 구조업무 책임을 시장 논리에 맡기게 되는 것이다. 구난구호 비용 이해관계도 끼어들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구조작업을 담당한 민간업체 언딘과 해경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누가 책임을 규명할 수 있는가
박근혜도 책임 규명의 대상이다. 《민변의 기록》은 “정부조직법상 컨트롤타워로서 행정감독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대통령이 지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와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과 세월호 선내 CCTV 영상과 관련한 여러 의혹도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의혹의 상당 부분이 국가 기관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유가족의 진실 규명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감사원의 청와대 감사도 하루 만에 서면보고로 끝났고, 국정감사도 청문회 한 번 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따라서 진실을 규명하려면 “검경수사와 국정조사로는 안 된다.” “과거 검찰의 ‘용두사미’와 같은 재난수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조사위원회가 필수적이다.”
이 책은 우리의 과제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알맹이 빠진 여야 합의안 폐기,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하고 독립된 진상조사위원회 설치, 강제력 있는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
그리고 덧붙이기를, “세월호 특별법의 문제를 현재와 같이 특검추천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의 문제로 쟁점을 축소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매우 옳은 지적이다.
물론 《민변의 기록》은 운동을 승리로 이끌 결정적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이런 논의는 사회주의적 정치의 몫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윤 체제와 이를 수호하는 국가의 끔찍한 합작품이다. 지금 참사의 책임자들은 처벌받기는커녕 오히려 기업 이윤몰이를 위해 규제 완화를 확대하고 있다. 박근혜는 “무늬만 민생법안으로 포장한 대기업 특혜 내지는 규제 완화의 입법을 쏟아내고 …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사회 안전망을 여전히 ‘경제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해체시키고 있다.”
이러한 공격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계급과 서민이 지게 될 것이다. 박근혜가 진실과 책임 규명을 한사코 막는 배경에는 이런 공격을 중단 없이 벌이려는 의도도 있다.
새정치연합의 무능함은 박근혜가 공격을 밀어붙이는 것을 사실상 거들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자본가들의 사업(“민생”) 관련 법안 처리에 몸이 달아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온 힘을 다해 싸워 온 유가족들에게 원칙을 버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동계급이 나서야 한다. 노동계급은 이윤을 창출하므로 이윤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고유한 처지에 있다. 이 잠재력을 실제적으로 발휘해 싸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노동계급의 자녀들을 수장시킨 비정한 정부에 맞선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투쟁은 아직까지 벌어지지 않았다. 조직된 노동 운동은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 운동과 경제적 투쟁을 연결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을 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