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선거:
말대로 실천하는 투쟁적인 지도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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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8기 임원 선거가 시작됐다. 첫 직선제인 이번 선거는 4개 후보조가 등록해 4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조합원들이 직접 참가하는 직선제인 만큼 민주노총이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둘러싸고 조합원들의 활발한 토론 속에 치러질 수 있어야 한다.
기호 2번 한상균-최종진-이영주 후보는 몇몇 좌파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공동으로 지지하는 후보조다. 9월 말부터 여러 좌파단체들은 민주노총 직선제에 공동 대응해 투쟁적인 지도부를 세우고자 논의했다.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 좌파노동자회 등이 이 논의에 참가했는데, 좌파노동자회는 내용적 이견과 후보선출 방식 문제로 이 논의에서 비교적 초기에 이탈했다. 나중에 다시금 단일화가 논의되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한상균-최종진-이영주 후보조와 그 지지 단체·활동가들은 투쟁하는 민주노총을 만들자는 데 강조점이 있다면, 좌파노동자회는 민주노총의 조직·재정 체계 개편 같은 혁신과제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뻥파업
지금 민주노총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변화는 바로 투쟁하는 노동자 단체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산별연맹 포함) 지도자들은 정리해고로, 비정규직으로, 민영화로, 손배가압류로 내몰려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버팀목이 돼 주지 못했다.
그동안 많은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투쟁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총파업은 번번이 철회되거나 형식적 동원을 넘어서지 못했고, ‘뻥파업’이라고 조롱을 받았다.
계급 대표성이나 사회적 위상 하락 문제도 이것과 직결된 문제다. 계급 대표성은 단지 조직률 높이기가 아니라 전체 계급의 편에서 투쟁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이 가장 높았던 때는 1997년 대중파업으로 노동자가 사회를 좌우하는 듯한 힘을 보여 줬을 때다.
지금 박근혜는 장기 불황의 고통을 노동자 계급에 전가하고자 굳건하게 신자유주의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투자활성화’, ‘경제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정책들은 민영화, 임금억제, 노동 유연화, 노조 권리 억압 등 죄다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들이다. 이에 맞서 단호히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을 지킬 수 없다.
박근혜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특유의 냉혹함으로 공세를 밀어붙이는 데 반해 민주노총 지도부의 대응은 흔히 맥없고 무기력했다.
철도 노동자, 교사 노동자, 건설 노동자, 삼성전자서비스와 통신 노동자들은 박근혜 시대에도 저항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하지만 이런 투쟁들은 대개 각 개별 부문에 내맡겨져 있었다. 특히, 철도 노동자들이 23일간의 파업을 벌이고 민주노총 본부가 침탈당했을 때조차 민주노총 지도부는 즉각적 파업 선언으로 이에 맞서지 못했다.
통상임금 문제는 또 다른 사례다. 통상임금은 정·재계 모두 그 폭발력 때문에 걱정이 여간 아닌 쟁점이었지만, 민주노총(과 관련 산별연맹) 지도자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노동부 지침에 반대해 총연맹 차원의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승리를 위한 전략
한상균-최종진-이영주 후보조는 민주노총을 투쟁하는 기관으로 복원하고 말한 대로 투쟁하는 언행일치 지도부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조합원들이 목말라 하는 승리를 이루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박근혜의 핵심 전략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분쇄할 수 있는 우리 편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 박근혜는 상이한 공격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연대해 저항하지 못하도록 이간질로 각개격파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악을 추진하면서 ‘철밥통’ 논리로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려 하고, 임금체계 개악을 추진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는 식이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연대해서 맞서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이간질에 놀아나지 않도록 이데올로기적·정치적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조직 노동계급, 특히 공공부문과 대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회의가 노동운동 내에 확산돼 있는 상황은 연대의 추진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우리 편의 약점이다. 공공부문과 대공장 노동자들을 배부른 존재 또는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집단으로 치부하면서, 그들의 조건을 방어하기를 꺼린다면 정부의 공공부문 공격을 막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문제와 잘 대결하지 않는다면, 전투성만으로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는 어렵다.
또한 민주노총의 투쟁하는 지도부는 단지 조합원들만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 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투쟁해야 한다. 단지 경제적 요구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투쟁해야 한다.
이런 의제를 제기하며 분출하는 거리의 저항에 민주노총은 민감하게 응답해야 한다. 거리의 운동과 조직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이 연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투쟁을 전진시키는 결정적 힘을 제공해야 한다.
투사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좌파적 투쟁적 지도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좌파적 지도자들이 실망을 안긴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높지는 않지만 사용자와 정부에 맞서 잘 싸워 줄 지도부를 원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투쟁적 지도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자신감이 부족해 독자적으로 싸우지는 못했던 노동자들도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파업을 선언하면, 안전감을 느끼면서 파업에 나설 수 있다.
좌파 활동가들은 이런 기회를 이용해 기층에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기층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력 투쟁 역량을 키워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장 조합원들의 자주적 활동성을 고양시키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바뀌어도 산별연맹 또는 대공장 노조 지도자들이 꿈쩍하지 않으면 투쟁이 되겠느냐는 회의도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투쟁에 나서는 것을 통해서만 이를 변화시킬 힘이 제공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좌파 활동가들이 기층에서 실제 투쟁을 조직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