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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해지는 부의 불평등은 세계를 바꿔야 할 이유를 보여 준다

10월 15일 크레디스위스 은행이 《세계 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2백여 나라의 성인 47억 명이 소유한 부(富)를 분석한 결과이다. 10월 29일에는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이 불평등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보고서는 모두 세계적 부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레디스위스 은행의 보고서를 보면, 하위 50퍼센트는 전체 부의 1퍼센트도 소유하지 못한다. 상위 10퍼센트는 전체 부의 87퍼센트를 소유한다. 상위 1퍼센트는 전체 부의 48퍼센트를 소유한다. 짧게 말해, 상위 1퍼센트가 전 세계 개인적 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다.

옥스팜의 보고서는 불평등 수준을 더 극명하게 보여 준다. 전 세계 최고 부자 85명이 하위 35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 85명의 재산은 지난 1년간 하루에 6억 6천8백만 달러(약 7천억 원)씩 늘었다. 1초에 약 7천7백 달러(약 8백44만 원)씩 늘어난 셈이다.

1백만 달러(약 10억 원) 이상을 소유한 백만장자의 수는 2000~14년 1백64퍼센트 늘어 3천4백80만 명이 됐다. 1억 달러(약 1천억 원) 이상을 소유한 억만장자의 수는 2009~14년 갑절 넘게 늘어 1천6백45명이 됐다.

그런데 올해 세계의 부가 증가했고, 성인 한 명이 소유한 부의 평균값도 대폭 늘어 5만 6천 달러(약 5천9백만 원)가 됐다. 여기서 “낙수효과”(경제가 성장하면 부가 부자들에게서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에게로 흘러넘치리라는 이론)가 현실에 작용하는 것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박근혜는 기뻐서 펄쩍 뛸 것이다.

한국은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점유율이 44.9퍼센트로 OECD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윤선

낙수효과?

유감이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적 부의 규모와 평균값은 올라갔지만, 부의 중간값(소유한 부를 기준으로 사람들을 일렬로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사람이 소유한 부의 값)은 2010년 이래 해마다 떨어져 왔다. 즉,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더 부유해졌다는 말이다.

게다가 크레디스위스 은행의 보고서는 부의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더 크고, 이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라는 사실도 보여 준다. 이 사실이 함의하는 바는 이렇다. 진짜 문제는 부의 불평등이고, 이는 보유 기술 등의 차이가 아니라, 상속과 운의 차이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크레디스위스 은행의 보고서에 대해 논평하면서 에마뉴엘 사에즈와 가브리엘 주크먼의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들은 《21세기의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의 가까운 동료들로, 미국에서 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연구했다.

그들의 연구 결과도 크레디스위스 은행의 보고서와 피케티의 연구 결과가 옳다는 것을 확증했다. 요컨대 지난 1백여 년 동안 부의 집중도는 20세기 초에 높았다가 1929~78년에 떨어졌고 1978년 이후 죽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커진 것은 거의 전적으로 상위 0.1퍼센트 최고 부자의 부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몫이 1979년 7퍼센트에서 2012년 22퍼센트(1929년 수치에 육박한다)로 늘었기 때문이라고 사에즈와 주크먼은 지적했다. 하위 90퍼센트의 부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몫은 1980년대 중반까지 커졌다가 그 뒤로 계속 줄었다.

옥스팜은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에 단 1.5퍼센트의 부유세만 물려도 해마다 7백40억 달러(약 80조 원)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최빈국들의 모든 아동에게 교육과 의료 혜택을 줄 수 있는 돈이다. 더 급진적인 정책을 취한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각국 지배자들이 오히려 임금과 복지를 삼각하고 기업들의 수익성을 올리는 데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에 차고 넘치는 부를 정의롭게 쓰려면 체제의 우선순위를 확 뒤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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