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성소수자 아들을 둔 아버지의 편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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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성소수자들이 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20년 정도 됐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은 사회적 힐난을 받으며 아웃팅을 두려워해야 한다.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청소년이 45퍼센트 정도 된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를 끊겠다는 각오 없이는 너무 힘든 일이다.
과연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잘못인가? 그 대상이 이성이 아니고 동성이나 양성이라서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들 민이는 양성애자이다. 올 4월 초에 처음 민이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기억이 떠오른다. ‘왜 하필 내 아들이’ 하는 충격과 더불어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던가. 그간 동성애 관련 책이나 강연도 들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닥치니 머리가 하얘지며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후 성장해 동성과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입양해야 하는 경우도 고민해 봐야 했다. 그에 따르는 사회적 제약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자식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하는 것 앞엔 부차적이었다.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이 상황을 정말 신이 준 특별한 선물로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것이 배경이 돼 이번 모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성소수자 관련 섭외를 받았다. 주위의 시선과 이후에 받을 상처를 감내하면서 모자이크나 음성변조 없이 출연했다. 성소수자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게 해 갇힌 새장 속에서 문을 열고 나와 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에 작은 변화를 가져오고 싶었다. 특히 성소수자가 원치 않게 커밍아웃을 당했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것 같다.
누가 퍼 갔는지는 모르지만 페이스북이나 몇 군데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좋아요’가 5만 건이 넘었다. 댓글도 수천 개가 달렸다. 댓글에서 갑론을박이 오갈 뿐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확신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사회에서 비난과 냉대를 당해 왔는지 하는 글들도 올라 왔다. 가족들에게 버려져 정신병원에 갇히고 벼랑 끝에 몰려 자신을 학대하다 마침내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았다.
가족이 따뜻하게 이해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독립된 개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이성이 아닌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회적 힐난이나 배척,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성 정체성이라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생각과 권리를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타인의 의견을 인정치 않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사회 일각에서는 동성애는 오직 육체적 성 관계의 쾌락만 탐닉하므로 사랑이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으로 보는 편견이 있다. 동성애를 치료받아야 할 대상으로 삼으며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고 보건 위생 등과 연관지어 격리 수용해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는 억지 논리다. 에이즈는 그들의 성적 문란을 통해 발병하는데 그들을 미화함으로써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수적 기독교에서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억지 주장도 한다. 이런 주장들은 일고의 가치 없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항에는 ‘동성애를 정상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은 이를 문제삼으며 차별금지법을 없애자는 안건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서울시도 ‘서울시 인권헌장’ 초안에 ‘성소수자 차별금지조항’을 신설하려는 중인데 동성애 반대 단체들의 압력에 막혀 보류 중이다.
그럼에도 노력들을 계속하다 보면 흑인들이 인권을 쟁취하고 여성들이 선거권을 획득했듯 좋은 결과가 빨리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모두 함께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먼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사랑하라’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동성애자들도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며 자식들이고 동시대를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설사 그들을 싫어한다 해도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배척해선 안 된다. 하루빨리 시각이 변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동성애자들에게 민이처럼 ‘용기를 내 갇혀진 새장의 문을 열고 나오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