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이 노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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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은 말 못할 고통과 시련을 견디며 2천 일 가까이 투쟁해 온 해고 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었다. 법원 앞에서 한 밀양 할머니가 울부짖었듯, 대법 판결은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다. 지난 2월 쌍용차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고법 판결로 해고 노동자들은 실낱 같은 희망을 품어 왔다. 이를 무참히 짓밟은 대법관의 망치는 자본의 방패였고, 노동자를 상대로 휘두른 칼날이었다.
자본주의 법정에 중립은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법부의 고위 관료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털끝만큼의 자비와 관용도 베풀지 않고 마치 국가 권력의 탈을 쓴 자본가들의 변호인단처럼 행동했다.
대법원 판결은 단지 쌍용차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만은 아니다.
이번 판결을 맡은 대법원 3부는 “정리해고 규모는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므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미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위기”도 정리해고 사유로 인정한 바 있다.
이런 판결은 국제적 경쟁 압박과 경제 위기 속에서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기를 바라는 자본가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다.
정리해고 요건 완화
사실, 한국에서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가 1996년 12월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법제화가 포함된 노동법 개악안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시키자, 노동자들은 강력한 파업으로 응수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합쳐 80만 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해 김영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고, 날치기 통과된 법안을 무효화시켰다.
그런데 1998년 2월 민주노총 1기 지도부가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을 합의해 주는 배신을 저질렀다.
그 결과 정리해고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이것이 타협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긴급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등 몇 가지 단서가 붙었다.
자본가들은 이런 단서를 거추장스럽게 여겨 왔다. ‘긴급한 경영상의 필요’에서 ‘긴급한’을 삭제해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정리해고를 하고 싶어 한다.
사실, 정리해고를 제한한다는 법률 조항은 조직된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올까 봐 자본가들이 주저하지 않는 한 현실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노동연구원이 2013년 7월에 발표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관련 국제적 흐름’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집단 정리해고가 쉬운 나라다.
2011년에 10만 3천 명이 정리해고 됐는데, 정리해고제가 도입된 1998년에 12만 6천4백45명이 정리해고 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정리해고제 도입 이후 1백만 명이 훨씬 넘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법원의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더 손쉽게 대량해고를 밀어붙일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
물론, 정리해고 여부와 규모는 자본에 고용돼 은밀한 회계 조작을 하는 회계사들의 계산기나, 판사의 판결문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힘의 문제, 즉 계급세력 관계와 투쟁의 성패에 달려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는 없다.
한편,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을 전면 개정해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정책보고서 ‘2014년 요구와 과제’는 ‘사용자는 노동자의 계속 고용을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 필요한도 내에서만 고려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근로기준법에 삽입하자고 요구한다.
그러나 “최후의 수단”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해도 정리해고의 문을 열어놔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 위기로 기업들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는 때에는 더욱 그렇다. 정리해고가 경영상 필요한지 아닌지를 다투기보다는 노동자들이 위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며 투쟁해야 한다.
즉, 정리해고를 원칙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고용을 유지할 여력이 없는 기업은 국유화해 국가가 고용을 책임지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 – 왜 하필이면 이때 판결했나?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가 진행 중인 바로 이 시점에 대법원이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약관화하다. 쌍용차 노동자들처럼 전투적으로 싸워 봐야 소용 없고 심지어 노동자들에게 손해라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민주노총 선거에서 온건파 지도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비록 국가가 그 파업을 물리적으로 파괴했지만, 쌍용차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은 위대한 투쟁이었다. 당시 아쉬웠던 점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미온적 연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