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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빌미로 한 탄압 강화 계획 중단하라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종북’ 마녀사냥으로 확대하려 한다. 사건 직후부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김기종 씨가 노무현 정부 시절 여덟 번이나 방북했다는 등의 얘기를 흘리며, 그를 ‘종북’ 인사라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대변인 권은희는 김기종 씨가 “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는 대규모 수사단을 구성했고, 김기종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조사하기 시작했다.

김기종 씨의 행위만 놓고 보면 형법상 상해죄 등을 적용해 처벌하면 될 텐데, 왜 박근혜 정부는 굳이 국가보안법까지 적용하려 애를 쓰고 있을까?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이용해 정국을 경색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가깝게는 4월 보궐선거에서 주로 경쟁할 새정치민주연합을 겨냥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을 “종북 숙주”라고 비난한 것에서도 그 의도가 드러난다. 새정치연합의 비판대로, “[새누리당이] 지지율이 떨어지자 이런 구시대적인 ‘막말 종북 몰이’로 표를 얻어 보려는 매우 비겁한 정치 행태”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 사건으로 단지 새정치연합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진보·좌파와 노동자 운동을 공격하려고 한다. 진보당 해산 때와 마찬가지로, 좌파와 노동자 운동에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어 마녀사냥을 하려는 것이다. 우익은 김기종 씨가 평소에 주장한 평화협정 체결, 한미 군사훈련 중단,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이 북한 당국의 주장과 같다며, 동시에 좌파 단체들과 평화 단체들을 ‘종북’으로 비방하고 있다. 우익은 이를 통해 4월 민주노총 파업에도 찬물을 끼얹고 싶을 것이다.

테러방지법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이 사건을 빌미로 ‘종북’ 마녀사냥에 나서려는 것을 진보·좌파 운동가들은 모호하지 않게 반대해야 한다.

피습 사건을 계기로 테러방지법 제정 등으로 탄압을 강화하려는 박근혜 정부 사진은 2010년 천안함 사건 직후 미국 대사관 앞에서 비상 경계 근무에 들어간 경찰특공대 모습. ⓒ이미진

김기종 씨가 ‘종북’ 인사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북한 서적(《영화예술론》 등)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를 ‘종북’으로 직결시키는 것은 억지다. 《영화예술론》 같은 책은 “상당수 북한 영화 관련 논문에서 참고 문헌으로 활용될 만큼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흔히 읽히는 책이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북한의 영상이나 글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또 심지어 조·중·동 같은 우파 언론 기자들도 취재차 북한 웹사이트(예컨대,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하거나 들여다 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말이다. 김기종 씨의 평소 주장이 북한 당국의 주장과 같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공격 사건을 계기로 이미 진보·좌파 단체 일반에 대한 내사를 강화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세력의 행위를 막기 위해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이는 단지 ‘종북’만을 겨냥한 게 아닐 것이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계속 좌절돼 온 테러방지법 제정도 밀어붙일 태세다. 이미 지난 2월 새누리당 의원 이병석이 주도해 테러방지법안을 발의해 놨다. 이 법안을 살펴보면, 제2의 국가보안법임을 알 수 있다. 테러 개념을 “국가안보 또는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로 적시해, 공안기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대해 금융·통신 등의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따라서 진보·좌파 진영은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를 반대해야 한다. 그것이 궁극으로 노리는 것은 결국 투쟁적이거나 좌파적인 노동자 운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 배경 ─ 미국의 대외 정책

노동자연대의 3월 5일 성명이 지적했듯이, 김기종 씨가 마크 리퍼트를 공격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마도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웬디 셔먼의 망언이었을 것이다. 2월 27일 웬디 셔먼은 한국과 중국 지도자들이 과거사와 영토 문제 등에서 “과거의 적을 악당으로 만듦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며 독도나 과거사 문제가 한·미·일 삼각 동맹의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위안부 문제마저 덮고 동맹을 강화하라는 웬디 셔먼의 당시 망언에 당연히 한국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에 항의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개인을 공격하는 것으로는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전반적 정치 상황이 나쁘면 국가 탄압의 수위를 높일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성명이 강조하듯이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근본 배경임을 봐야 한다. 실제로, 사건 직후 김기종 씨는 군사 훈련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지금 진행중인 한미 합동 군사 훈련 키리졸브 훈련을 가리킨 것이다.

“값싼 박수”

키리졸브 훈련에는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에 따라 호전적 계획들이 반영돼 왔다. 지난해 미국과 한국은 대북 선제 공격 계획인 “맞춤형 억제 전략”을 한미 합동 군사 훈련에 공식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리졸브 훈련을 거쳐 기존의 대북 공격 계획을 통합한 작전계획5015를 3월에 내놓을 예정이었다. 작전계획5015에는 북한 내부의 급변 사태를 빌미로 한 한미 양군의 군사적 개입을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3월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 일대에서 키 리졸브 훈련 중인 미군. ⓒ〈노동자 연대〉

한국의 우익은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실현해 한미 동맹을 강화할 기회로도 이용하려 한다. 이것이 이들이 ‘종북’ 공세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그동안 새누리당과 우익들 사이에서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박근혜 정부조차 모호한 태도를 유지할 만큼 중국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해, 파장이 큰 일이다.

그런데 사건 직후에 〈조선일보〉 등은 사드의 한국 배치를 공식화할 적기라고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은 청와대의 우려에도 3월 말 사드 배치를 당론으로 정할 의원총회를 밀어붙이려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갈등이 점증하는 가운데 이뤄질 한미 동맹 강화는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드 배치나 호전적 한미 합동 군사 훈련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계속 높여야 하는 까닭이다.

총파업 같은 노동자 대중 행동이 대안이다

마르크스·레닌·트로츠키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대리하는 개인적 폭력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와 체제를 지키는 자본주의 국가에 흠 하나 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진보·좌파 운동가들은 4·24 총파업 같은 노동자 대중 투쟁이 효과적으로 일어나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제국주의에 진정한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신 국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