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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문제에서도 시리자 정부에 독립적이어야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국가 재정이 바닥나는 상황 속에서도 전투기 현대화를 위해 지난 10년간 최대 규모의 무기 거래인 5백만 달러치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인도적 위기 해결에 쓰기로 결정한 액수의 두 배가 넘어, 시리자 정부의 우선 순위에 의구심이 제기될 만하다.

그리스 지배계급은 터키와의 해묵은 군사적 갈등 때문에 군비에 많이 투자해 왔다. 그리스의 1인당 군비 지출은 유로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리스는 2006~10년 세계 5위 무기수입국이기도 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낸 ‘전 세계 군사비 지출에 대한 연례 보고서’를 보면, 대중의 비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2015년 국방비 예산은 2.7퍼센트 증가했다.

그런데 이번 무기 거래는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우파들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그리스독립당 대표이자 국방장관인 파노스 카메노스가 이번 무기 계약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긴 했지만, 시리자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시리자는 오랫동안 NATO 탈퇴와 군비 축소, 크레타 섬의 미군기지 폐쇄와 같은 반제국주의 요구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집권 후에 국내 지배계급과 제국주의 열강의 큰 반발을 부를 반제국주의적 요구를 접었고, 미국·이스라엘과 합동군사훈련마저 진행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 구조 안에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좌파 개혁주의의 전략적 한계를 보여 준다.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은 노동자들에 대한 안정적 착취를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제적 경쟁과 국외의 경쟁적 지배계급의 위협에서 국내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좌파 정당이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게 되더라도 자본 축적의 대리자 노릇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쥐어짜야 할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군사력 증강에 나서야 하는 구조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가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 러시아를 의식해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 좌파들은 일관된 반제국주의를 위해서 시리자 정부와 독립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시리자 정부의 무기 계약 즉각 취소를 요구하고, 군비가 아니라 복지에 돈을 쓰라고 요구해야 한다. 또, 그리스의 NATO 탈퇴와 크레타 섬의 미군기지 철수와 같은 좌파 진영의 오랜 요구를 이행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

그리스 정치에서 제국주의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그리스는 유럽에서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향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지중해 제해권 유지에 필요한 그리스의 지정학적 가치는 제국주의 열강의 피비린내 나는 개입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러시아와 서방 간의 첨예한 긴장은 지중해에도 위험한 갈등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리스는 지중해에서 미국·이스라엘과 함께 합동 군사 훈련을 해 오고 있는데, 지난해 1월에는 지중해에서 최초로 러시아와 중국이 합동군사훈련을 전개했다. 러시아는 영국군 기지가 있는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와 해군 및 공군 기지를 사용할 수 있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렇듯 지중해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경쟁의 증대는 시리자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 수 있다.

긴축과 파시즘에 맞선 저항뿐 아니라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도 시리자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아래로부터의 독립적 운동을 건설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