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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대기업 정규직과 청년은 연대할 수 있다

이 글은 성공회대학교에서 열린 노동절 교양대회 ‘학생과 노동자,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떻게 연대할까’에서 연설한 발표문이다.

계급의식의 발전, 현장투쟁 경험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청년 일자리 창출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선 저의 현장 투쟁 경험에 관해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대학 자퇴 후, 군 시절에 저는 평택 대추리에서 시위대를 진압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는 군인으로 현장에 가서 하루 14시간 땅을 파고 철망을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정규직으로 취직만 하면 편안해지겠지. 조금만 고생하자.’

2011년 가을, 기아자동차가 5년여 만에 신입사원을 충원했습니다. 기아차 조합원들의 계속되는 인원 충원 요구와 투쟁에 압박을 받아, 회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국가유공자 의무 채용률이 낮아진 점을 이용해 저를 포함해 29명의 극소수 신입을 충원했습니다. 그동안 신규채용은 물론, 의무 채용률 또한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회사는 신입사원들에게는 수당의 일부를 깎아서 기존 직원들보다 낮은 임금을 적용했습니다. 신입사원들의 임금을 깎는 이중임금제가 시작된 것이죠.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저는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공장 안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공장 출입문을 비롯해 식당, 현장 곳곳에는 인원충원과 각종 안전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많은 대자보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5년여 만에 신입사원이 충원됐지만, 여전히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배치된 반은 다른 반에 비해 설비가 많고 현장 투쟁력도 강했습니다. 저희 반 활동가들과 대의원은 오랫동안 인원 충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어느 날 라인가동을 중단하고 분임 토의장에 반원들을 결집시켜 항의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로 인해 1공장 전체가 10시간 동안 가동을 멈췄습니다. 사측은 약 50억 원 정도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런 현장조합원들의 투쟁에, 노조 집행부도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측은 결국 추가적으로 인원충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대의원은 사측으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해 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재판과정에서 응원의 방청을 가는 등 지지를 보냈습니다. 재판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무죄를 판결했습니다.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투쟁을 통해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단결해 일손을 놓고 노동을 멈추면, 이윤에 실질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투쟁으로 다른 반의 노동자들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작업장 내의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 이윤경쟁체제 안에서 벌어진 가슴 아픈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현장 안전 문제는 바로 이런 세월호 참사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인원충원 투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조합원이 크게 다칠 뻔한 안전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실 현장에선 수많은 안전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놀라고 황당했던 점은, 회사는 다친 조합원이나 안전사고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라인 가동을 최우선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이 다치든, 아니면 다칠 만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우려가 있든 상관 없이, 그저 이윤만을 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사는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여러 조처들과 설비 투자, 이를 위한 대책회의 시간 등을 낭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윤보다 생명을! 효율보다 안전을!’ 하고 요구하는 투쟁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대의원, 활동가들에게 무자비한 고소고발과 손배·가압류를 남발하며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요 40개 대기업의 산재현황 비교 분석(2011년~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재해발생 순위 1위는 기아자동차(1366건)고, 2위는 현대자동차(1209건)입니다. 7위는 현대건설(209건), 9위는 현대제철(149건)이고요. 10위 안에 드는 현대차 계열사들이 총 4개로, 주요 40개 기업 중 부동의 선두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망자 발생 순위에서도 1위는 현대건설(21명), 7위는 현대자동차(11명), 10위는 기아자동차입니다. 현대차 그룹에서만 3년간 무려 42명이 산업재해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청년과 정규직, 비정규직과 정규직

지금 박근혜 정부는 대공장·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 “과보호”를 받아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를 낳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명분 삼아 ‘해고는 쉽게, 임금은 적게, 비정규직은 많게!’를 외치며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추진하고, 공무원연금 개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본의 탐욕과 권력의 부패, 무능한 정부로 인한 엄청난 금액의 손실의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깊어지는 책임을 온전히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려는 것입니다.

정부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노동자계급 내부의 ‘안정’과 ‘불안정’의 대립으로, ‘청년’과 ‘정규직’의 대립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만 5백조 원이 넘습니다. 상상이 가지 않는 규모의 큰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 중 10퍼세트만 사용해도 전체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2.5퍼센트만 있으면 청년 실업자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전 부지를 매입하는 데 10조 5천5백억 원을 투척한 통 큰(?) 현대차는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하라는 노동부·법원 판결을 지키지 않고 버티기에도 통이 커 1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 비용이 1년에 최대로 잡아도 5천억 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회사는 돈 투척과 버티기에는 통이 큰데, 법 지키기엔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노동자들의 가계저축률은 점점 낮아지는 반면에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즉,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증가의 진정한 원인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쌓아두기만 하고 풀지 않는 기업들에게 있습니다.

‘불안정 노동자’ 대 ‘안정적인 노동자’라는 대립 구도는 정부와 지배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현실은 다릅니다.

상대적 차이는 있지만, 모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때문에 불안정합니다. 임금 삭감과 전환배치 압박, 성과급제와 이로 인한 해고 압박(노란 봉투), 각종 현장통제(사측에 줄 세우기), 손배가압류와 고소고발, 비일비재한 산업재해 등.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역시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 권력자와 자본가들뿐입니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어렵고 열악한 처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된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이 단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따라서 더 크게 단결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자신부터 노력할 겁니다. 연대를 호소하는 활동가들이 더 많아지고 이들이 기층현장에서 투쟁의 구심, 영향력을 형성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연대와 단결도 더 폭넓어지고 굳건 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부가 이간질을 통해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연대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단결해 생산을 멈춰 자본주의 이윤 축적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과소평가 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기 공장 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사회 전체 청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위해 앞장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자본주의의 핵심인 생산과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고 진정 사회를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직 노동자 계급의 생산을 멈추는 투쟁과 청년들의 거리 행동이 결합되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지난 운동의 역사는 학생들의 폭발적인 투쟁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2013년 파업을 벌인 철도 노동자들은 학생들의 연대와 큰 지지에 자극을 받았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학생들의 연대는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고, 이 속에서 학생들도 노동자들의 힘과 규율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세월호 1주기, 4·24 총파업, 노동절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대를 통해 서로 투쟁의 활력을 제공하고 고무할 수 있도록, 여기 계신 학생 동지들께서도 함께 참가해 지지와 연대를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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