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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 부시의 전쟁몰이를 저지하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가 승리했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부시의 이라크 전쟁과 점령,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들을 승인했음을 뜻하는가?

민주당 대선 후보 존 케리가 부시의 정책들에 반대했다면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주류 언론에서는 이번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정책 대결로 진행된 것인 양 묘사한다.

부시와 케리가 일부 국내 정책들을 둘러싸고 다른 태도를 취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낙태, 줄기세포 연구, 의료보험 문제 등에서 둘의 입장은 서로 달랐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들에서 부시와 케리의 태도는 다르지 않았다.

● 부시와 케리 둘 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지속하고 이라크 저항세력에 맞서 승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둘 다 미국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나라에 대한 선제 공격 독트린을 옹호했다. 케리는 7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국의 최고사령관으로서 필요하다면 무력 사용도 마다 않겠다”고 공언했고, 자신이 부시보다 이라크 전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둘 다 이란과 북한을 이라크 다음 표적으로 지목했다.

둘 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억압하는 이스라엘을 전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둘 다 중동과 세계 전역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프로젝트를 강화하는 일에 몰두했다.

엘리트 가문

● 부시와 케리 둘 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지지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이견이 없었다.

부시가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을 폈다면, 케리가 공약한 균형 재정은 사회복지 예산을 감축하겠다는 얘기였다.

이는 그가 내놓은 의료보험 혜택 확대 공약을 공약(空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케리는 또 자신이 소득 “재분배론자”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파이낸셜 타임스〉는 부시와 케리의 “거시경제 정책들이 거의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파이낸셜 타임스〉는 부시보다 케리를 약간 더 선호했는데, 그것은 케리 주변에 빌 클린턴의 경제 팀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클린턴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경제 불황을 초래하는 데 일조했고, 지금 미국 경제는 여전히 그 불황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 부시와 케리 둘 다 무슬림을 마녀사냥하고 정치적·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애국자법을 지지했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부시와 달리 케리는 사형제 폐지에 찬성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는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클린턴 집권 시절 경찰관 10만 명 증원 법안에 찬성했던 전력에 어울리게 “법과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경찰력을 더욱 증강하겠다고 약속했다. 인구 대비 재소자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2백만 명) 미국에서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통의 미국인들이 부시와 케리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올해 대선에서 부시를 패배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여야 했다.

미군 사망자 수가 1천 명을 넘어서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끊임없는 공격 때문에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 일정 변경 얘기가 나오는 등 부시의 이라크 점령은 점점 더 수렁에 빠지고 있었다.

경제 불황 때문에 실업과 빈곤이 심화해 오늘날 미국 빈민의 수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많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 반면, 미국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적은 세금을 내고 있다.

미국인 2억 9천5백만 명 가운데 약 4천5백만 명이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8백만 명이 실업자로 등록돼 있다.

부시는 허버트 후버 ― 1920년대 말에 시작된 대공황 당시 대통령 ― 이후 재임 기간에 실업률이 증가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부시가 대통령이 된 뒤 미국에서는 75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후버는 1932년 선거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프랭클린 D 로즈벨트에게 패배한 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도 왜 케리는 로즈벨트처럼 승리하지 못했을까?

영화 〈화씨 9/11〉의 흥행 성공에서 드러나듯 반부시 정서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케리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보여 준 언행에서 드러나듯 케리 진영의 선거 전략은 이를 전혀 이용하지 못했다.

케리는 부시와의 지지율 격차를 좀체 좁히지 못했던 대선 후보 1차 토론회 이후에조차 이라크 문제를 이용해 부시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날마다 많은 이라크인들과 미군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끔찍한 전쟁을 벌이기 위해 부시가 거짓말을 했음이 밝히 드러났다.

케리는 이라크 문제를 이용해 부시가 인상을 쓰고 말문이 막히게 만들었다. 당시 케리가 미군 철수를 공약했다면 그는 확실히 승기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케리의 이라크 관련 주요 공약은 정상회담을 열어 다른 강대국들의 지원을 더 많이 얻어내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부시는 자신도 정상회담을 여러 차례 열었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케리의 외교 정책을 연구한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의 스티븐 준즈 교수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케리와 케리 지지자들은 안 그런 척하고 싶겠지만, 민주당 지명자[케리]는 부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천명하기 위해 기꺼이 유엔의 권위를 떨어뜨릴 용의가 있는 군국주의자이자 일방주의자다.”

이렇게 부시와 케리의 정책이 다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사회적 기반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시와 케리 모두 미국 동부 연안 권력층의 후예들이다. 그 권력층은 지난 25년 동안 신자유주의 덕분에 엄청나게 부유해졌다.

1970년대 말 미국의 상위 1퍼센트는 미국 국부(國富)의 20퍼센트를 소유했다. 오늘날 그 수치는 40퍼센트로 높아졌다. 부시와 케리 둘 다 그 상위 1퍼센트의 일부인 엘리트 가문 출신이다.

그리고 그들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미국의 대기업들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정치 세력이다.

그래서 부시와 케리 모두 대기업들에게서 엄청난 정치자금을 받았고, 각자 선거 운동에 2억 달러(약 2천2백억 원)씩을 썼다. 부시는 바로 그 돈으로 백악관을 구입한 셈이다.

반전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부시가 승리한 지금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낙담하고 의기소침해질 수 있다.

부시가 4년 전 대통령직을 “찬탈”했을 때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보통 미국인들 거의 절반이 그를 거부했다. 그것도 전쟁 수행중인 현직 대통령을 말이다.

〈화씨 9/11〉의 흥행 대박 성공과 지난 8월 말 공화당 전당대회장 앞 반(反)부시 시위에 50만 명이 참가한 사실, 그리고 이번 대선 투표율이 4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사실 등을 보면, 미국의 많은 보통 사람들이 부시와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반전 운동은 케리 선거 운동에 몰두하느라 지난 5월 아부 그라이브 포로 성학대 사건이 폭로됐을 때조차 제대로 시위 한 번 조직하지 못했다.

물론 부시 재선 이후 낙담과 사기저하 때문에 당장 운동이 불붙기는 쉽지 않겠지만, 운동의 성장을 가로막던 요인 가운데 하나가 제거된 셈이기도 하다.

부시는 지난 집권 4년 동안 미국의 정치적·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또, 전 세계에서 미국 정부에 반대하는 정서와 운동을 촉발·강화시켰다.

이런 양극화와 반작용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과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국내외에서 추진하는 데 거듭거듭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전쟁과 착취라는 부시의 세계 체제에 맞서 싸우고 단결하는 것은 전 세계 사람들 ― 〈뉴욕 타임스〉가 “또 다른 수퍼파워”라고 부른 ― 의 몫이다. 반전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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