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변함없는 남녀 임금 격차 ― 왜 이다지도 불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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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여성 차별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분노의 숫자다. 무려 15년 동안 그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2014년 8월 현재, 여성 임금노동자의 월평균임금(1백62만 원)은 남성(2백70만 원)의 60퍼센트다(김유선, ‘여성 비정규직 실태와 정책 과제’). OECD 국가들 모두에서 여성의 상대임금은 남성보다 낮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낮다.
지난 10여 년 동안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과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평등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커진 것에 비춰 보면, 이런 굼벵이 같은 불평등 완화 속도는 여성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일부 여성 차별주의자들이 ‘역차별’ 운운하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인 이유다.
남녀 임금 격차는 여성 차별의 결과다. 우선, 여성은 같은 일을 해도 임금 차별을 받는다. 1989년에 여성운동의 성과로 남녀고용평등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포함됐지만, 현실에서 이 조항은 무력화돼 왔다.
여성 노동자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실제 구현되려면 여행원제·여사원제와 같은 성별분리호봉제가 폐지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래서 결국 여행원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 후에도 기업주들이 여성 노동자 임금은 올리지 않고 남성 신입사원의 초봉만 삭감하는 꼼수를 쓴다든지, 인사제도의 이름만 바꿔 임금·승진 차별을 지속했다. 2000년대 들어서 금융권에 도입된 분리직군제는 여행원제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대기업인 효성의 울산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과 똑같은 공정에서 일하는데도 임금이 남성의 60퍼센트밖에 안 되는 현실을 폭로하며 소송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결국 기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KTX 여승무원의 사례처럼 외주화를 통한 간접 차별도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성 중립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여성이 집중돼 있는 직무를 간접고용으로 돌려 동일노동 동일임금법을 회피하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 견줘 비정규직에 더 많이 몰려 있는 것도 임금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여성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은 남성 정규직의 35.9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김유선, 같은 자료).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2000년대 초반 70퍼센트 가량에서 현재 55퍼센트로 떨어지긴 했으나, 남성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편이다. 게다가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방침 속에 임금이 극히 낮은 여성 시간제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어 여성 임금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큰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가 소규모 사업체에 더 많이 몰려 있다는 점도 임금 격차의 원인 중 하나다. 2009년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여성 임금노동자의 65.3퍼센트가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남성은 52.8퍼센트).
물론, 2015년 3월 현재 3백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여성의 비율이 34퍼센트 가량(김유선, ‘대기업 비정규직 규모: 고용형태공시제 결과’) 된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노조를 조직해 조건을 개선할 잠재력이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이른바 ‘성별 직종 분리’도 여성 임금이 낮은 원인으로 꼽힌다.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과 남성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이 다르고, 여성 비율이 높은 직종의 임금이 낮은 경향이 있다. 2005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분석을 보면, 직업 내 여성 비중이 70퍼센트 이상인 이른바 ‘여성 지배 직종’의 평균 임금은 ‘남성 지배 직종’에 견줘 절반이 조금 넘는다. 물론 여성 노동자들은 특정 성별에만 편중되지 않는 ‘혼합 직업’에도 30퍼센트가량 진출해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남성과 같은 직업을 가질 때조차도 동일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여성 노동자들의 근속 기간이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 때문에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것도 임금 격차의 주요 원인이다.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출산 연령대인 30대 초반에 떨어져서 40대 후반이 돼야 다시 높아지고, 재취업한 일자리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한국의 주된 임금 체계가 근속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급제이므로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에게 연공급제는 불리하다. 이 때문에 여성운동 일각에서는 직무급제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할 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이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는 데서도 보듯이, 이들은 “직무 가치의 공정한 평가”를 통한 여성 차별 해소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전체 임금 몫을 삭감하는 데만 관심 있을 뿐이다. 결국 직무급제는 기존의 여성 차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장기근속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데만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임금에 대한 정부의 총체적 공격에 분명히 반대하고, 생활임금 보장과 여성 임금 인상을 통해 임금 격차를 좁히는 투쟁을 해야 한다.
이중의 굴레
남녀 임금 격차는 자본주의에서 여성노동자에게 강요되는 이중의 굴레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뤄지지만, 노동력 재생산의 주된 책임은 개별 가족에게 맡겨져 있다. 노동력 재생산은 자본 축적에 필수적이지만, 자본가들과 자본주의 국가는 그 부담을 최대한 개별 가족에게 떠넘겨 비용을 절감하려 한다.
물론, 자본가들은 여성을 전업주부로만 남겨두지 않고 노동자로 착취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길 원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제한적이나마 양육 지원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가 계급에게 여성을 노동자로서 착취할 필요성은 심지어 경제 불황기에도 줄어들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여성 고용률을 끌어올리려 애쓰는 것이 그 사례다.
그럼에도 자본가 계급은 가사와 양육에 대한 대대적인 사회적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길 꺼린다. 더욱이 지금처럼 장기적이고 심각한 경제 위기 시기에는 과거에 이뤄진 부분적 사회화 조처도 공격받기 십상이다. 이런 자본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에게 이중의 굴레가 강요되고, 이것은 경력 단절 없고 안정적이며 임금이 높은 일자리에 취업할 기회를 제약한다. 또한, 자본가들은 여성이 가사노동의 주된 책임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차별을 정당화한다.
노동시장의 가부장제?
페미니즘에서는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이 ‘노동시장의 가부장제’ 때문이라고 보는 경향이 많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구조”가 가정 바깥의 노동시장에서도 유지돼, 여성들이 가정에서의 역할이 연장되는 주변적인 직업군에 몰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에서 남성들은 임금노동과 가사노동 모두에서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남성을 주요 생계부양자로 취급하는 이데올로기가 가족임금 제도로 정착된 것도 여성의 저임금을 정당화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는 몇 가지 난점이 있다. 우선, 가부장제가 노동시장으로 확장된 결과로 직업 분리를 설명하는 것은 오늘날 여성 노동의 진정한 성격을 보여 주지 못한다. 여성이 모두 가사노동과 유사한 직업에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1970년대에 여성 노동자들이 수출 제조업에 많이 진출한 것이나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이 판매·서비스·사무직에 많이 진출한 것은 그 직업들과 가사노동의 유사성 때문이 아니었다. 각 시기에 새롭게 팽창한 산업에서 여성 노동력이 대거 필요했기 때문이다. 설사 가사노동과 유사한 성격의 일이라 할지라도 집안에서 개별적으로 무보수로 하는 것과 잉여가치 창출 과정의 일부로서 집단적으로 하는 것은 명백히 다른 특성이 있다.
둘째 문제는 남성 내의 계급 차이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본가들은 여성을 이중의 굴레에 묶어둠으로써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성별에 따라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단결을 방해하고, 여성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므로 큰 이득을 누린다.
그러나 남성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 남성 노동자가 여성에 견줘 상대적으로 더 나은 처지라 할지라도, 노동계급 남성이 여성의 저임금과 차별 대우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성 차별은 계급 분열의 효과 때문에 남성 노동자 전체에게 해롭게 작용한다. 가령, 여성의 저임금은 오히려 남성의 임금 인상을 제한하기 위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성이 저임금 일자리에서 고통받으면 그와 함께 사는 남성 노동자는 생계 유지에 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임금에 대한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은 두 집단의 임금 추이를 봐도 알 수 있다. 1998년~2008년 동안 여성과 남성 임금은 동반 등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그래프). 또한, IMF 경제 위기 이래로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과 노동소득분배율이 큰 폭으로 하락해, 성별을 막론하고 전체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 자체가 줄어들었다.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존재하지만, 임금을 얼마나 많이 받든 자신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만 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자본가에게 빼앗긴다는 점에서 모든 노동자는 착취당한다. 이것은 노동계급 내 여성과 남성이 자본가에 대해서는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계급 내의 남녀 임금 격차를 좁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격차를 전체 착취 관계 속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노동계급 전체의 몫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노동계급이 단결해 여성 차별을 완화하는 대안을 추구할 수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투쟁
자본가들이 여성 노동자 차별과 착취를 정당화하려고 ‘남성이 주요 생계부양자’라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여성을 부차적 노동력으로 취급한다 해도, 이데올로기와 실재는 구분해야 한다. 남성 노동자들 대부분은 가족 전체를 부양할 만큼의 ‘가족 임금’을 받은 적이 없고, 여성들의 임금은 가족의 생계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 대학 청소 노동자들은 “내가 바로 가장”이라며 투쟁했다.
여성이 저임금에 비정규직 일자리에 많이 일하고 있다고 해서 여성 일자리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데서 덜 중요한 주변적인 일자리라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여성 임금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44퍼센트를 차지한다. 여성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수년 동안 계약을 갱신하며 지속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상당수 포함된다.
이것은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이 단지 가부장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스스로 투쟁할 수 있는 주체라는 뜻이다. 임금 차별은 고질적이지만,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차별 임금에 맞서 투쟁할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 대학 청소 노동자들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마트 노동자들 등 곳곳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맞서 투쟁해 왔다. 이런 투쟁 속에서 임금 차별을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자라날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