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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예비교사의 목소리:
"박근혜는 제국주의와 독재, 착취에 맞선 저항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

9월 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15년 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될 예정이다. 이 교육과정은 여러 교과목별로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중 독보적인 관심을 끌어 모으는 것은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라고 하겠다. 교과서 국정화 논의의 바람몰이가 시작된 것은 이미 2년 전부터였다. 이는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비판이 거세게 일던 가운데, 박근혜가 청와대 회의에서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안된다”(2013년 6월)고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한다. 이어서 정홍원은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통일된 교과서가 필요할 수 있다”(2013년 11월)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은 교육부장관 황우여가 총대를 맸다. “국사(‘한국사’도 아니고 ‘국사’라니!) 과목은 하나의 권위 있는 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말이다. 박근혜, 정홍원이 이야기한 ‘진실’, ‘역사’, ‘올바른 역사교육’ 같은 말들은 우리 예비 역사교사들을 가슴 설레게 하는 말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진실’과 ‘역사’, 그리고 ‘올바른 역사교육’에 대한 우리와 그들의 생각은 어째 많이 다른 것 같다.

‘올바른 역사교육’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 자신의 일생에 걸쳐 ‘역사적’ 관점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이는 탐구하고자 하는 특정한 현상이나 사건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의 변화상 전반을 꿰뚫으려 하는 시각을 말한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전제하게 되는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가 현실이라고 규정짓는 대상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 그것들은 다양한 주체(인간)들의 다양한 선택과 행동이 만들어낸 총체라는 것이고, 셋째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변화 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하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낙관을 가능하게 만든다. 정현백이 역사교육의 목적으로 ‘인간해방’을 이야기하며 역사교육의 사회비판적 기능을 중시했던 것은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다. 이러한 역사교육의 목적에 비추어 봤을 때, ‘하나의 역사’만을 강조하는 것은 재앙과도 같은 일이다. 국가기구가 인정한 하나의 목소리만 진리가 되는 체제가 ‘사회비판적 기능’, ‘인간해방’ 같은 것들을 고무할 리 없기 때문이다.

또 교과서 국정화는 학생들이 역사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데도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교과서는 흔히 공식적 지식으로 간주된다. 때문에 역사교과서를 처음 접할 때 학생들은 그것을 확정적 ‘사실 그 자체’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역시 탐구과정을 요하는 하나의 ‘역사자료’이다. 따라서 교사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 역시 하나의 해석이라는 것을 의식하도록 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역시 비판과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일원체제는 이를 어렵게 만든다. 다양한 발행주체들이 다종의 교과서를 편찬하게 하는 것은 하나의 사실에도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던진다. 즉 ‘공식적 지식’도 의심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 체제는 이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국가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국가기록이나 공식기록뿐 아니라 여성, 일반 민중, 천민 등과 같은 배제된 이들의 숨겨진 기억에도 주목하려 노력하는 역사학의 최근 경향과도 배치된다. “역사수업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역사적 사실이 우리가 배우는 ‘역사’로 자리 잡게 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양호환)

‘진실’, ‘역사’

이처럼 교과서 국정화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대안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힌트는 ‘진실’과 ‘역사’라는 두 단어에 있다. 이 두 단어 모두 박근혜가 강조했던 말이다.

모리스 알박스와 아스만 부부(얀/알라이다 아스만)는 기억의 사회적·문화적·집단적 속성에 주목했다. 이는 아무리 ‘개인적인’ 기억이라도 사회적·문화적·제도적으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억은 포함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선택적으로 남는다.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권력적·억압적 속성을 띠게 될 수밖에 없다. 한 세기도 전에 칼 마르크스가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 주장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는 다양한 장치들이 동원되는데, 이 글에서 문제 삼는 역사교과서도 그 장치들 중 하나다. 따라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는 “무엇이 ‘역사’로 채택되어 ‘진실’로 남느냐”라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앞에서 보았다시피 교과서 국정화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13년, 교학사 교과서가 0에 가까운 채택률을 보이려 할 무렵이었다. 실제로 교과서 국정화론자들은 대부분 교학사 교과서 옹호론자들, 뉴라이트 인사들이었다. 사람들이 국정화론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들이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싶어 하는 것들, 그리고 역사에서 배제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뻔하다. 그들이 식민지 근대화론과 대한민국 정통론 등을 통해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국가, 반공, 근대화(경제성장)이다. 이런 역사 서술에서 이승만, 박정희를 비롯한 한국의 지배자들은 한반도의 경제성장을 주도하며, 북한으로부터 ‘자유 세계’를 지켜왔고, 국가의 시련을 극복해 내는 데 앞장서 온 이들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뼛속까지 친일·친미’였던 이들을 옹호하자면 한국의 ‘민족’ 개념을 형성하는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조직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저항의 역사에서 근대화의 역사로 재조직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여기에서 자연히 배제되는 기억들은 제국주의와 독재에 맞선 저항의 기억이고, 한국 자본주의가 “제 몸에서 피와 오물을 쏟으며”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진실’과 ‘역사’라는 두 단어와 박근혜 사이의 거리는 확실히 멀어 보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투쟁과 대안

‘올바른 역사교육’, ‘진실’과 ‘역사’를 충족시키는 대안은 교과서의 국정화가 아니다. 오히려 교과서의 내용구성은 자유로워야 하며 누구나 교과서 발행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하고 교과서 선택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즉 자유발행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교과서 국정화 같은 ‘꼴통’스러워 보이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 때문에 기존의 검정제로 복귀하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검정제나 인정제는 인가의 최종주체가 국가라는 점에 있어 검열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학사 교과서가 논란의 중심에 서자 교과서 8종 가운데 7종에 수정명령을 내리며 교학사 교과서를 밀어줬던 것은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였다.

이미 전국역사교사모임 같은 교사단체, 전교조 등은 물론이고 여러 학회들과 개인들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역사교육에 하등 도움되지 않는 국정교과서의 등장을 막고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항들을 더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나도 교사가 되면 이런 투쟁들에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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