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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의 성 상품화 중단하라

얼마 전 한 대학 축제에서 성 범죄를 소재로 주점 메뉴 이름을 지어 논란이 됐다. 해당 학과는 ‘성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 했다고 변명했지만 명백히 여성에 대한 강간과 살인을 희화화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대학 축제에서 여성에 대한 비하적 표현이나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이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분위기는 결코 한두 대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 대학 주점 천막에는 “술도 먹고 너도 먹고”라는 홍보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주점 메뉴들의 이름은 일부러 ‘야동’ 제목을 연상케 만들어졌다. 주점에서 여학생들이 몸에 딱 붙는 치파오나 가터벨트, 망사스타킹을 신고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축제 중 데이트할 여성을 경매하는 “노예팅”도 있다. 축제만이 아니라 대학 동아리 공연 포스터 등에서 심심치 않게 성적 이미지와 표현들이 등장한다.

대학의 ‘야한 문화’는 오늘날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야한 문화’의 일부다. 1990년대 여성 가수의 배꼽티를 두고 큰 논란이 벌어졌던 보수적인 분위기는 이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이돌 가수들의 노출과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안무는 이제 더는 놀라운 일도 아니게 됐다. 한국에서도 텔레비전에서 봉춤이 여성에게 좋은 운동으로 소개되고 있고, 온갖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여성 연예인의 몸매를 카메라로 훑어 내리기 바쁘다.

이런 상황이 뭐가 새로운 걸까? 여성들은 오랫동안 성적 대상으로 여겨져 오지 않았나? 고깃집 벽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부터 핸드폰 기기변경 광고까지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자신감 상승”이라는 이름으로 부추겨지고 있다.

얼마 전 여성단체들의 거센 항의로 폐지된 〈렛미인〉은 “뚱뚱하고 못생긴” 여성들의 인생을 성형수술로 “구제”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참가 여성을 때리고 폭언을 일삼고 이혼을 요구하던 남편이 성형수술 후 “완벽한 모습으로 거듭난” 참가 여성을 보고 180도 바뀐 태도를 보여 준다. 외모와 성적 매력이 여성의 자신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비슷한 취지에서 최근 몇몇 총학생회는 취직 면접 자신감을 높여 준다며 성형수술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지난 7월 국립국어원은 ‘몸매가 착하다’는 말을 표준어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의 신체는 이제 겉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심성까지 표현하게 됐다. 이제 여성의 몸은 부위마다 ‘애플 힙’, ‘물방울 가슴’ 등 등급이 매겨져 모든 사람들이 그 기준에 맞게 몸을 가꿔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됐다. 매년 여름철 날씬한 몸매를 위해 끼니를 걸러서 영양성 빈혈로 병원을 찾는 10~20대 여성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또 성 상품화는 성을 인간의 본성에서 따로 떼어내 낯선 것으로 만든다. 성이 관계 속의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통제 바깥에서 사고팔리고 평가받는 것이 됐다. 성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기 쉽다. 더 높은 토익 점수와 더 많은 자격증처럼 성적 능력도 하나의 ‘스펙’이 돼버려, 자신의 성적 능력을 보여 줘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린다. 남성들은 카사노바처럼 수많은 여성의 신체를 탐하고, 여성들은 섹시한 몸매를 통해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고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이 ‘능력’이 됐다.

대학 내의 성 상품화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 상품화의 일부다. ⓒ사진 임수현

낯선 성

성이 더욱 상품화될수록 우리는 성을 진정으로 누릴 수 없게 됐고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만 부추겨졌다. 성적 표현들이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인 시대이지만 진정한 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교육은 형편없이 부족하다. 올해 8월 교육부는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하면 실수인 척 발등을 밟는다” 등 황당한 내용이 포함된 성교육 자료를 일선 학교에 내려 보냈다.

지난해 이맘때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축제 의상 규제를 발표했다. 이를 두고 한편에선 여학생들의 인권을 위해서 복장규제는 ‘필요악’이었다는 입장이 존재했다. 다른 한편 김어준은 이를 두고 “조신한 딸 콤플렉스”라고 했고 〈한겨레〉 정혁준 기자 역시 ‘차도르와 부르카라도 필요하냐’며 “꼰대스러운” 결정이라 비판했다.

후자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성 상품화에 내재돼 있는 엄연한 여성 차별을 ‘쿨하게’ 없는 셈 취급하자는 것이다. 성 상품화 광풍으로 말미암아 여성 개개인이 느끼는 압력과 고통에도 무관심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그렇다고 의상을 강제로 규제하는 것 역시 성 상품화라는 엄연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여성 개개인을 ‘헤픈 여자’로 비난한다는 문제가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성을 더 자유롭게 즐기고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지지한다. 그러나 성 상품화는 오히려 진정한 성 해방을 가로막는다. 대학 축제에서 온갖 성적 표현들이 난무하고 심지어 ‘남성 잡지’인 〈맥심〉은 강간 살해와 여성에게 약물을 먹여 성폭행하는 것도 소위 ‘섹시한’ 문화로 포장해 상품으로 팔지만, 게이나 레즈비언들의 조건 없는 사랑은 이상하고 역겨운 것으로 억압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학 내에서 성 상품화나 여성 차별적 문화에 반대하는 것은 대학 내 좌파들의 중요한 과제고 임무다. 성 상품화는 여성을 인격체가 아니라 사물처럼 대상화함으로써 마치 여성을 ‘보기 좋은 것’, ‘소유할 것’으로 여기는 생각을 정당화하며 여성 차별을 ‘세련되게’ 재생산할 뿐이다. 대학 내에서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서 성 상품화에 맞서고, 진정한 성 해방에 대해 토론하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에선 대학생 대상의 ‘랩댄스 클럽’에 반대하는 운동이 조직되기도 했다.

물론 성 상품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 증상이므로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하는 것만이 성 상품화를 없애고 진정한 성 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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