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방한 반대 관련 재판 방청기:
집시법의 고무줄 잣대를 재판장에서 폭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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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부당하게 기소된 김승주 동지의 1심 재판이 열렸다. 검찰은 지난해 4월 24일에 진행된 ‘오바마 방한 반대 청년·학생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이 기자회견을 ‘미신고 집회’로 규정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본 김승주 동지에게 검찰은 ‘집시법 위반’이라며 벌금 1백만 원을 구형했다.
오바마의 방한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동아시아 불안정을 심화할 것이므로 당시 기자회견에서 청년·학생들이 비판 목소리를 낸 것은 완전히 정당했다.
김승주 동지의 재판 전에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회견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학생위원회,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서울지역대학생연합, 전국학생행진, 한국청년연대가 공동주최했다.
판사는 시작부터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김승주 동지를 지지하기 위해 모인 많은 학생들을 보자마자, 판사는 ‘재판장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들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김승주 동지를 지지하러 온 학생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운 데 부담을 느낀 듯했다.
검사는 ‘1백만 원을 구형합니다’ 하는 말 한 마디만 했다. 증인 심문이나 구형 이유 설명도 하지 않았다. ‘집시법 위반’의 근거도 허술했다. 집시법에는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만을 금지한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오바마 방한 반대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위협은 전혀 없었다.
김승주 동지는 사법부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최후진술을 했다. 김승주 동지는 “(당시) 손에 든 건 마이크와 종이 팻말뿐이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입니다” 하며 검찰의 기소 논리를 비판했다.
“구글 동영상에서 기자회견 영상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저는 구호를 안 외치는 기자회견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찾아봤더니 ‘한미동맹 강력하게 지켜내자! 힘차게 구호합시다!’ 하는 어버이연합의 기자회견이 딱 나왔습니다. 사진에 불도 지릅니다. 이중 잣대가 아니라면, 판사님 도대체 저에게 어떤 죄가 있습니까? 이번 검찰의 기소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와 있는지를 묻게 합니다.”
검찰의 이중 잣대를 속 시원하게 꼬집은 것이다. 방청석에서는 자연스럽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판사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박수를 치느냐’며 호통을 쳤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김승주 동지를 응원하고, 선고 날에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곳으로 와 우리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로 했다.
김승주 동지는 집시법을 명분으로 한 국가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앞으로도 김승주 동지의 법정 투쟁을 지지하며, 함께 연대하자. 선고는 12월 16일이다. 다음은 김승주 동지의 최후 진술문이다.
최후 진술문
“저를 기소한 것은 명백한 이중잣대입니다”
김승주(대학생,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저는 대학생 신분으로 생활비도 겨우 벌고 있는 상황에서 벌금 1백만 원을 구형받았습니다. 30분 남짓 진행된 한미정상회담 반대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입니다.
저에게 적용된 집시법에는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만을 금지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누구에게도 폭행, 협박, 손괴, 방화 같은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손에 든 건 마이크와 종이 팻말뿐이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입니다.
검찰은 기자회견 당시 참가자들이 옥외에서 다수가 모여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집회로 볼 수 있고, 이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집시법상 신고의 대상이 아닌 기자회견인데 사전에 경찰에 가서 이게 집회인지 기자회견인지 검사를 받아야 합니까? 또한 기자회견장 주변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바람에 마이크로 진행한 우리 기자회견 내용을 그들이 듣게 됐다 한들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판사님, 구글 동영상에 기자회견 영상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저는 구호를 외치지 않는 기자회견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찾아봤더니 “한미동맹 강력하게 지켜내자! 힘차게 구호합시다!” 하는 어버이연합의 기자회견이 딱 나왔습니다. 사진에 불도 지릅니다. 이중잣대가 아니라면 판사님, 도대체 저에게 어떤 죄가 있습니까? 이번 검찰의 기소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묻게 합니다.
대법원은 미신고 집회일지라도 평화롭게 진행된다면 금지하거나 해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자회견 자리에는 경찰이 직접 와서 우리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앰프로 기자회견을 해산하라면서 방해했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검찰은 저에게 벌금을 1백만 원이나 내라고 합니다. 집시법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법입니까? 오히려 민주적 권리를 침해받고 피해를 입은 쪽은 저 아닙니까? 판사님, 저는 형식적, 내용적, 법적 모든 면에서 완전히 무죄입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수조 원까지 불법 자금을 주무르는 정치인이나 재벌, 고위 공무원들에게는 벌금 1백만 원이 푼돈일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학생 등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시국을 보십시오. 당시 청년 학생들이 비판했던 한미정상회담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노동개혁과 대학 구조조정, 온갖 민주주의 후퇴 등 곳곳에서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30분짜리 학생들의 기자회견조차, 그리고 최소한의 언론의 자유조차 벌금형으로 억누른다면 어떻게 국가와 대통령이 하는 일에 평범한 사람들이 자유로이 왈가왈부하겠습니까.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주최했던 7개 단체들도 모두 황당해하며 재판부에 검찰 기소 철회 요구 의견서를 함께 내 줬습니다. 저는 저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단체들의 민주적 권리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재판부가 벌금 가지고 학생들의 비판적인 주장과 활동을 차단하려는 게 아니라면 검찰의 손을 들어선 안 됩니다. 저에게 즉각 무죄를 선고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