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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신디컬리즘)의 강점과 약점

20세기 초 혁명을 위해 전념한 사회변혁적 노동조합들이 크게 성장했다. 랠프 달링턴이 신디컬리즘 노조들은 무엇을 표방했고 한계는 무엇이었는지를 검토했다. 랠프 달링턴은 영국 샐퍼드대학교 고용관계학 교수로 여러 노동조합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고, 《사회변혁적 노동조합 운동》(책갈피, 2015)의 지은이이다.

20세기의 첫 20년 동안 공격적인 파업이 국제적으로 분출하면서 사회변혁적 노동조합들이 여러 나라에서 등장했다. 사회변혁적 노조들은 노동조합 투쟁을 혁명적으로 만들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려 애썼다.

그들은 관료적 지도자들이 장악한 전통적 노조들에도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의회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발휘하는 힘에 기대고자 했다.

사회변혁적 노동조합 운동(이하 신디컬리즘) 활동가들은 몇몇 기존 노조들이 신디컬리즘 원칙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기존 노조에서 분리해] 혁명적 노조와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신디컬리즘의 영향을 받은 노조 중 가장 대규모였고 가장 잘 알려진 노조는 프랑스의 노동조합총연맹(CGT)이었다. 이탈리아의 노동조합연합(USI), 스페인의 전국노동조합총연맹(CNT), 아일랜드의 아일랜드운수일반노조(ITGWU)도 신디컬리즘의 영향을 받은 노조들이었다.

신디컬리즘은 노동계급의 단결된 힘으로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자 했으나, 이론과 실천 면에서 약점도 있었다. 1911년 영국 리버풀 운수 파업. ⓒ사진 출처 yoliverpool.com

이 신디컬리즘 노조들은 제1차세계대전 개전 전까지 여러 해 동안 노동조합 운동에서 다수 경향을 차지했다. 이 나라들 외에서도 신디컬리즘은 노동조합 활동가 중 만만찮은 소수를 결집시켰다.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이 그랬다. 영국의 신디컬리즘은 제1차세계대전 개전 이전 몇 년 동안 활동한 산업신디컬리스트교육동맹(ISEL)이 대표했다.

국제 신디컬리즘 운동은 급속하게 성장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주류 노동조합들이 [노동자들의] 사회적·정치적 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자 지식인들”이 신디컬리즘 운동을 이끌었다. 미국의 ‘빅 빌’ 헤이우드와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 아일랜드의 짐 라킨, 영국의 톰 만과 JT 머피 등이 그들이었다.

혁명

노동자들의 투쟁성이 치솟고 정치적 급진화가 일어나면서 신디컬리스트들이 수많은 청중을 확보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조성됐다. 신디컬리스트들은 1911년 리버풀 운수산업 파업, 1913년 더블린 대중파업과 직장폐쇄, 1914년 이탈리아의 ‘붉은 한 주’ 총파업 같은 주요한 파업을 지도했다.

국제 노동조합 운동 내 한 경향으로서 신디컬리즘의 전성기는 20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1920년대 초 혁명적 노동자 투쟁이 퇴조하자 신디컬리즘도 쇠퇴했다.

[한편] 1917년 러시아 노동자들은 볼셰비키 당에 이끌려 국가 권력을 장악했다. 이는 [신디컬리즘 운동에 대한] 중대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이의 제기였다.

러시아 혁명의 뒤를 이어 혁명적인 공산당들이 창립됐다. 공산당들은 대다수 신디컬리즘 조직들을 빠르게 대체했다.

그래도 신디컬리즘은 그 시대 이곳저곳에서 노동계급 투쟁의 물결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신디컬리즘은 노동자들의 전투적 행동과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을 고무했다. 그리고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위한 방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데올로기적·정치적으로 두드러진 기여를 했다.

신디컬리즘은 자본주의를 혁명으로 완전히 전복해야만 노동계급이 해방될 수 있다고 본 계급 전쟁의 사상이자 운동이었다. 보통의 노동조합들은 ‘공정한 노동에 대한 공정한 임금’을 표어로 내걸었지만, 신디컬리스트들은 임금 제도 자체도 철폐하고자 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한사코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을 이루려고만 애쓰지 말고 혁명적 산업 투쟁으로 더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선거 승리에 매달리는 것을 노동계급의 힘이 가장 약한 전장을 고르는 것으로 보았다. 신디컬리스트들이 보기에 노동계급의 경제적 잠재력은 생산 현장에서 가장 강력했고, 따라서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신디컬리스트들은 국가는 계급 지배의 도구이며 타도해야 한다고 했던 혁명가 칼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의회주의·기회주의·배신을 증오했을 뿐더러 더 나아가 정당의 필요성을 거부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정치적 쟁점이 노동자들의 단결을 구축할 수 있는 집단적 노동조합 투쟁과 산업 조직에 종속돼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개혁주의적 노조들의 부문주의·관료주의·개혁주의·보수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미조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자기 조합원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계급 전체를 아우르고 혁명적 노선을 따르도록 노조들을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노조의 성격과 목표를 바꾸려 애썼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개혁주의적 노조에 반대해 혁명적 노조를 창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신디컬리스트들은 전투적인 산업 투쟁과 직접행동 전술을 심화시키는 것에 노동계급을 해방시킬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그들은 이런 투쟁이 누적돼 나타날 최고 형태의 투쟁이 혁명적 총파업이라고 봤다.

볼셰비키 혁명의 승리는 전 세계 신디컬리스트들을 고무했다. 그들은 볼셰비키 정부의 초청을 받아 러시아에서 열린 코민테른 회의에 참석해 전략과 전술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신디컬리스트들의 혁명적 잠재력을 알아보았다. 트로츠키는 신디컬리스트들을 가리켜 “부르주아지와 싸우길 원할 뿐 아니라 [개혁주의자들과] 달리 정말로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길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신디컬리스트들의 이론과 실천에 상당한 결함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날카롭게 논쟁도 했다. 특히, 기존의 개혁주의적 노조를 수구적 지도자들에게 내맡기는 식으로 활동하면 신디컬리스트들이 더 광범한 노동계급 대중으로부터 고립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설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혁명가들이 자신들의 대의 쪽으로 평조합원들을 설득하려 애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노동자 권력을 세우는 데 전념하는 혁명적 노조를 건설하려 애쓰는 것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를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명확하게 설명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조합은 필연적으로, 눈앞의 제한된 개선을 이뤄내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은 개혁주의적 교섭위원이자 노동쟁의 중재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노동조합 운동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을 표현하지만, 해결하는 수단은 아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노동조합이 혁명적 조직으로서의 구실과 노동조합으로서의 구실을 동시에 하게 하려다 곤란을 겪었다.

볼셰비키는 신디컬리스트들이 정치 쟁점을 산업 투쟁보다 경시하는 것도 비판했다. 볼셰비키는 이것이 개혁주의의 정치/경제 분리를 반대로 뒤집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면 개혁주의에 맞선 일관된 정치적 대안을 제공하지 못하게 된다.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혁명적으로 타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디컬리스트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노동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 즉 노동자 평의회를 기초로 노동자 국가를 수립하는 일 없이도 총파업만으로도 자본주의 국가를 혁명적으로 타도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자본가들이 반드시 벌일 폭력적인 반격을 격퇴하려면 노동자 국가가 꼭 필요하다.

볼셰비키는 신디컬리스트들이 정당을 너무 혐오한 나머지 노동계급 조직과 의식의 불균등성을 극복하는 데서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고 주장했다.

이 약점 탓에 신디컬리스트들은 노동자 투쟁의 수위가 떨어졌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는 영속적인 조직을 구축하는 데서 한계가 있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혁명적 소수’가 할 수 있는 지도적 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신디컬리스트들의 이론은 불충분해서, ‘전위’적인 혁명적 전투 정당 이론이 되지는 못한다고 볼셰비키는 지적했다.

레닌의 정당은 산업 쟁점과 정치 쟁점을 결합하고, 그것을 노동자들의 당면 투쟁과 결합해 혁명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이루고자 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의 대부분은 [볼셰비키의 비판에] 시큰둥했다. 하지만 적잖은 신디컬리스트들은 신디컬리즘 전략과 가차없이 결별하고 신생 공산당들에 가입했다.

신디컬리즘과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 사이의 논쟁은 서섹스 대학교의 ‘팝업’ 노조가 보여 주듯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의가 있다. 서섹스 대학교의 일부 노동자들은 올해[2013년] 초에 [전국 노조와 별개인] 독자적 비공인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들은 기존 노조가 각종 삭감 정책과 민영화에 제대로 맞서 싸우지 않는다고 느끼며 분노했다.

이러한 활동 방식은 노동조합 관료 문제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신디컬리즘과 비슷한 문제가 있다. 노조 관료를 피해 노동조합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노동조합 관료를 자유롭게 만들어 줄 뿐이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의 활동은 기존 노조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을 내버리게 돼, 최상의 투사들이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동떨어지게 되는 문제를 낳는다. 그리고 기존 노조 안에서 평조합원들을 조직할 가능성도 경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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