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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참여정부

올해 수출증가율은 32퍼센트로 사상최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3/4분기까지의 경제성장률 또한 5.1퍼센트로 거의 잠재성장률에 육박하고 있다. 전국 가구의 가구당 월평균소득은 2백88만 8천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7.3퍼센트 증가했다.
이 지표들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노무현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평등구조의 고착화와 소득양극화 현상의 심화로 올해 3/4분기 상위 20퍼센트의 흑자율은 36.3퍼센트인 데 비해, 하위 20퍼센트는 적자율이 41.7퍼센트에 이른다.
또한 상반기의 개인파산 신청은 1999년의 7.4배를 이미 넘어섰고, 엥겔계수는 2004년 3/4분기 28.5퍼센트로 1999년 23.4퍼센트에 비해 5.1퍼센트포인트 더 높다.
뿐 아니라 2004년의 전기요금연체, 국민연금체납 및 건강보험료체납자는 1998년보다 각각 1.5배, 11.9배 및 2.3배가 더 많다.
이와 같이 모든 지표들이 하나같이 외환위기 때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더 핍박해졌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IMF 외환위기가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경기침체였다면, 2004년 불황은 그 원인이 내수경기 침체로서 일차적으로 신용정책의 실패에 있고, 이차적으로는 빚더미 위에서 신음하는 저소득층에게 구매력을 부여하는 정책을 쓰기는커녕 도리어 부동산 투기 잡기, 사교육비 잡기, 방카슈랑스, 성매매 방지법 등을 졸속으로 한꺼번에 시행하는 바람에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
저소득층이 삶의 벼랑 끝에서 자칫하면 빈곤의 벼랑으로 밀려날 한계계층이라면 이들과 마찬가지로 저소득층을 상대로 장사하는 유통업자나 중소기업 또한 시장 경쟁 체계의 한계선상에 있다.
이들은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살아나지 않으면 연쇄 도산할 것이 뻔하고, 한 번 도산하면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일반적으로 복지는 비용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구매력 상실 때문에 올해 불황에 대한 경제 살리기 처방은 복지를 통한 저소득층의 구매력 확보이다.
정부가 현재의 경기침체가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 실패에 기인한 저소득층의 구매력 상실이 원인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헬리콥터로 저소득 지역에 돈을 뿌려서라도 구매력을 살려 내는 처방을 통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연쇄 도산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상황 아래에서 향후 3년 동안 기준이 될 2005년도 최저생계비가 설정됐다. 지난 12월 1일에 발표된 2005년 최저생계비는 8.9퍼센트 인상됐는데, 이 수치는 얼핏 보기에는 높은 것 같지만, 그 동안 물가수준만 반영해 매년 최저생계비를 낮추어온 점을 감안할 때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수준이다.
정부는 보사연에서 정밀한 설문조사와 가계부 조사 등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산출한 1백23만 원의 4인가구 최저생계비를 회의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1백13만 6천 원으로 삭감했다.
김근태 복지부 장관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 과정에서 최저생계비 인상률을 9퍼센트 이내에서 정하라고 지시했고, 정부측 대표들은 표준가구를 조정해 최저생계비 기준을 낮추고, 핸드폰 사용료, 국민연금보험료 및 우편요금 등을 필수품에서 빼고, 색종이를 비롯한 많은 품목들을 하향조정했다.
과거 군사정부도 하지 않았던 이러한 처사는 보사연이 10억 원의 예산을 들여서 계측한 조사결과를 정부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이자 보사연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처사이다.
한국의 GDP와 무역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그러나 한국의 최저생계비 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이다. 정부는 OECD국가의 위상에 걸맞는 기초생활보장 수준을 국제적 표준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선진적인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당연히 향후 3년 동안 적용될 최저생계비는 최소한 OECD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한 최하위권 수준인 평균소득의 40퍼센트에 근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2005년 4인가구의 최저생계비는 4인가구 추정 평균소득(2004년 경제성장률 5.1퍼센트를 적용)의 31.6퍼센트에 불과하며, 전체 수급자의 70퍼센트가 넘는다.
시민단체들은, 이 땅의 핍박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신임과 재신임을 거쳐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가 처음으로 설정하는 올해의 최저생계비를 현재의 주어진 예산 틀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복지국가에 이르는 꿈을 가진 정부가 그 징검다리로서, 예산한계를 넘어서는 ‘복지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의지의 싹을’ 키울 것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시했다.
그러나 막상 발표된 최저생계비는 과거 군사정부보다 더 심한 설정과정상의 문제점을 노정시켰으며, 그 수준 또한 어처구니없이 낮다.
이러한 처사는 바로 노무현 정부가 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저소득층이 빈민으로 대량으로 무너져 내린 현재의 상황이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는 점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없고, 그 대책 또한 강구하지 않는 정부라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류정순(빈곤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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