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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내 논쟁:
탈북자의 국내 입국을 환영해야 한다

주체주의자들은 남한(또는 제3국)에 입국하는 탈북자를 ‘사실상’ 환영하지 않는다.

내가 ‘사실상’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그들이 탈북자의 국내 입국을 ‘반대한다’고는 결코 분명히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으레 그렇듯이 자신들의 스탈린주의적 입장을 은폐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주체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렇다. 1995년 대홍수 이후 북한 주민 가운데 일부가 양식을 구하러 중국에 가는 일이 생겨났다.

그들의 대부분은 양식만 구하고 곧바로 귀국한다. 장기 체류하고 있는 나머지도 대부분은 북한 귀환을 원한다. 오직 극소수만이 남한이나 제3국으로 망명한다.

그러므로 재중국 ‘탈북자’는 대부분 어느 나라에나 있는 불법체류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탈북자의 남한 입국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기획탈북 때문이다.

기획탈북 조직자들은 북한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미국 정보기관들과 남한 우익단체들, 그리고 탐욕스런 중국 브로커들로 이뤄진 국제 커넥션이다.

그러나, 음모에 ‘유인’돼 ‘사실상의 납치와 인신매매’로 입국하는 것만 제외하면 탈북자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불법체류자일 뿐’인데도 왜 그들의 강제송환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일까? 주체주의자들은 한국에 오는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강제추방도 지지할까?

그들은 탈북자들이 남한 입국 후 여러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도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때로 일부 주체주의자들은 남한 거주 탈북자들의 정착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가령 12월 2일 5시 고대법대 신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반미청년회 정태흥 대표의 답변).

그러나 기획탈북을 통해 들어왔다 해서 환영하기가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돈을 쓰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모순이거나 생색일 뿐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결국 ‘기획탈북’에 의한 입국(‘기획입국’)이 원죄라는 것이다. 주체주의자들은 탈북자의 남한 이주를 사실상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북한 체제 전복과 침략을 위한 미국의 음모(‘기획탈북’)라는 견지에서 설명한다.

이런 주장의 문제점은 첫째, 미국이 북한 주민의 대량 이탈과 그들의 자국 입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인권법은 위선의 산물이다. 미국은 인권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탈북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탈북자 인권과 수용에는 진정한 관심이 없다. ‘다함께’ 김하영 동지는 이렇게 지적한다.

“미국이 노골적인 대북압박을 해 온 1990년대 내내, 그리고 부시 정부 들어서도 평범한 탈북자들의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정치적 이용 가치가 높고 고급 정보를 가진 소수의 고위층을 제외하면 말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지난해까지 총 8명(김경필 전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서기관 부부 등 외교관·과학자 등)에게만 망명을 허용했다.……

“미국은 탈북자를 ‘프라이오리티[우선순위] 2’ 대상에 지정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탈북자의 한 해 망명 상한선을 정해 탈북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으려 한다.

“2005년의 탈북자 망명 상한선은 5백 명 수준으로 결정될 예정이다. 쿠바인 망명 실제 허용이 망명 상한선의 10퍼센트 수준에서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미국 정부가 탈북자 5백 명을 다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벌써부터 미국 정계에서는 탈북자 수용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최근 미 하원 법사위는 국토안보부에 서한을 보내 북한이 북한인권법을 악용해 간첩이나 테러리스트를 미국에 잠입시킬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온 난민(신청자)들에 대해 구금을 명하고 있다(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03년 5∼6월).

“미국의 이런 위선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다. 북한인권법의 상원 통과를 눈앞에 뒀던 올해 9월 27일, 미국측은 중국 상하이 미국인 국제학교에 진입한 탈북자 9명을 추방했다. 추방이 곧 체포와 강제 송환으로 이어질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북한인권법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지난 10월 말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40대 북한인(연해주 지역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이 들어와 망명을 신청했다. 그런데 미국 총영사관측은 미국 망명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를 러시아 당국에 인도할 방침이다.

“지난 11월 23일에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이민법원이 북한 특수부대 지휘관 출신이라고 밝힌 탈북자의 정치 망명 요청을 기각했는데, 그 이유는 ‘북한 출신임을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난민들은 안전을 위해 신분증과 여권을 없애는 경우가 허다한데, 각국 정부는 이런 점을 난민 요청 기각의 사유로 곧잘 이용하곤 한다.……”

둘째, 주체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탈북자가 ‘기획탈북’ 조직자들의 접촉과 유인에 의한 사실상의 납치와 인신매매를 통해 국내 입국하는 것은 아니다.

탈북자가 만일 북한에서 어지간히 살 수 있었다면, 또 중국에서 체류 또는 거주할 권리가 주어졌다면, 남한으로 오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북한 인접국들인 중국과 남한이 탈북자의 이주 권리를 인정한다면 기획탈북이 아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체주의자들은 기획탈북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주와 왕래의 자유에 대해 침묵한다.

중국 체류자든 남한 입국자든 탈북자를 고통에 빠뜨리는 것도 바로 이주와 이주자에 대한 억압이다. 주체주의자는 북한·중국·남한이 이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주의자들은 해결책으로 기획탈북 근절을 요구한다. 이것은 북한·중국·남한 정부들이 기획탈북을 빌미로 북한 이탈 이주자를 억압하는 것을 사실상 지지하는 것이다.

지금 북한·중국 정부들은 북한 주민의 이주 자유를 억압하면서 ‘기획탈북’을 이유로 대고 있다. 남한 정부도 이런 태도를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셋째, 주체주의자들은 기획탈북이 국제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탈북자 색출·송환을 하고, 이는 재중 북한인 불법체류자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탈북이 국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탈북자의 존재를 둘러싸고 남북한과 중국·미국의 정부들이 ‘체제 우위’ 언쟁을 하는 것이 ‘국제 문제’의 실상이다.

브로커 등이 연루된 남아시아인들의 ‘기획이주’ 때문에 한국 정부와 필리핀·방글라데시·네팔 등의 정부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진보진영이 이 가운데 북한 편을 드는 것이 옳은가? 오히려 아무 편도 들지 않고 오직 탈북자만을 옹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거의 다 피억압자들이다. 잘 먹고 잘 사는데도 조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넷째, 주체주의자들의 북한인권법과 기획탈북 등 미국의 음모에 대한 반대는 북한 내의 억압에 침묵하는 한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진정한 진보운동가라면 미국의 음모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인권 미사여구에 가려진 위선을 들춰낼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진보운동가는 미국의 대북 압박과 적대 정책에 반대한다.

하지만 전쟁도 아닌 고작 음모와 유인에 의해 붕괴될 위험이 있을 만큼 허약한 체제는 어떤 체제인가? 미국의 그 알량하고 위선적인 권리조항에 이끌려 수많은 북한인들이 탈북할 것이 두렵다면 그런 체제는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셈이다.

1989년 동독의 숙련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이 대거 서독으로 이탈했을 때, 그리고 몇 주 뒤 수백만 명이 베를린장벽 제거를 요구했을 때 결국 동독 체제의 문제점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닌가?

물론 서독 체제가 더 나았다는 것은 아니다. 동독인들의 환상은 분명히 환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들이 과거에 살았던 체제가 더 좋았다고 향수에 젖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옛 동독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당은 스탈린주의 정당이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옛 동독 공산당(SED)의 후신인 민주사회주의당(PDS)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변신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었다.

북한 주민의 중국 이동이 단지 대홍수로 말미암은 경제적 궁핍 때문이었다는 주장은 북한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반증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사회주의는 그 정의상 자본주의보다 진보하고 질적으로 우월한 사회다.

아무리 큰물과 큰 가뭄이었다지만 자연재해에 그토록 취약하고, 아무리 많은 이재민이었다지만 자기 인민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체제가 무슨 사회주의라는 말인가?

사실, 북한 경제는 1970년대 말부터 성장이 감속하기 시작해 1980년대 말에는 정체하고, 1990년대 대부분 동안에는 실제로 수축했다.

그것은 ‘우리식 사회주의’이기는커녕 옛 소련 경제의 리듬에 종속돼 있었을 뿐 아니라, 사실은 세계경제의 리듬에 종속돼 있다. 만일 북한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다섯째, 주체주의자들은 궁극적 해결책으로 북한의 경제 사정과 식량 사정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든다. 그래서 이를 위해 미국의 대북관계 정상화, 남북경협 강화, 대북 식량지원·전력 지원 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과 남한·일본 정부들이 그런 요구를 수용하는 제스처를 취할 때 그들에 대한 개량주의적 태도를 낳을 것이다.

이미 2000년 이후 김대중 정권 후반부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이 지속가능할까?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로 발전하는 자본주의의 특정 단계임을 강조한다.

북한 민중의 고통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와 북한 체제가 그들에게 가하는 착취와 억압의 멍에 자체를 제거할 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전에라도 우리는 국내 입국하는 북한 출신 노동자·민중을 환영해야 한다.

미국의 음모가 사실일지라도 탈북자 인권 외면의 구실이 될 수는 없다. 미국 권력층의 일부가 장차 북한에 친미 정권을 세울 요량으로 해외망명 임시정부를 구성할 북한 관료 출신 극소수 탈북자들을 비호할 수 있다. 그럴지라도 그것 때문에 수많은 평범한 탈북자들의 불행이 외면돼도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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