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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엔:
혈액형의 신화

당신의 혈액형은 무엇인가? A형이라면 소심하고, B형이라면 자유분방하고, O형이라면 성격이 좋을 것이다. 이런 혈액형으로 분류하는 성격을 보면서 ‘맞아 맞아’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누구나 재미 삼아 친구들과 얘기해 봤을 혈액형 바람이 최근 다시 불고 있다. ‘혈액형별 연애 작전’, ‘혈액형 다이어트법’, 그리고 최근에는 〈B형 남자〉라는 노래와 영화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과연 이 “피 바람”은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혈액형은 수혈 과정에서 일어나는 혈액 응고나 응집 현상을 연구하던 칼 란트스타이너라는 사람이 1901년에 처음으로 A, B, O라는 세 가지로 구별했다.(그 후에 AB형이 발견됐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면서 혈액형을 나누는 기준이 세분화해 훨씬 다양해졌다. ABO식 이외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Rh+, Rh- 말고도 현대 의학은 혈액을 6백여 가지로 구분한다.

그리고 혈액형이 성격을 규정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모든 생리적·사회적 조건을 똑같이 한 상태에서 오로지 혈액형만을 다르게 놓고 실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실험 사례는 결코 없었다.(그리고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신의 성격이 혈액형별 성격과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심리학자 B R 포러는 성격 진단 테스트를 하고 학생 전부에게 똑같은 내용의 진단 결과를 나눠주면서 그 결과가 자신과 잘 맞는지 아닌지 0부터 5(가장 잘 맞는 것)까지 평가하도록 했다.

1948년에 그 평균치는 4.26이었고, 수백 회 반복된 이 테스트의 평균은 4.2를 기록했다. 이렇듯 사람들은 “막연하고 일반적인 성격 묘사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맞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 자신에게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혈액형별 성격을 주장하는 것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인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을 무시한 채 오직 ABO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조야한 유전자 결정론이다. 유전자로 여성과 흑인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성격이 결정된다면 다른 유전자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인간의 성격은 그가 자라며 접한 복잡한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유전자가 같은 쌍둥이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다른 성격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듯이 말이다.

실제로 혈액형은 처음 발견됐을 당시 독일에서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우생학과 결합됐다. 그런데 우생학과 결합하려던 시도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해 사라졌다가, 1971년 일본 작가 노미 마사히코의 책 《혈액형 인간학》이 인기를 얻으면서 유행을 일으켰다.

노미 마사히코는 《혈액형 인간학》에서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소수파에 속하는 AB형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이와 같은 한국인의 혈액형 분포상의 특성이 그 나라의 국민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는 앞으로 연구할 과제 중 하나”라고 말하며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했다.

또한 혈액형별 성격 구분은 한 개인의 다양한 성격을 종합적으로 보지 못한 채 특정 부분만을 강조하며 선입관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성격이 있지만 환경에 따라 다양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사람은 사회를 변화시키면서 스스로도 변한다. 사회 변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면 혈액형 따위에 근거한 조야한 결정론에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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