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혁명적 신문 - 로자 룩셈부르크의 〈적기〉

여러분 주위에는 폴란드계 독일인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에 관한 훌륭한 비디오를 가진 〈소셜리스트 워커〉 독자가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빌려 보라.

훌륭한 장면이 많은데, 그 중에는 나찌 돌격대의 원조격인 자들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을 때 그녀의 동지들이 그녀에게 베를린을 떠나라고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이를 거부한다. 특히, 자신의 신문 〈적기〉가 제대로 배포돼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반혁명 공세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뒤인 1919년 1월 15일 우익 준군사조직의 폭력배들이 그녀를 살해했다. 룩셈부르크는 노동대중의 투쟁과 혁명운동에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그녀가 편집한 신문 〈적기〉는 1918년 11월에 태어났다. 당시는 제1차세계대전이 유럽에서 4년 넘게 계속되던 시기였다.

죽음과 고통에 시달리던 독일 노동자들과 병사들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 그 전 해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1918년 11월 초 독일 북부 항구도시 킬에서 수병들이 일으킨 반란이 며칠 사이에 널리 퍼져 독일 전역에서 대중파업과 탈영이 속출했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자 정부가 무너졌고, 수백 년 간 계속된 군주제가 폐지됐으며, 전쟁이 끝났다.

〈적기〉는 공업도시 함부르크에서 출범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동지인 파울 프뢸리히가 이끄는 일단의 무장 군인들이 〈함부르크인들의 소리〉(Hamburger Echo)라는 일간지의 인쇄소를 장악했다.

그들이 만든 신문 〈적기〉는 노동자·병사 평의회를 지지했다. 노동자·병사 평의회는 혁명의 조직적 초점이었고 권력 장악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적기〉는 처음부터 혁명과 함께 호흡했다. 반란 덕분에 출옥한 로자 룩셈부르크가 편집진에 가담했다.

룩셈부르크는 다른 좌파 신문들은 흉내내지 못하던 방식으로 〈적기〉의 지면에서 운동을 고무하면서 자유를 느꼈다.

그녀는 엄청나게 재능있는 저술가이자 선동가였으며 사상가였다. 그녀는 1871년 폴란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10대에 지하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그녀는 체포되지 않기 위해 18세에 폴란드를 떠나야 했다.

그녀는 독일 사회민주당(SPD) 안에서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SPD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당의 보수적인 위계질서와 충돌했다.

1914년 8월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SPD는 붕괴했다. SPD를 포함해 유럽 전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자국 국가를 지지하며 몰락했다.

룩셈부르크와 그녀를 따르던 사람들은 소수파로 전락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자 반발도 늘어났다.

1918년 11월 혁명이 일어난 뒤 〈적기〉는 반항적인 병사들, 수병들, 투쟁적 노동자들 사이에서 준비된 청중을 발견했다.

대중파업과 시위 들을 다룬 신문기사들은 운동의 진전을 원하는 사람들의 견해와 구호 들을 부각시켰다.

룩셈부르크가 쓴 기사들은, 1914년에 운동을 배반했고 이제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혁명의 선두에 서 있는 SPD 지도자들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녀가 이끄는 조직이 너무 취약해서 SPD에 성공적으로 도전하지 못한 것이 비극이었다. 그녀의 조직과 신문은 SPD나 노조 지도자들의 기구와 비교할 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혁명가들을 중상모략하고 무장한 우익세력들을 이용해 혁명가들을 고립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는 여전히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다시 싸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가 남긴 〈적기〉의 마지막 사설은 이렇게 끝난다.

“‘바르샤바에서 질서가 회복되다!’, ‘파리에서 질서가 회복되다!’, ‘베를린에서 질서가 회복되다!’ 50년마다 ‘질서’의 수호자들은 이런저런 투쟁의 중심지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베를린에서 질서가 회복되다!’ 어리석은 자들아. 당신들의 ‘질서’는 사상누각이다. 혁명은 내일 다시 분출할 것이고, 당신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며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나는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