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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농업이고, 쌀 재협상인가?

노무현 정부의 쌀 재협상 결과 발표에 농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통상 책임자들은 어쨌든 관세화는 유예되지 않았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관세화 유예가 만사형통은 아니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이후 10년 동안 관세화가 유예되는 대신 해마다 일정량을 수입해서 지금 곡물 창고에는 쌀이 넘친다. 그런데도 이번 쌀 협상은 기존 의무수입량의 두 배를 결정했다.
정부 관료들이 한동안 관세화가 대세인 것처럼 굴다가 관세화 유예를 결정한 것은 미국 협상단의 태도와 관련있다.
미국 정부와 곡물 대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가격경쟁력(중국 쌀 가격은 미국의 3분의 1이다) 때문에 내심 관세화가 더 불리할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미국 협상단은 되도록 의무수입물량을 늘릴 것을 강요했다.
중국 정부도 의무수입물량을 8퍼센트 이상 늘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진정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검역 규제 완화다. 중국은 여러 가지 작물들을 검역 규제 없이 한국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애쓰고 있다.
‘관세화 유예를 위해 의무수입물량을 늘리고 수입 쌀 시판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관세화를 받아들이느냐’라는 선택은 농민들과 평범한 소비자들의 근본 이익과는 무관하다.
정부 관료나 신자유주의 논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농촌 인구 15만 명이 미국 농작물 생산의 50퍼센트를 담당하는 미국처럼 한국도 기업농 혹은 준기업농에 해당하는 약 50만 농민만 육성하자.’ ‘대기업이 참여하는 농업회사법인도 늘리고, 농지도 기업들이 쉽게 사들일 수 있도록 하자.’
한 마디로 말해, 시장주의 농업정책에 농민의 삶과 소비자들의 밥상을 내맡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농산물 시장이 더 개방될수록 이득을 보는 쪽은 세계 곡물 메이저(대기업)들이다.
WTO 농업 협정을 만드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한 카길은 한국의 농산물 수입의 6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카길 같은 곡물 메이저만이 이득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카길의 대행업체로서 미국 밀 수입과 가공업자로 선정돼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던 기업은 바로 삼성이었다.
앞으로 농산물 수입 개방이 더 확대된다면 식품 유통업체들도 농산물을 싼 값에 사들여 비싸게 팔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박정희 정권 이래 줄곧 한국 농업 정책의 핵심은 농업 멸시였다. 개방 농정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산 수입 소고기를 싼 값에 사들여 3배나 높게 팔아 폭리를 취한 것도 한국의 정부와 기업이었다. 이윤 경쟁에 밀린다는 이유로 농지를 싸게 기업한테 넘기려는 것도 바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다.
그러는 사이 농민들은 ‘규모 있게’ 파산하고 유전자 조작된 위험한 식품들이 우리 밥상을 지배한다.
농산물 시장 경쟁 때문에 농산물 생산은 넘쳐나고 가난한 농민들은 파산하지만 기아는 더 심해지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약 8억 5천만 명이 만성적 영양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요동치는 시장경제에 먹을거리를 내맡긴 결과다.
따라서 수입개방 반대 요구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수입개방 반대 요구는 세계 각 나라의 농민들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
세계의 가난한 농민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에 대적하는 요구가 중심 구호로 채택되는 게 효과적이다.
시장주의 농업 체제에서는 좀더 싼 값의 쌀을 수출하는 나라의 농민들이 수입개방으로 결코 이득을 보지 못한다.
태국산 쌀이 인도네시아로 아주 싼 값에 수출됐지만 태국 농민들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 태국 개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산 쌀 수출의 13.2퍼센트만이 최빈층을 위해 쓰인다. 쑹 쿨라 롱하이 지역의 태국의 유명한 쟈스민 쌀 재배 지역에서는 유전자 조작된 종자를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들이나 CP 같은 태국의 대기업들만이 유일한 수혜자다.
중국 농민들은 다를까? 중국 농민들 사이에서는 이런 민요가 유행이다. “술집 앞엔 고급 승용차가 번쩍이고, 술집 안엔 공무원이 취해가네. 패스트푸트 한 끼에 수천 위안, 농민 1년 수입과 맞먹네.”
농민 단체는 수입개방 반대 요구보다는 WTO와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의 이윤 몰이의 희생양이 되는 가난한 농민들 모두의 공통의 요구를 중심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 순간 가난한 농민들은 도시의 노동자들과 위험한 식탁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의문을 느끼는 광범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전농이 내년 홍콩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담에 일찌감치 도전장을 내민 것은 그 자체로 흥분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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