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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프러제트〉:
여성 참정권 투쟁의 진정한 역사

여성 참정권 쟁취로 이어진 급진성의 고양은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주디스 오어는 여성 참정권 운동은, 영화 〈서프러제트〉가 보여 주는 것과 달리, 중간계급이 이끄는 운동 이상의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자기 계급을 위해 싸운 수많은 노동계급 여성의 대중 운동을 포함했다.

주디스 오어는 오는 7월 방한해 노동자연대 단체가 주최하는 ‘맑시즘2016’에서 ‘여성 차별과 해방’ 등을 주제로 연설한다.

영화 <서프러제트>. 2016년 6월 23일 개봉.

여성 참정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영국 기성 정치권을 뿌리까지 뒤흔든 거대한 반란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행진을 벌였고 영국 전역에서 열린 대중 집회에는 여성들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여성들의 권리를 지지하지 않은 정부 각료들은 끊임없이 공격당했다. 사회 곳곳이 투쟁의 영향을 받았다.

소수 대담한 여성들의 우체통 폭파 같은 영웅담이 유명하지만, 진정한 얘기는 따로 있다.

대중이 정치적으로 고양되고 그것이 영국 국가의 안정을 뒤흔드는 상황 속에서 이 중대한 투쟁이 절정에 이르렀다.

제1차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 몇 년은 ‘노동 대불안기’(노동자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진 시기)였다. 노동조합 조직과 전투성이 분출했고, 여성들도 그 흐름에 대거 함께했다.

1911년 한 해에만 파업 일수가 1천만 일에 이르렀다. 같은 시기 영국 지배계급은 아일랜드에서는 반제국주의 저항에 직면해 있었다.

영국 지배자들은 통제력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시위대는 구타당했고 감옥에서 단식 투쟁을 벌인 여성들은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는 고문에 시달렸다.

여성 참정권 투쟁은 에멀린 팽크허스트,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 실비아 팽크허스트, 아델라 팽크허스트가 1903년 여성사회정치동맹(WPSU)을 설립하기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다.

영화 〈서프러제트〉가 보여 주는 것과 달리, 여러 출신 배경의 여성들이 모두 뭉친 단일한 운동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지자였던 노동자 앨리스 마일린은 1906년 여성사회정치동맹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녀는 “실크 등 비싼 소재의 옷을 입은 멋드러진 여성들”이 다과를 즐기는 광경을 묘사하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여성들까지 투쟁에 나서게 된 데에는 기득권층이 변화에 너무나 완고하게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랭커셔 면직 공장의 여성들은 급진적 버전의 참정권 운동의 핵심을 이뤘다. 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참정권을 위한 투쟁과 사용자에 맞선 투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셀리나 쿠퍼는 7살 때 일을 시작한 면직공장 여성 노동자였다. 쿠퍼는 잉글랜드 북서부 전역을 돌며 노동조합이 여성 참정권을 지지하도록 호소했다. 1906년 위건에서 열린 야외 공개 집회에서 쿠퍼는 노동계급 여성은 노동자로서의 목표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급 여성은 남성들과 같은 조건이라는 걸 뽐내려고 정치적 힘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남성들과 같은 목적, 즉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하고자 참정권을 바라는 것이다.”

출신 배경이 다른 여성들이 함께 조직하고 행진하는 일이 때때로 있었지만, 계급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노동계급 남성에게도 참정권이 없는 상황에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조건으로 참정권을 보장하려는 법을 지지할 것인지 말지를 놓고 노동운동 안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노동당 내 일부는 이 법을 ‘귀부인들의 법안’으로 치부하며 반대했다. 이 법이 부유한 여성들에게만 참정권을 보장할 것이므로 보수당만 득을 볼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논쟁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노동계급 남성까지 모두 포괄하는 “보통선거권”을 요구했다. 이것은 1912년까지 노동당의 공식 입장이었다.

이 주장은 더 급진적으로 들리지만 때때로 여성 참정권 지지를 분명히 하지 않는 변명으로도 이용됐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면서도 항상 이 투쟁을 전체 노동자 권리의 확대를 위한 투쟁의 일부로 봤다. 반면에 팽크허스트 가(家)는 오로지 “여성 참정권”을 위한 투쟁만을 중시했다.

〈데일리 메일〉은 여성사회정치동맹에게 ‘서프러제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성 참정권 운동 내부에서 투쟁 전진 방안을 놓고 여러 견해가 날카롭게 충돌하곤 했지만, ‘서프러제트’는 여성 참정권 운동 전체를 일컫는 낱말이 됐다.

팽크허스트 가(家)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계속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려면 더욱 극적인 공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부자와 권력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음은 확실하다. 몇몇 행동들은 대단한 상상력을 보여 줬다.

어느 날 전국의 골프 선수들이 모이는 경기가 열렸는데, 경기장 바닥에는 잔디가 산성 물질로 탄 채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행동에는 명백히 소수 여성만 참가할 수 있었다.

이런 전술들은 대중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던 노동계급 활동가들을 배제했다. 노동계급 활동가들은 그런 행동을 벌이다 붙잡히면 중간계급 이상 여성들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을 것임을 알았다.

수감됐다가 석방된 ‘팽크허스트의 친구들’은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열린 만찬회에 참석해 축하받았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은 그런 행사를 열 만한 연줄이 없었다.

급진적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과 ‘서프러제트’의 길은 점차 벌어졌다. 1907년 이후 여성사회정치동맹은 노동운동과의 연계를 끊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 테레사 블링턴은 “노동계급 여성과의 관계는 가차없이 끊어졌다”고 썼다.

크리스타벨은 하원의원들이 “여성 프롤레타리아보다 여성 부르주아지에게 더 큰 감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기층의 노동계급 여성들은 길거리에서 연설하고, 대중적 서명 운동을 벌이고, 공장을 돌며 유인물을 뿌렸다. 여성 노동자들은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고무됐다.

지도적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에이더 닐드 츄는 당시 자신이 느낀 감정을 묘사하며 “찬란한 인생의 북적거리는 시간”으로 꽉 차 있었다고 했다.

여성이 선거에 출마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다.

셀레나 쿠퍼는 보궐 선거 중 하워스의 한 시장에서 썩은 달걀과 토마토를 던지는 군중을 맞닥뜨렸다.

쿠퍼는 연단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여러분이 무엇을 던지든 저는 여기에 서 있을 것입니다. … 이 아름다운 마을은 브론테 자매가 없었다면 누구도 모르는 마을이었을 것입니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여성 활동가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는 더 첨예해졌다. 상층 계급 여성들은 거의 전폭적으로 전쟁을 지지하며 참정권 요구를 포기했다.

그러나 노동계급 활동가들과 실비아 팽크허스트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이 전쟁을 이윤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보며 반대했다.

종전 후,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30세 이상 여성이 마침내 참정권을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성인 여성 40퍼센트는 참정권이 없었다. 21세 이상 여성이 모두 참정권을 얻게 되는 것은 그보다 10년 뒤의 일이었다.

여성 참정권 투쟁은 계급을 가로지른 여성들의 단결은 오로지 일시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독일 혁명가 클라라 체트킨이 말했듯이, 모든 남성에 맞선 모든 여성들의 이해관계 통일은 “반짝거리는 거품”처럼 곧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여성 참정권 투쟁은 그 무엇도 투쟁 없이는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

사회의 권력자들에게 옳은 일을 행하라고 읍소하는 방식이 성공한 적은 없었다. 권력자들에게 옳은 일이란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억누르는 것이다.

참정권이든, 출산휴가든, 낙태권이든, 개혁은 모두 사회의 최상층에 있는 자들의 손을 비틀어 쟁취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투표권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쟁취할 것이 더 남았다. 바로 세계이다.

정치적 노선이 갈렸던 팽크허스트 가문

팽크허스트 가문의 정치적 뿌리는 맨체스터의 독립노동당이었다.

그러나 에멀린과 그의 두 딸 크리스타벨·아델라의 정치적 궤적은 그 시작과는 매우 멀어졌다.

[에멀린의 또 다른 딸] 실비아는 이스트런던에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직했다. 1913~14년 더블린 직장폐쇄 때 실비아는 노동자 파업을 지원하던 아일랜드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와 함께 연설했다.

실비아는 사회주의 정치와 노동계급 투쟁에 헌신했고, 이 때문에 가족과도, 여성사회정치동맹과도 결별했다.

[실비아가 활동한] 여성사회정치동맹 이스트런던 지부는 결국 노동자사회주의연맹으로 바뀌었다. 노동자사회주의연맹의 기관지 〈여성의 전함〉은 1917년 러시아 혁명 때는 〈노동자의 전함〉으로 이름을 바꿨다.

러시아 혁명에 감명을 받은 실비아는 공산주의자가 됐다.

실비아의 어머니와 자매들은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부르주아 여성들에 대해 예측한 바대로 행동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남성 특권’에 맞선 투쟁에서는 사자처럼 행동하는 부르주아 여성들은 대부분 참정권을 얻고 나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반동 진영의 유순한 양이 될 것이다.”

1914년 에멀린은 지배계급의 전쟁 노력을 돕기 위해 참정권 운동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성사회정치동맹의 신문 〈서프러제트〉는 1915년 〈브리타니아〉*로 이름을 바꿨고, 팽크허스트 가(家)는 전쟁 지지 선동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남성들이 조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야 한다고 여기며 남성들에게 흰색 깃털을 줬다. 그들은 파업 노동자들을 맹비난했다. 팽크허스트 가(家)의 지지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운동을 반反 볼셰비키 운동이라고 불렀다.”

종전 후 에멀린은 성병의 유해성과 남성 순결의 필요를 주장하는 운동을 펼쳤다.

에멀린은 보수당에 입당해 1927년에는 이스트런던의 스테프니 선거에서 보수당의 후보로 출마했다. 1926년 총파업 당시 에멀린과 크리스타벨은 둘 다 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여성 특별 경찰 부대에 자원 입대했다.

아델라는 호주로 이민을 가 파시스트가 됐다. 제2차세계대전 때 아델라는 나치를 도운 죄로 수감됐다.

큰 결함이 있지만 환영할 만한 영화 〈서프러제트〉

여성 참정권을 쟁취한 투쟁의 과정은 매우 멋지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유명 배우를 많이 섭외했고, 에드워드 7세 시대(1901~10) 런던의 부자와 빈민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쓰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화면에 처음 등장하는 말이 영화의 근본적 결함을 드러낸다. 영화는 노동계급 여성인 모드 왓츠(캐리 멀리건 분)를 중심에 놓았지만,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운동을 완전히 좌지우지한 것처럼 묘사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에멀린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여성 참정권 투쟁은 마치 소수의 카리스마적 여성과 그 지지자들만 한 것인 양 그려진다.

모드는 세탁소에서 장시간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한다. 그러나 영화의 노력이 가상하긴 하나, 모드를 연기한 멀리건의 생기 발랄한 얼굴은 계속 악화되기만 하는 빈곤 속에서 자란 사람의 얼굴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모드는 웨스트엔드에서 상점들을 공격하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우연히 만난다. 그녀는 의회에 출석해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진술한다. 그녀는 의원들 앞에 앉아서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일했고, 일주일에 13실링을 번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파괴하려는 과정에서 드러난 지배계급의 잔악함을 잘 묘사했다. 영향력 있는 남편이나 보석금이 없는 여성들이 가장 크게 고통받는다.

그러나 영화는 시기와 계급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관리자의 성적 괴롭힘을 피해 도망친 젊은 여성의 피난처는 부유한 여성 참정권 운동가의 하인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참정권 운동에 참가한 수많은 노동계급 여성은 언급되지 않는다. 실비아 팽크허스트조차 “전투적” 행동에 참가하기를 거부하는 역할로 딱 한 번 나온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전투성”은 팽크허스트 가(家)가 벌인 폭력적 사보타주 운동을 뜻했다. 영화는 그런 행위가 운동의 전진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당시 많은 운동 참가자들은 그런 전술을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보아 거부했다.

이런 흠결이 있음에도 이 영화는 환영할 만하다. 폭넓은 청년들에게 억압과 불의에 맞선 역사적 투쟁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성들이 어떻게 권리를 쟁취했는지에 관한 논쟁을 촉발했다. 이제 사람들은 법에 도전하며 행동에 나설 필요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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