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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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 네덜란드 정부가 안락사를 합법화하자, 안락사 합법화 논쟁이 불붙었다.
네덜란드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온전한 정신으로 꾸준히 요구할 때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안락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환자가 물리적·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해 의사에게 자신의 결정을 말하기 어려울 경우 서면[변호사가 공증한 유서]으로 안락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보수·우파를 대변하는 로마 교황청은 네덜란드 의회의 안락사 합법화 결정이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지금 안락사를 용인하는 나라는 스위스·콜롬비아·벨기에 등이다. 미국 오리건 주는 1996년부터 말기 환자1)에 대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는 네덜란드가 처음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의사협회가 안락사 합법화 논쟁을 점화했다. 5월 10일에 의사협회는 윤리지침 개정안에 소극적 안락사, 대리모, 낙태, 뇌사 인정 등을 포함시켰다. 그러자 정부는 소극적 안락사가 “실정법에 어긋난다”고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의사협회는 윤리지침 개정안을 실정법 테두리 안에서 적용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안락사는 “신중한 고려 하에,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나 상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극약을 처방하거나 혹은 단지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죽게 만드는 것. 윤리학자나 종교계, 철학자 등은 적극적 안락사와 수동적 안락사를 다른 것으로 취급한다. ‘자비로운 죽음’이라고도 불린다.”2)
안락사는 기본적으로 환자 자신이 죽음을 간절히 원하는 상황에서 이뤄진다. 설령 환자가 스스로 견해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라도 환자가 이미 고통 없이 신속하게 죽기를 바랐다면 ― 예컨대, 유서를 통해 ― 그 또한 안락사의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대부분의 말기 환자들은 자신의 본래 표정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은 그를 쉽게 알아 볼 수 없다. 깊이 주름이 패이거나 약에 취해 흐리멍덩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본 채 신음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말기 환자들 가운데 고통을 견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반대로 고통 없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1998년 서울의 모 병원에 22세의 김모 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입원했다. 그는 목뼈가 부러져 목 아래의 모든 부분이 마비되었다. 그의 신경은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머리만 살아 있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에게는 21세의 아내가 있었고 2살짜리 딸이 있었다. 그의 의식은 명료했고 사고 이후 의식이 깨어나 자신의 처지를 알고는 죽기를 원했다. 그는 튜브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해야 했다. 소변은 가는 튜브를 통해 배설됐고, 기저귀에다 대변을 봤다. 몸에는 전혀 감각이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할 수도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죽음은 허용되지 않았다. 일 년 후에 그는 온몸에 욕창(몇 일이고 같은 자세로 누워 있으면 몸무게에 눌려 혈액순환이 안 돼 엉덩이나 등이 썩는다)이 생겨 다시 입원해야 했다. 그의 몸의 근육은 모두 위축되어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이 되었고 살점을 도려내는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그는 계속 어떻게든 죽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역시 죽음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몇 개월 뒤에 그는 폐렴으로 죽었다.
윤리학자들이나 법조계 등에서는 최종 행위자가 누구인지, 혹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든지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나 ‘소극적 안락사’, 혹은 ‘의사 원조 자살’ 등으로 구분한다.3)
그리고 이런 구분에 따라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하되 적극적 안락사나 의사 원조 자살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환자와 의사의 협조에 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환자 자신이 간절히 죽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분은 현실적으로 잘 적용되지도 않는다. 예컨대, 의사가 자살을 위한 준비를 모두 갖춰 놓고 환자는 버튼만 누르면 죽을 수 있는 장치를 이용한다면,4) 이것은 “적극적 안락사”인가 아니면 “소극적 안락사”인가?
죽을 권리인가 아니면 살인인가?
미국 안락사 합법화 운동의 주요 슬로건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control over one's life)이다.
그러나,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죽음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그들은 안락사를 살인으로 여긴다.
그러나, 안락사는 결코 살인이 아니다. 안락사는 환자의 요청으로 의사가 치료를 중단·생략하거나, 약물을 투여해 삶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환자가 스스로 죽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살인(타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환자가 어떤 상황에서 의사의 손에 죽기를 바라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지독한 고통으로부터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안락사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과 북미뿐 아니라, 우리 나라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80퍼센트가 소극적 안락사를 지지했다.
사실, 지금도 안락사는 말기 환자 자신과 보호자와 의사 간의 암묵적 합의 하에 실제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
한편, 안락사를 합법화할 경우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며 안락사를 반대하기도 한다.
일명 ‘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에게 실형을 선고했던 미국 뉴욕 주는 세계적으로 안락사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법을 유지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1994년 안락사 합법화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구성된 뉴욕의 ‘생명과 법에 관한 특별조사반’은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5) 뉴욕 주는 그 보고서에 근거해 안락사 합법화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용과 실수 발생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극소수를 위해서 원조 자살을 합법화했다가는 (어떤 안전 대책을 법 조항에 명기한다 하더라도) 다수의 집단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안락사를 합법화한다면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과 지각을 무디게 할 것이다.” 따라서 “환자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보고서의 논지에 따르면, 안락사를 합법화할 경우 인간의 세계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듯이 생명 경시 풍조가 걷잡을 수 없이 만연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죽을 권리’를 부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까지 제기한다. 즉, 인간 본성에는 통제하기 어려운 사악함이 인간들의 내면에 깔려 있고, 따라서 법률이나 제도를 통해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락사와 무차별 살인은 분명히 다르다. 안락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상황과 조건을 무시하고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기계적으로 안락사를 적용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안락사를 합법화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비극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뉴욕 주의 보고서는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것보다 불법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이 “쇠약한 환자들에게 위협이 되지도 않고 사회적 결속을 해치지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 되면, 고귀하게 여겨야 할 환자의 선택과 삶의 종말은 승합 차량6)이나 밀실에서 비밀스럽게 일어난다. 오히려 안락사를 불법화할 경우, 그리하여 죽음의 과정이 은폐될 경우, 의사와 환자 보호자 간의 합의에 의해 죽음을 원하지 않는 환자를 의도적으로 살인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
안락사 합법화론자들의 핵심 주장은 죽음을 개인이 선택할 권리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자 하는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안락사는 합법화돼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개인들의 ‘죽을 권리’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드는 것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1. 암처럼 불치병에 걸렸거나 위독한 상태에 빠져 치료로 더 이상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환자를 가리킨다.
2. Mosby, Medical, Nursing & Allied Dictionary, 4th edition.
3.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각각은 다음 같이 구분된다.
- 적극적 안락사 - 의사가 환자에게 독약을 투여하는 것
- 소극적 안락사 - 생명 유지 장치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거나 생략하는 것
- 의사 원조 자살 - 의사가 환자에게 독약을 주고 그 스스로 자살할 수 있게 하는 것
4. 실제로 생각하는 끔찍한 장면들과 달리 안락사를 합법화한 곳에서는 이런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5. 생명과 법에 관한 특별조사반, When Death Is Sought : Assisted Suicide and Euthanasia in the Medical Context, Albany, NY : New York State Task Force on Life and the Law, 5월, 1994년.
6. 잭 케보키언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승합 차량을 종종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