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새 아이콘이 되고 싶어 하는 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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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은 “대한민국의 모든 적폐를 청산”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것을 존재 자체가 적폐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같은 보수세력과 함께하자고 한다. 박근혜 정권 탄생의 주역이고 세월호 진실을 감추려고 온갖 패악질을 한 자들, 지난 9년 동안 사람까지 죽여 가며 개혁 염원을 짓밟기 바빴던 자들 말이다.
안희정은 “차기 정부를 이끌 후보들이 전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미움과 분노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립과 갈등의 낡은 20세기 정치를 끝내자고 한다. 이런 방향이 “우클릭이 아니라 뉴클릭”이고 “새로운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전혀 새롭지 않다. 안희정은 2005년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며 과반 의석을 잃은 노무현 정부가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에게 대연정을 제안한 것이 ‘20세기의 낡은 진보와 보수의 틀을 깨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은 한나라당(당시 당대표가 박근혜)의 거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정부였어도 했을 만한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남는 장사”라며 이라크 파병을 밀어붙이고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제주 해군기지 건설 결정 등 친제국주의 정책을 앞장서 추진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비정규직 법안을 개악하고 집권 5년 동안 노동자 1천여 명을 구속했다.
철도 민영화도 추진했다. 비정규직은 늘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개방통상국가로 가는 데 있어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며 한미FTA를 밀어붙였다.
즉, 한나라당과 “사실상 내용적 대연정”(임종인 전 의원)을 하며 “민주개혁엔 무능”(손호철 교수)하고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데는 가히 혁명적”(최장집 교수)이었던 것이 노무현 정부 5년의 실상이다. 노무현 정부는 대중의 개혁 염원 대신 한국 자본주의의 국제적 위상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만 매달렸다. 반칙과 특권이 사라지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라며 노무현 정부의 등장을 지지한 대중의 염원은 이렇게 배신당했다.
그 결과가 2007년 대선 참패였다. 그러므로 “노 전 대통령 때 이루지 못한 대연정을 실현해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겠다”는 안희정의 노무현 계승은 바로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겠다는 것이다.
안희정은 “참담한 역사의 원인은 대부분 지배층의 분열 때문”이라면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단결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연정, 초당적 협력, 대타협이 안희정의 화두인 이유다. 이승만과 박정희도 “그 자체로 자랑스러운 역사”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안희정은 지배계급의 무책임함을 꾸짖는 게 아니라, 그 무책임한 지배계급의 단결을 위해 대중의 개혁 염원을 제약하기를 택한 것이다.
집권 전략뿐 아니라 정책도 보수다
안희정이 제시하는 정책들도 이러한 방향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만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태우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는 6공화국 정부들의 경제 정책을 이어가자고 한다. 여기에는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박근혜의 창조경제도 포함된다. 한마디로 한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충실한 정권이 되겠다는 것이다.
시장 경쟁을 “공정한 민주주의 시장 질서”라고 포장하며 “기업가들이 영웅이고 지도자”라고 치켜세운다. 당연히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는 필요한 것이고, 투쟁하는 노동자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2011년 밤에 잠 좀 자자며 투쟁하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향해 “파업도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직장폐쇄도 사업주의 권리”라며 사실상 ‘기업가’의 입장에 섰다. 이러니, 이재용 구속을 반길 리도 없다.
그는 의료 민영화와 환경 파괴 등을 부추기는 규제프리존법을 조속히 입법하라는 서명까지 했다. 당시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는 안희정의 행보에 “유감을 표하며 규제프리존 추진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도 “현실에 입각해 문제를 바라보면, 비정규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정규직화 요구를 거부한다.
“국민은 공짜밥을 원하지 않는다”며 무상급식이나 반값등록금에도 반대한다. 복지 요구를 구걸취급하는 것 같아서 역겹다. 대처 흉내라도 내보려는 걸까?
안희정은 노골적으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영합하자고 한다. “여전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힘은 우리의 생존과 융성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를 도우려 하는 미국의 힘을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반도를 제국주의 갈등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으며 불안정을 부추길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얘기다.
그래서 보수 언론은 안희정을 띄워 주류 야당들 전체에 우경화 압력을 넣는 듯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등은 안희정이 민주당 경선에서 질 경우, 그 지지층을 흡수할 계산인 듯하다. 문재인도 비슷한 계산일 텐데, 안희정에 가려서 그렇지 그도 중도보수층을 염두에 둔 인물 영입과 행보를 해 왔다. 안희정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이 더더욱 “정 떨어지는” 이유다.
지금 평범한 사람들의 힘으로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가 권좌에서 쫓겨나 구속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안희정이 대연정을 해서 실현하려는 바로 그 정책들을 펼친 죗값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 그래서 지난 겨울에 매주 아스팔트에서 보낸 사람들에게는 안희정도 ‘적폐’에 불과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