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집회로 기소된 김인식 씨 재판:
지배자들의 위기 책임 전가에 맞선 투쟁을 방어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2015년 박근혜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도록’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는 개악을 밀어붙였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이 개악에 합의했다. 그해 5월 6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 개악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공무원연금 개악에 항의하는 공무원 노동자들과 노동단체의 회원들은 국회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노동자연대 김인식 씨는 이날, 노동자연대를 대표해 연설을 하면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어하고 개악안 통과 저지를 위해 싸울 것을 호소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 집회가 ‘국회 앞 100미터 집회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면서 김인식 씨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이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내렸다. 김인식 씨는 부당한 결정에 항의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11월 30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결심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함께 싸웠던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방청을 했는데 대부분 대학생이었다.
국회 앞 100미터에선 집회 말라?
유창진 변호사는 변론에서 국회 앞 100미터 집회 금지 조항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변호인은 정치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당시 상황에서 공무원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연 것도 마찬가지로 인정될 필요가 있음을 차분히 주장했다.
“헌법은 정치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현재 집시법이 신고제인 이유는 정치·사상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야간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것은 집회 제한을 과잉으로 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국회 앞 100미터 집회 금지 조항은 장소와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의사를 발현할 현실성과 효과를 생각해야 합니다. … 그 당사자인 공무원들은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한정적입니다. 법적으로 파업이 금지돼 있고 이익 단체 활동도 금지돼 있습니다. 오직 집회만이 가능합니다. 의결이 긴박한 상황에서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연 것입니다. … 이런 시위에 대해 처벌한다면 입법 과정에서의 국민 의사 표현을 침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당시 상황의 급박성과 사안의 첨예함을 고려했을 때 집회가 인정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미 올해 초, 재판을 받은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이 조항의 부당함에 대해 위헌제청신청을 했지만 해당 재판부는 이를 냉담히 거절했다. 그러나 이미 박근혜 퇴진 운동은 그동안은 철통같은 집회 금지 구역이었던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진출해 수십만 명이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당시 대중적 압력 속에서 행정법원은 집회와 행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국회 앞만이 성역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이런 조항은 집회·결사의 자유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좀 더 마음 편히 온갖 공격을 밀어 붙이기 위한 것이다.
한편, 변호인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 수집의 위법성을 제기하고 증거 채택 거부를 주장했다. 검찰은 통신 이용 내역을 근거로 그의 집회 참가를 입증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채증한 사진을 토대로 그의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주장한다. 김인식 씨는 수사, 처벌 이력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는 검찰이 좌파 단체들과 그 주요 활동가들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수집해 왔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공무원연금 방어 투쟁은 전체 노동자의 조건 악화 막기 위한 최전선”
김인식 씨는 정치 표현의 자유 보장뿐 아니라 당시 투쟁의 대의를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박근혜의 공격이 정부 부채 책임 떠넘기기였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의 목적과 내용에 맞는 장소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시 국회에서 주류 여당과 야당은 공무원연금을 개악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집회를 개최한 것은 집회의 목적에 충실한 결정이었습니다.
“이제는 감옥에 수감돼 있는 부패한 전임 대통령 박근혜 씨는 ‘철밥통’이니 ‘신의 직장’이니 공무원 노동자들을 비난하며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려 했습니다. 저는 노동자들이 안정되고 노동조건이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것이 왜 비난 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더 불안정하고 더 나쁜 조건의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말입니까?
“경제가 잘 나갈 때는 기업주들이 이윤을 독식하다, 자신들이 실패한 경제에 회복 책임은 왜 노동자들이 져야 합니까? 이것은 자본주의가 매우 불의한 시스템임을 보여 줍니다.
“공무원연금 삭감은 국민연금 삭감의 지렛대로 기능할 것이었기 때문에 공무원연금을 지키는 것은 더 많은 노동자들의 노후 임금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방어 투쟁은 공무원 노동자들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자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를 막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운 투쟁이었습니다.”
김인식 씨는 사법부가 법 조항을 앞세워 노동자 투쟁을 처벌하려 드는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자, 적폐 청산 열망에 대한 역행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김인식 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김인식 씨의 행동은 정당했다. 1심 선고일은 12월 14일이다.
아래는 김인식 씨의 최후진술 전문이다.
저는 2015년 5월 6일 국회 앞에서 공무원연금 개악에 항의하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제가 연설했던 그 집회가 국회의사당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에서 열렸다는 것이 그 사유입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비민주적 조항입니다. 집회는 의사 표현의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의 목적과 내용에 맞는 장소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시 국회에서 주류 여당과 야당은 공무원연금을 개악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집회를 개최한 것은 집회의 목적에 충실한 결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이 공무원연금을 방어하고자 한 것은 매우 올바른 투쟁이었습니다.
이제는 감옥에 수감돼 있는 부패한 전임 대통령 박근혜 씨는 ‘철밥통’이니 ‘신의 직장’이니 공무원 노동자들을 비난하며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려 했습니다. 저는 노동자들이 안정되고 노동조건이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것이 왜 비난 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더 불안정하고 더 나쁜 조건의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박근혜 씨의 비난에는 계급적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박근혜 씨가 이런 비난을 퍼부은 것은 정부 부채의 책임을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 위해서였습니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가 기업들을 살리려고 수백조 원을 쏟아부었다 정부 부채가 급증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제가 별로 나아지지 않자 그 책임을 공무원 노동자에게 전가하려 한 것입니다.
경제가 잘 나갈 때는 기업주들이 이윤을 독식하다, 자신들이 실패한 경제에 회복 책임은 왜 노동자들이 져야 합니까. 이것은 자본주의가 매우 불의한 시스템임을 보여 줍니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대표적인 ‘방만 경영’이라고 낙인 찍었습니다. 걷은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바로 그런 논리로 그 뒤 공공 노동자들에게 성과연봉제를 강요했습니다. 그것은 박근혜 씨의 생각이 매우 짧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왜냐하면 공공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반대 투쟁이 박근혜 몰락의 서막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또, 공무원연금 삭감은 국민연금 삭감의 지렛대로 기능할 것이었기 때문에 공무원연금을 지키는 것은 더 많은 노동자들의 노후 임금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방어 투쟁은 공무원 노동자들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자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를 막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운 투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 앞에서 공무원연금을 지키는 것은 공무원·교사 노동자들과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고 연설했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을 유죄로 판결한다면, 법원은 바리케이드 저편에서 노동계급을 적대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새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수선을 피웁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태산명동서일필[시작은 요란했지만 결과는 매우 사소함]처럼 실제 결과는 보잘것없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공무원연금 개악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였습니다.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정권을 쫓아낸 뒤 등장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적폐에 맞서 싸운 저의 행동이 유죄가 된다면, 법원은 광범한 사람들의 적폐 청산 열망에 역행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