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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공기업 비정규직의 비애

나는 공기업에 다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다. 하지만 대졸 경력 10년차 정규직 연봉 4천5백만 원의 53퍼센트밖에 안 되는 2천4백만 원을 받고 있다. 심지어 정규직 대졸 초임인 2천8백만 원보다 4백만 원 적게 받는데, 이 때문에 ‘삶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대학을 나와 더 많은 경력을 쌓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임금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삶의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는 매우 어렵다.

노동자들이 많은 돈을 쓰는 명절 때 정규직들은 1백퍼센트 보너스를 받을 수 있어 약간의 여유가 있지만, 비정규직들에게는 단돈 10원도 지급하지 않아 한달 가계부에 구멍을 내가며 명절을 쇠야 한다. 경조사에도 정규직들은 회사의 부조를 받지만 비정규직은 제외다.

얼마 전 3년 넘게 근무한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가 임신을 했다. 임신중에도 열심히 근무했지만, 출산시기가 다가오자 “비정규직에게는 출산휴가를 줄 규정이 없다”는 회사측의 통보를 받았다.

결국 그녀는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 되는 임금, 복지혜택 제외 등 온갖 냉대를 견디며 일한 대가가 이것인가, 3개월 출산휴가를 기대한 것이 그토록 염치없는 일인가” 하며 서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

같은 시기에 출산하고 다시 근무하는 정규직 여성들은 출산을 앞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쫓겨나는 것을 보고, “나는 정규직이어서 천만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회사와 동료들의 태도가 차가워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 작업장은 여성노동자가 출산휴가에 들어가면 대체인력을 주지 않고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일을 할증시키므로 노동강도가 세져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다.

1998년 이전 1천3백여 명에 달하던 직원이 명예퇴직, 분사 등 여러 형태의 구조조정을 통해 5백여 명으로 줄었다. 주변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다 늙어 가는 마당에 일에 치여 힘들다”고들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와, 자신과 자녀들의 대학 학비전액을 보조해 주는 복지제도의 폐지 등 고용·노동강도·임금에서 큰 후퇴를 겪고 있다.

최근 회사에서는 2차 구조조정이라며 팀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사측은 정원을 감축하고 절감된 인건비의 일부를, 자리를 지킨 노동자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벌써 다른 공기업에서 벌어지고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과 분노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편 내 비정규직 동료는 “우리보다 일도 적게 하면서 임금은 두 배나 받아 가는 정규직들도 이번 기회에 정신 좀 차리게 해야 돼” 라고 하기도 한다. 또 정규직 중 말단 여성노동자들은 승진 차별 등을 일삼고 허드렛일만 시키며 자신들을 함부로 대해 왔던 간부들에 대해 “이번 기회에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2차 구조조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밀리면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처지가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며 공무원들을 10만 명 넘게 내보낼 때도 가장 많이 공격당한 것은 하위직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구조조정을 통해 길거리로 밀려나온 노동자들을 싼 값에 쓸 수 있고 계약해지를 통한 해고도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정부와 사장들의 정책에 맞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워 이겨야만 전체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시킬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