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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간호사 자살,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 ...:
의료가 이윤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저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10년차 간호사입니다.

요즘 전국 병원들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져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제게도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준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밀양병원 화재 사건, 지금 편지를 쓰게 한 대형 병원의 신규 간호사 자살 사건.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이 사건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사건들 때문에 다른 병원들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노동 과정에 대한 통제가 더 엄격해지고, 병원 노동자들은 올해 있을 의료기관 평가 때문에 노동강도가 엄청나게 늘어날까 봐 떨고 있습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의 실수로 문서가 잘못되면 수십억 원이 왔다 갔다 한다면, 병원 현장에서 의료인이 하는 실수는 생명을 위태롭게 합니다.

최근 벌어진 사건들은 정부와 병원들이 비용 부담을 핑계로 원칙을 지키지 않아 온 결과입니다. 그 속에서 지치고 막대한 책임에 두려움을 느끼는 노동자들도 관행대로 적당히 넘겨 오던 일들이 곪아 터진 것입니다.

터진 고름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신생아부터 노인들까지...

병원은 항상 바쁩니다.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항상 쫓기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전공의(레지던트)들의 근무시간을 줄여 준다며 주 80시간제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업무량은 그대로여서 겉으로는 쉬지만, 숨어서는 미처 못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인력은 그대로인 채 표면상 근무시간만 줄인 결과입니다.

당직 의사가 환자를 수십 명씩 보면서 일하고 있고, 이로 인해 담당 간호사들의 업무와 책임감은 더 가중됐습니다.

당직 의사는 자기가 보던 환자가 아니므로 잘 알지도 못하고, 결국 담당 간호사들의 환자 사정과 보고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당직 의사가 너무 많은 환자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들은 보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간호사가 알아서 처리하게 됩니다. 정말 환자 상태가 나빠졌을 때에도 환자에 대한 이해가 적은 당직 의사들은 적절한 조처가 무엇일지 판단하고 시행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습니다.

이대 목동병원 사건은 모든 병원의 문제를 응집해 보여 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병원 환경에서는 어느 병원에서나 투약 과정에서의 감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병원 내 감염은 이미 비일비재합니다.

주사제 투여 직전 투약 준비는 소독된 투약 준비실에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업무 공간과 업무량을 잠시만 들여다봐도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의료인이라면 당연히 원칙에 따라 의료 행위를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병원 매뉴얼에 있는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서는, 직원들에게만 원칙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어느 대형 병원에서 일어난 신규 간호사 자살 사건은 병원이 인력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우리 나라 대형 병원들은 매년 신규 간호사를 수백 명씩 채용합니다. 매년 수백 명씩 그만두니까요. 간호사는 의료 소모품처럼 쓰다 버려지고 다시 채워지고 하는 실정입니다.

4년 동안 간호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와도 모르는 게 더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학생 때 병원 실습을 하지만, 현직 간호사들이 바빠서 제대로 교육을 해주지도 못합니다.

신규 간호사들은 한두 달 만에 훈련을 마치고 홀로 현장에 던져져서 일을 하게 됩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들어와 한두 달 만에 실제 환자에게 의료 행위를 하고 여러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는 등 모든 것을 해내라고 합니다. 당연히 실수와 의료사고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운 좋게 환자한테 큰 피해가 가지 않기만 빌 뿐입니다.

신규 간호사들은 혼자 다 할 수 없는 업무와 그것을 실수 없이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 환자를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등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오늘은 또 내가 무슨 실수를 하지 않았나? 잘못한 건 없나? 약을 또 잘못 줬나? 등등. 불면증과 우울증은 기본이고 출근하면서 ‘죽고 싶다. 이대로 교통사고를 당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신규 간호사가 부지기수입니다.

신규 간호사와 함께 일하는 경력 간호사도 신규 간호사를 감독하며 본인의 업무를 다 해내야 합니다.

개인의 업무 능력에는 차이가 있고, 각자 겪는 스트레스, 인내심, 마인드 컨트롤 능력, 정신력도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개인차는 무시한 채 한두 달 훈련시키고 그럭저럭 잘 적응하면 정상, 적응 못하면 부적응자로 낙인을 찍습니다.

신규 간호사들의 실수와 사고는 동료 선배 간호사들에게도 스트레스입니다. 항상 바쁘게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의료 현장에서 느긋한 기다림은 없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이 시스템 속에서 신규 간호사에게 조금의 실수나 의료사고도 용납되지 않음을 가르치려는 시도가 지나쳐 일명 ‘태움’이라는 문화가 생겨난 것이죠.

이 태움이라는 조직 문화가 어쩔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개선돼야 할 조직 문화입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인격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의료인들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이 의료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환자든 병원 노동자든) 곧 돈으로 여겨지는 병원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항상 비용과 이윤만 따지는 시스템이라면, 이러한 문제와 사고는 반복될 겁니다.

의료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