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피해 없는 스마트한 제재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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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로 북한 주민의 삶이 갈수록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2017년 12월 말에 채택된 유엔의 10번째 대북 제재 결의안(2397호)이 더 큰 고통의 분수령이 됐다.
2397호의 핵심은 유류(정제유), 노동력, 해상차단 세 가지였다. 하나씩 살펴보자. 올해부터 북한은 휘발유나 디젤유 등 정제유를 전년도 대비 4분의 1만 들여올 수 있다. 벌써 휘발유 가격이 세 배나 상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제재가 심해질수록 가정난방, 취사, 교통 등 주민 생활에 필요한 석유는 더 귀해진다. 주식인 옥수수를 삶을 연료가 없어 엄마들이 옥수수를 빻아 물에 타서 아기들에게 먹인다는 보도를 보면 가슴이 메어진다. 중국 내 북한 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해 말에는 한 달 사이에(11~12월) 평양 시내의 식용유 가격이 20퍼센트 이상, 옥수수 가격이 10퍼센트 이상 올랐다.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2019년 말까지 퇴거 명령을 받게 된다. 중국, 러시아, 중동 등 전 세계 50여 국에서 일했던 북한 노동자 5~6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셈이다. 이미 본국으로 송환된 노동자도 적지 않다.
유엔 회원국들이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북한 관련 선박을 동결·억류하는 해상차단 조처는 또 어떤가. 강력한 해상차단은 사실상 해당국과의 교역 그 자체를 막는 — 전시에 사용하는 — 해상봉쇄 효과를 낸다. 수년 전부터 북한은 철광석, 산업기계, 운송수단을 수입하는 것이 제한됐고 2017년 중반부터는 섬유제품 수출마저 제한됐다.
그런데도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범죄 담당 차관 시걸 맨덜커는 “유엔 대북 제재는 최저수준이고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벼른다. 트럼프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2379호도 모자라다며 북한 원유 공급 기관인 ‘원유공업성’과 해운업체 등을 특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무엇보다 지난해 11월 트럼프는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테러지원국 낙인으로 가뭄에 콩 나듯했던 국제 원조마저 완전히 끊겠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을 타격하는 대북 제재
폭격이 즉각적인 살상 행위라면 경제 제재는 현지 주민을 서서히 죽이는 살상 행위다.
여러 번 지적됐듯이 이라크에서 경제 제재 때문에 죽은 사망자 수는 미국과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할 수 있는 스마트한 제재’는 위선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밀타격, “코피”만 터뜨리기, 스마트 타격이 희대의 세계적 거짓말이었다는 것도 이미 이라크와 수단, 세르비아 폭격 등에서 입증됐다.
이중용도 물품 규제 조항 때문에 식품·약품 가공에 사용되는 중요 화학약품의 북한 반입이 불허된다. 탄도미사일과 원심분리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알루미늄도 제재 대상이다. 그런데 알루미늄은 자전거, 오토바이 등 보통의 북한 가정들이 많이 사용하는 운송수단에 활용되는 기초적인 재료다. 학생 교재 제작에 쓰이는 인쇄기와 잉크 등도 모두 제재 대상이다.
기초적인 의료기기와 의약품들이 제재 대상 목록에 더 많이 추가되고 있다. 2017년 2월에 공개된 유엔 보고서를 보면 한 유엔 전문가 패널은 “북한 주민 중 1800만 명이 영양이나 철경 문제 등을 안고 있다”고 썼다(정은숙, 2018,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레짐》, 95쪽, 세종연구소). 국제적십자사는 2월 8일에 발표한 ‘북한 A형 인플루엔자 발병 비상조치계획’에서 “유감스럽게도 제재 조처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계절성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받을 수 없었다”고 썼다. 국제적십자사는 북한에 항바이러스제, 신속한 검사, 손소독제 등이 심각하게 부족해서 신종독감에 대처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2000년 전후로 결핵환자와 말라리아 등 전염성 질환자가 각각 5만 1000명, 30만 명이나 될 만큼 식량난과 경제 침체로 북한 주민의 보건의료 실태가 매우 열악하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의 자료를 보면 북한의 보건의료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들의 수준이다.(김병로,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 199쪽,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재인용)
북한 주민을 고통에 빠뜨리는 대북 제재는 완전히 중단돼야 한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중단돼야 하는 같은 이유로 대북 제재도 중단돼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북녘 동포들의 생명을 위해서도 말이다.
대북 제재로 북핵 포기를 이끈다고?
트럼프는 대북 제재가 북한 정부의 핵 포기 효과를 낼 거라고 자신만만이다.
그러나 이란, 이라크, 수단 등지에서 제재가 정치·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기만 했다는 역사적 경험은 쌓여 있다. “제재로 민생경제가 어려워져도 북한 지도부는 핵 억지력을 강화하는 시도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김연철,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292쪽, 창비).
제재를 둘러싼 러시아와 중국의 셈법
지난해 말 이후로 러시아와 중국도 대북 제재를 크게 강화했다.
그동안 중국은 유엔 대북 제재에 찬성하면서도 “북중 경제협력”은 제재 대상에서 예외로 두려고 해 왔다. 중국에게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1월에 중국은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따라 자국 기업들을 북한에서 철수시켰다. 중국 상무부는 북·중 합작기업인 금평자동차합영회사와 평진자전거 합영회사를 폐쇄시켰다. 단둥에서는 해외 명품 의류업체와 수산물 가공업체, 전자제품 조립공장 등 200여 곳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2만 명의 비자 만기가 불허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도 북한 벌목공 노동자들의 송출 중단을 지시했다.
지난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압박 강도를 높이자,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면 ‘골칫덩어리 꼬마’ 북한을 제어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이 제국주의 열강의 핵무기 독점을 깨뜨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북한 경제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버리는 것은 강력하게 반대한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에서 자신의 ‘전략적 자산’인 북한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길 바라지 않는다. 대북 압박의 진정한 표적이 중국 자신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북·중 접경지대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대규모 탈북 난민 사태 등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핑계대며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력을 증강해 가는 것도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매우 피곤한 일이다.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가 패권경쟁이라는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북 제재의 수준을 결정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중국에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