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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대학 투자 - 공짜는 없다

주류 언론들은 4백18억 원을 기부한 사람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며 이건희를 저지한 고대 학생들을 비난하고 있다. “고대의 입장에선 이 회장은 학교에 막대한 기부를 한 고마운 사람이고, 이날은 고대의 손님이었다.”(〈조선일보〉 5월 4일치.)

역대 군사정권들과 유착하고, 편법으로 탈세하고, 노조 만들려는 노동자들에게 온갖 탄압을 자행하면서 삼성의 돈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제쳐두더라도 삼성의 ‘기부’는 전혀 고마워할 일이 아니다.

대기업들의 ‘기부’는 마케팅 비용의 일종이다. 대기업은 기부를 통해 대학 안에서 365일 자신들의 이미지를 홍보할 기회를 얻는다.

대학에 많은 돈을 들여 건물을 지어 주는 기업들은 대학과 함께 산학연계도 강화한다. 예를 들어, 이번 ‘100주년 기념관’뿐 아니라 ‘LG-포스코 경영관’을 지은 삼성·LG·포스코는 모두 고려대와 산학협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대학 교육이 기업의 요구에 더욱 깊숙이 종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고대 서창캠퍼스 물리학과의 경우 2004년부터 ‘디스플레이·반도체 물리학과’로 아예 이름을 바꿨습니다. 삼성전자와 손을 잡고 실질적 지식과 기술을 지닌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문인력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또 안암캠퍼스의 화학공학과는 2004년부터 LG화학과 제휴해 실무 위주로 강의합니다.”(어윤대 고대 총장)

포스코는 서울대·고려대 등 7개 대학, 15명의 교수와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80명 등을 자신들의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시키고 있다.

산학협동은 기업들이 기술개발 비용을 절감하는 한 방법이고, 강의실 건립 등은 대학과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투자’인 셈이다.

마케팅

이런 투자 때문에 “자유로운 학문 연구”라는 대학 본연의 목적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이공계’에서는 이 점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분야는 연구 주제조차 기업의 요구에 철저히 종속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도 기업에 대한 비판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약받을 것이다. 어윤대 총장이 말한 “인문교육의 강화”는 허울뿐이다.

인문교육을 강화하겠다는 학교가 순수학문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건희에게, 순수학문 교수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철학박사 학위를 줄 수 있는가?

결국 어윤대 총장이 말한 “1학년 학생이 수강하는 100여 개의 교양과목”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기업들이 요구하는 교양지식을 쌓은 인력을 생산하겠다는 선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기업이 대학에 건물 등을 지어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생각은, 정부의 대학 지원이 턱없이 모자라고 재단의 대학 투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해서라도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픈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 주는 것도 아니다.

어윤대 총장은 정부의 대학 지원을 촉구하고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면서도, “수업료가 너무 낮다. … 생활수준을 감안하면 수업료는 [미국의] 2분의 1 수준”이라며 “등록금 책정에 대한 완전 자율화”를 요구한다.

이것은 근본으로 대학에 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편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 지원과 기업 투자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대학은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줄어들 수가 없을 것이다.

또, 기업이 요구하는 더 나은 ‘인력 양성’을 위해 학생들은 더욱 엄격해진 학사관리를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기업의 대학 투자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아무런 목적 없는 ‘순수한 기부’도 아니고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 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런 기부는 대학 교육 자체를 더욱 철저히 기업에 종속시키며, 정부의 대학 지원을 방기하도록 하는 방편도 되고 있다.

기업의 대학 투자를 기대하기보다는 OECD 평균(국내총생산의 1.0퍼센트)에 훨씬 못 미치는 국내총생산 0.4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정부의 대학 지원금을 획기적으로 늘리도록 요구하고, 대학들과 학생들의 상호 경쟁을 격화시키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