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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해는 인재입니다\"

면목 2동 수해민 대책위원 정명아 씨 인터뷰

"이번 수해는 인재입니다"

 강철구 정리

 7월 15일 새벽에 덮쳤던 폭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초대형 집중 폭우"가 내렸기 때문에 이번 피해는 피할 수 없는 천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수해는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이라기보다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명 피해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이번 수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감전 사고는 이 체제가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보여 주었다. 낡은 시설 때문에 전기 차단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또,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져 위험 수위를 넘고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해 주변 저지대를 덮쳤는데도 대피 방송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빗물 펌프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수해 지역 구청장들의 뻔뻔스러운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빗물 펌프장은 너무 늦게 가동돼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일부 펌프장은 너무 낡아 작동되지 않았다.

 피해 주민들은 그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서울시와 구청, 동사무소 등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기자는 '진상규명, 피해 전액 보상,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중랑구 면목 2동 수해민 대책위원회에서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정명아 씨(민주노동당 동대문·중랑 지부 운영위원)와 인터뷰를 했다.

 

 지난 7월 16일 새벽에 내렸던 폭우로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피해를 당했다. 중랑구 지역 주민들도 큰 피해를 입은 걸로 알고 있는데 당시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정명아 : 우리 집은 물이 허벅지까지 찼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허리에서 심지어는 사람 키 높이까지 찬 경우가 많아 가구를 비롯해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린 아이가 차오르는 물에 익사한 끔찍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대피하라는 방송이 없어서 자던 옷 그대로 입고 몸만 간신히 피했죠. 순식간에 물이 차니까 창문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새벽에 깨어 몸만 빠져 나오느라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챙길 겨를도 없었습니다. 목숨만 건진 것도 다행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번 피해는 '천재'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피해 주민들은 이번 수해가 피할 수 있었던 '인재'라고 주장합니다. 수해가 천재였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명아 : 면목 5동에 사는 주민 한 분이 새벽 2시에 빗물 펌프장에 직접 가서 펌프 가동 현황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자료들을 분석해 종합해 본 결과 펌프가 최초로 가동한 시각은 새벽 1시 40분이었습니다. 이 때는 이미 물이 위험 수위를 넘었을 때였습니다. 구청에서는 펌프를 가동시켰다고 하지만, 언제 가동시켰느냐가 중요한 거죠. 9개의 펌프장 중 3개는 고장 나서 가동조차 안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엔진 펌프는 2시 40분에서야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피해가 커진 또 다른 이유는 동사무소나 구청이 주민들에게 대피 방송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서울시가 대피 방송을 제 때에 했더라면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해는 명백히 인재입니다.

 

  수해 주민들에 대한 정부나 구청의 복구 대책이나 피해 보상 상황은 어떻습니까?

 

 정명아 :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들은 피해 당시 현장을 돌아다녔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을 본 주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면목 2동 피해 주민들의 대피소인 중랑 초등학교에는 구호 물자가 없습니다. 먹을 거라고는 라면밖에 없습니다. 모포도 10장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구호물자 내려 주고, 쓰레기 치워 주고, 방역도 해달라고 그렇게 요구하고 싸워도 4일째 꿈쩍도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구청이나 동사무소는 주민들을 위해 움직이지 않아요. 그들은 주민들 위에 군림하는 관료 조직의 일부일 뿐이죠. 국회의원들이 자신을 뽑아 준 사람들의 요구 사항을 무시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우리가 뽑은 구청장 얼굴 보기도 힘들죠. 중랑구청장은 피해 주민 4백여 명이 구청으로 몰려가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하자 네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나타나서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원래 공무원은 주민들이 몰려 오면 도망가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도망갔습니다." 정말이지 그들은 우리들의 고통에는 털끝만치의 관심도 없지요. 그들은 그저 우리를 한 표로만 여기죠. 의회 민주주의라는 게 이렇게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중랑구청은 얼마나 잘 지었는지 반짝거려요. 전부 우리의 세금으로 지은 거죠. 그래서 7월 16일 집회에서 주민들이 외친 구호는 "주민들은 물바닥에서 자는데, 구청장은 옥침대에서 잠이 오냐"였습니다.

 또 주민들은 "주민 위해 살겠다던 구청장은 어디 갔냐, 구청장은 사퇴하라"는 구호도 많이 외쳤습니다.

  가난한 동네라서 더 버림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가난한 동네에서 반지하에 사는 것도 서러운데 물난리만 나면 돈 없는 서민들만 피해 보는 것에 대해 대단히 서러워하고 또 분노하고 있죠. 이번 수해는 우리 사회가 계급에 따라 확연히 구분돼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피해는 압도적으로 가난한 동네에서 일어났습니다.

 

 주민들은 정부의 미온적 대책에 항의하며 투쟁에 나서고 있는데, 중랑구 피해 주민들의 투쟁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정명아 : 피해 당일 이문동 주민 7백여 명이 외대역 앞 철로를 점거하며 농성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른 곳의 시위 소식도 들려 왔죠. 면목동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2백~3백여 명이 모여 대책위를 꾸렸고, 밤새 토론을 통해 향후 계획을 세웠죠. 주민들은 피해 수습하느라 바쁜 와중에서도 서로 도와 주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도와 주고 연대했습니다. 집회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주장하고 즉석에서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명쾌한 발언으로 청중의 호응을 얻은 사람들이 대책 위원을 자원하기도 했습니다.

  면목 5동 주민들이 중랑구청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면목 2동과 신내동 주민들도 구청 앞으로 몰려갔습니다. 주민들은 경찰과의 몸싸움에서 연행된 지역 주민의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서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4백여 명의 단결된 행동으로 연행된 주민은 곧바로 풀려 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정명아 : 우리는 이번 수해가 인재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투명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민 대표들이 조사 과정에 함께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일괄적으로 피해 보상을 하겠다고 얘기하는데 그것도 3년 전의 기준입니다. 3년 동안 물가가 얼마나 올랐습니까. 우리는 정부가 60만 원 선의 보상금으로 생색내려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국가가 모든 피해액에 대해 완전 보상해야 합니다. 재발 방지 계획을 확실하게 수립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현재 경찰들이 대책위 대표들에게 야비한 협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 대표들은 경찰에 연행됐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런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 중랑구에 소속돼 있는 각 동의 피해 주민들을 결집시킬 계획입니다.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동네 곳곳마다 피해 주민들은 하수구에서 역류한 더러운 물에 잠겼던 물건을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생 가난으로 시달린 고통의 흔적이 역력했다. 차마 쌀을 버릴 수는 없었던지 그 더러운 물에 빠진 쌀을 햇볕에 말리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쓰렸다. 이번 수해는 명백히 체제의 탐욕이 빚어낸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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