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서울 지하철7호선 탈선을 보며:
사고 원인의 배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관계에 도전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 구독
3월 14일 퇴근 시간대인 오후 7시 22분,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역 진입을 앞두고 곡선 구간에서 탈선하는 위험천만한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8일 KTX강릉선 탈선 사고 후 대략 석달 만이다.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하마터면 적지 않은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 그런데 다수 언론이 사고 발생과 승객 불편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최근 한 언론이 “지하철 7호선 탈선, 언론이 지나쳐선 안 되는 이유”라는 기사에서 전동차 노후화, 그리고 이를 방조하거나 부채질했던 지난 정권들을 비판했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같은 사고에 접근할 때 사고의 직접적 원인에만 집중했다가는 사고와 그 배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안 그래도 정부와 기관이 “휴먼에러”(인적 오류)에 집중하며 책임자 처벌에만 급급한 터에 말이다. 그런데 전동차 노후화와 정권의 방조나 부채질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나는 이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사실, 평범한 노동자·민중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에 이런 사고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비록 이번처럼 지하 구간 내 본선에서 탈선하는 사고는 처음이었고 정말 끔찍할 뻔했지만(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는 지하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일어난 재앙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철도·지하철 사고는 꾸준히 일어났다. KTX 강릉선 탈선 사고는 가장 최근의 사례일 뿐 우리가 모르는 사고는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이 같은 철도·지하철 사고의 원인이 늘 그렇게 간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3년 대구역에서는 경험 없는 대체 기관사가 나뭇잎들에 가린 신호를 보지 못하고 다른 신호를 자신의 신호로 오인하면서 1차 충돌을 일으켰고, 뒤따라 오던 열차가 관제의 미숙함으로 뒤늦게 제동하다 들어오며 2차 충돌을 일으켰다.
2018년 강릉선 사고는 선로전환기의 정상 작동을 보여 주는 신호 케이블을 처음부터 잘못 꽂았는데 그게 여지껏 아무 일 없다 하필 그날 문제를 일으켰고, 인원 부족에 시달리던 현장 노동자들은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관제는 열차를 서둘러 그냥 통과시켜 버리면서 일어났다. 이렇게 사소한 오류가 이런저런 오류들과 결합돼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전사고를 이해하는 데 여러 직접적, 간접적 원인들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위 사건들에서 보듯 각각의 원인 사이에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마치, 경험 없는 대체기관사와 나뭇잎과 신호 오인과 관제의 미숙함과 2차 충돌 사이가 그렇듯, 또 잘못 꽂힌 케이블의 갑작스런 고장과 부족한 인력과 관제사 사이의 관계가 그렇듯, 이 변수들은 시간 순서로는 이해되지만 각각의 사이에 인과관계란 전혀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이같은 사고들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구조적 원인, 즉 각각의 변수들과 변수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관계”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고에 대해 우리만큼 관심을 갖는 자들이 있다. 바로 자본주의 지배자들, 경영자들인데, 이들은 “경영”의 관점에서 그렇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이들 역시 이 관계를 안전이라는 단어와 같이 사용해, “안전 경영”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안전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안전은 자본주의에서 언제나 이윤의 뒷전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한계에서 이윤의 원천인 노동력에 대한 착취의 필요 때문에, 실천에서는 휴먼에러를 감소하겠다는 취지에 어울리게 기계를 더 많이 도입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관계”다. 즉, 모든 재앙 수준의 대형 사고들의 배후에는 이윤을 위한 경쟁과 이를 위한 착취의 자본주의 관계가 자칫 개별적으로 보이는 원인들에 지배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노후화한 전동차와 이를 방조하거나 부채질한 정권의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님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찰스 페로의 “정상사고”이론이 보여 주듯, 기술의 복잡성, 상호연계성, 긴밀성 등등이 결합된 고위험시스템에서, 사고는 꼭 자본주의 때문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지만 말이다)
이 말은 자본주의의 관계가 단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관계는 우리의 생명을 언제든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또 생명을 앗아갔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2003년 2월 18일 그날, 불타오르는 중앙로역 옆을 지나다가 시커먼 연기를 보고 황급히 피해 지금도 살아 있지만, 내가 아는 어떤 누군가는 같은 날 자신의 딸을, 어떤 이는 아들을 그 화염 속에서 잃었다. 자본주의 관계, 이 체제는 안전을 입으로 강조하고 그 자리를 기계로 대체하려는 자들에 맞서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를 언제든 다시 죽음으로 몰아넣는 체제다. 7호선 탈선 사고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탈선을 우리가 지나쳐선 안 되는 이유는 이 체제가 언제든 우리의 생명을 이윤을 위해, 체제 유지를 위해 그 대가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