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전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 노동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도로보수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도로보수원은 도로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으며 도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핵심 인력이다.
고속도로는 도로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며, 국도는 국토교통부의 소속기관인 국토관리사무소, 지방도/시도/군도는 각각 광역단체/시청/군청의 공무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한다. 어떤 지자체는 외주를 맡겨 직영 공무직이 아닌 용역 노동자에게 도로 관리를 맡기기도 한다.
도로보수원 노동자들은 어떤 기관에서 일하든 로드킬 처리, 포트홀(파손된 부분) 보수, 잡목 제거, 제초, 노견 청소, 낙하물 수거, 각종 민원에 대한 처리, 안전시설물 설치, 겨울에는 모래주머니 설치, 제설용 염수 생산, 제설 등 도로의 실질적인 운영과 관리를 책임진다.
하지만 이들은 인원 부족과 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도로보수원은 차들이 달리는 도로에서 자신의 안전을 오로지 자신들이 타고 온 작업차의 경광등과 차량유도등, 그리고 사이렌 소리에 의지하며 작업을 해 나간다. 나와 같이 일하는 외주·하청 노동자는 이런 기본적인 안전 조치조차 되지 않은 채 작업을 한다.
이 때문에 매년 사고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나온다. 지난해 전주국토관리사무소의 도로보수원이 낙하물 처리 중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고, 올해 충주국토관리사무소에서 제초 작업을 하던 중 수신호를 보던 노동자가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회사 측은 사고가 나면 잠시 안전에 대한 조치를 강제(작업차에 충격흡수장치 부착과 차량유도차를 작업차 뒤에 배치)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노동자의 죽음은 잊혀지고 안전 조처 역시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지켜지지 않곤 한다.
내가 일하는 현장의 신입 도로보수원은 기본급이 최저시급인 170만 원대에 맞춰져 있다. 회사 측은 낮은 기본급을 벌충할 시간 외 근무조차 민원이 들어올 때만 내보내고, 순번은 정해져 있지만 대기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아 퇴근을 해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 긴장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주말 휴식도 포기하고 시간 외 근무를 하며 주말 도로의 안전을 책임졌다. 하지만 사측은 주말 민원을 모두 외주화해 버렸다. 회사 측은 뻔뻔스럽게 외주화는 주52시간제 준수와 노동자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함께 일하는 공무원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도로보수원 등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공무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반대한다. 마치 서울시 공무직 노동자들이 차별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을 때, 공노총 소속의 서공노가 반대한 것처럼 말이다. (https://ws.or.kr/article/22295)
공무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인 공무원과 똑같은 업무를 하거나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업무를 하는데도 상여금을 못 받고 각종 수당에서도 불이익을 당해 왔다.
사측은 일부 공무원 노동자들의 반대를 핑계로 도로보수원들의 열악한 조건을 유지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 탓에 내가 있는 현장의 도로보수원 노동자들은 불만은 많지만 자신감이 낮고, 집단적으로 싸우지 못하고 있다.
나와 같은 정규직 공무원 노동자들이 도로보수원을 비롯한 모든 공무직 노동자들과 공직 사회 내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정규직화를 지지해 자신감을 줘야 한다. 무엇보다 공무원노조가 공노총 소속의 서공노와 달리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차별 해소를 위해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