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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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자본주의에서 두번째 대공황은 1973년 10월의 석유 파동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저는 1930년대 공황 그리고 1974∼1975년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대공황이 효과를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경제가 정상적으로 잘 나가다가 아래로 꺾인 상황이 공황입니다. 우리 나라가 박정희 시대부터 고도 성장을 통해 경제가 잘 나가다가 갑자기 팍 꺾여 버렸습니다. 이 꺾인 국면이 바로 공황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자꾸 공황을 ‘경제 위기’라고 말합니다. 공황(crash)과 경제 위기(crisis)는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의 병이 위기다”라고 말할 경우 사람이 죽을지 살지 모른다는 이야기예요. 죽을지 살지 모르는 그 갈림길에 있는 것을 위기에 있다고 이야기한다구요. 그런데 공황은 완전히 생사가 판명난 상태입니다.
완전히 붕괴된 것으로 판명난 국면을 공황이라고 한다면, 호황의 말미에서 호황이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붕괴할 것인지가 곧 판가름나는 위급한 상황을 경제 위기(crisis)라고 합니다.
자동 붕괴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왜 자본주의가 잘 나가다가 이렇게 한번씩 붕괴하는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공황 → 불황(디프레션) → 회복 → 호황이라는 주기를 갖습니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였던 19세기 중엽의 자본주의는 공황에서 호황까지 대체로 10년의 주기를 가지고 운동을 했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공황은 자본주의가 망하는 그런 공황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에는 여러 가지 모순을 스스로 해결하는 양측면이 존재합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공황이라는 개념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공황이 생겼다가 이 공황 중에 문제점이 해결되면서 다시 호황이 온다는 뜻이 있습니다. 결국 마르크스는 공황을 자본주의 멸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반면, 제2인터내셔널에 있던 여러 사람들은 경제 자체의 문제점 때문에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자동 붕괴설을 주장했습니다.
베른슈타인이나 카우츠키는 자본주의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자동 붕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동 붕괴설은 마르크스의 본의와 전혀 다릅니다.
공황 시기에는 자본주의가 형편없는 체제이고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먹혀 듭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체제가 좋다고 했습니다. 박정희가 좋고 어떻고 저떻고 했는데 IMF가 터지자 그게 아니라는 것을 다 알았어요.
공황이 발생하는 환경
공황을 설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자본주의의 무계획성입니다. 자본주의는 중앙에서 계획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기업이 자기가 알아서 상품을 생산합니다. 생산한 상품이 시장에 나와서 비로소 수요와 맞춰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매자의 수요량과 공급자의 공급량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을 무계획성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사회’가 되면 한편으로는 자원이 있을 겁니다. 인적 자원이 있고, 물적 자원이 있고, 토지가 있고, 숙련된 노동 전문가들이 있다구요. 반대쪽에는 주민들의 필요(needs)가 있어요. 주민들이 일 년에 양말을 몇 켤레, 옷을 몇 벌, 그리고 쌀을 얼마나 먹고 자동차가 몇 대가 필요하고 컴퓨터가 몇 대가 필요하고 병원은 몇 동을 더 지어야 하는가 하는 주민들의 필요라는 수요와 수요만큼 공급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요. 이것이 계획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없어요. 이것을 무정부성 ― 아나키 ― 이라고도 이야기해요.
자본주의 사회의 공황은 언제나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한보철강이 1997년 1월에 망했어요. 왜 망했어요? 공장을 엄청 크게 세웠는데 해외에서 수요가 그만큼 없었어요. 그러니 물건이 안 팔렸겠죠. 물건이 안 팔리니까 은행에서 꾼 돈을 못 갚는 게 되죠. 그리고 도산을 하죠.
공황은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언제나 자본주의 공황은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때 나타납니다. 가격이 폭락해요. 자기가 얻은 이윤으로 이자를 갚을 수 없을 때 도산을 하죠. 이것이 다른 분야로 번지고 은행으로 번져서 공황이 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무계획성이 공황을 오게 하는 하나의 요인임은 틀림없죠. 그러나 공황의 원인이 무계획성 때문이라고만은 얘기할 수 없어요. 자본주의가 잘 나갈 때는 무계획성이 없었을까요?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무계획적인데도 잘 나갔어요. 그래서 자본주의의 무계획성을 가지고 공황의 원인이라고 하면 안 되죠. 자본주의의 무계획성은 공황이 일어나는 환경일 뿐입니다.
두번째는 화폐경제입니다. “자본주의는 화폐경제이기 때문에 공황이 온다.” 마르크스가 한 말입니다.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화폐경제이기 때문에 공황이 없다”고 이야기해요. “과잉생산 공황이 없다.” 자꾸 이렇게 주장해요. 리카도가 그렇게 주장했을 때 기본 생각은 자본주의 사회를 물물교환으로 보는 거예요.
예컨대 제가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요. 다른 사람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요. 나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데 자동차를 원해요.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데 컴퓨터를 원해요. 두 사람이 시장에서 만났어요. 시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주고 받고 사고 팔고 해요. 그러면 자동차를 생산하는 친구는 자동차를 주고 컴퓨터를 받고 컴퓨터를 생산하는 친구는 컴퓨터를 주고 자동차를 받겠죠. 컴퓨터는 완전히 팔린 거에요. 과잉생산할 게 없죠. 서로 물건을 교환해 버리니까 자동차에 대한 수요·공급이 똑같고 컴퓨터에 대한 수요·공급이 똑같으니 여기서 과잉이 나올 턱이 없겠죠. 물물교환을 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잉 생산이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만약 화폐경제라면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 화폐를 가진 사람에게 컴퓨터를 팔겠죠.(이 화폐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자기도 뭐를 팔아서 이 화폐를 얻었겠죠.) 그는 화폐로 자동차를 삽니다.
화폐로 예금도 할 수 있어요.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것도 화폐예요. 그렇기 때문에 화폐를 금방 지출할 필요가 없어요.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 컴퓨터를 팔아서 화폐를 얻었다구요. 그러면 이 친구가 금방 자동차를 살 필요나 이유가 없다 이 말이예요. 자동차 값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면서 돈을 은행에 예금해 둘 수도 있죠. 화폐가 중간에 들어가면 자동차를 지금 당장 팔 수가 없다는 문제가 생기죠. 과잉생산의 문제가 생겨요.
그것은 화폐 때문이죠. 화폐로 어느 물건을 언제라도 살 수 있기 때문에 화폐를 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그 물건을 안 사죠.
그래서 마르크스는 화폐가 상품들의 교환 수단과 유통 수단이 되면 공황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죠. 물물교환에서 판매와 구매는 언제나 일치하지만 화폐가 들어가면 판매와 구매는 시간적으로 괴리를 낳을 수가 있죠. 공간적으로도 판매와 구매는 일치하지 않죠. 서울에서 팔지만 구매는 부산에서 이뤄질 수 있죠.
그렇다고 해서 화폐경제가 공황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공황이 터지지 않고 경제가 잘 나갈 때도 화폐가 있었으니까요. 화폐 경제는 공황이 발생하는 환경일 뿐입니다.
공황의 원인
1. 과소소비설
과소소비설은 이런 얘기입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적기 때문에 소비재가 많이 생산되더라도 소비재가 다 팔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재가 과잉생산되죠.
예컨대 소비재 가운데 하나인 라면을 모두 노동자들이 사 먹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늘 노동자의 임금을 계속 낮추려고 해요. 왜냐하면 임금은 비용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라면 공장 옆의 컴퓨터 공장 사람들을 볼 때 이 사람들의 임금을 낮추면 라면이 안 팔리겠죠.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임금은 비용만이 아니라 유효수요예요. 라면 공장에서도 자기 노동자들의 임금을 될 수 있는 대로 줄인다면 임금이 막 내려가니까 컴퓨터가 안 팔려요.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 거예요.
소비재를 생산하는 라면 공장이 생산을 축소합니다. 생산을 축소하면 두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는, 당장 실업자가 생깁니다. 두번째는, 라면 생산 규모를 낮추면 밀가루 수요가 줄어들고 또 라면을 만드는 기계의 수요가 떨어집니다. 생산수단인 원료와 기계 생산 부문의 수요가 떨어집니다. 밀가루를 생산하는 공장과 기계를 생산하는 공장에서도 생산의 축소가 일어나겠죠.
임금이 낮음으로 말미암아 소비재 산업이 침체를 겪고 소비재 산업이 침체를 겪으니까 생산재 산업이 침체를 겪고 그래서 경제 전체가 침체합니다. 이것이 과소소비설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 이론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이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에게 임금을 높여 주면 공황이 안 일어나는 거죠. 이것은 자본주의를 전혀 모르는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으로 이윤을 추구합니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얻는 경제입니다. 이윤을 많이 얻으면 많이 투자합니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많이 얻을수록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고 새로운 생산 방법을 찾아 내죠. 그리고 호황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낮으면 오히려 호황이 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들 죽으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거기에서 노동자들이 이익을 본다는 것은 굉장히 한계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굉장히 발달해 있지요. 지금 영국에서는 노동당,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집권당입니다. 두 당 모두 다 사회민주주의입니다. 사회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공황에 빠지니까 사회민주주의가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 상황에서는 자본주의를 살리면서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보호할 수가 없어요. 자본주의가 잘 나갈 때는 자본가가 이윤을 덜 먹고 그 나머지를 사회보장제도에 투여해 복지국가를 유지했어요. 공황이 발생하자 사회민주당은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오히려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개선한다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특히 공황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르크스의 이야기는 노동자들의 이익 옹호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착취로부터 해방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는 명제가 그에게서 나옵니다.
상품 가격에 뭐가 들어 있겠어요? 상품의 가격에는 기계와 건물의 감가상각액(기계와 건물이 1년 동안 마모되는 돈 = 1년 동안 생산되는 생산물/전체 상품량)과 원료비가 들어가요. 또 포함되는 것이 임금입니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얻는 이윤이 포함돼 가격을 구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으로 상품을 다 살 수가 없습니다. 임금을 아무리 합쳐도 이 상품의 가격과 같지 않습니다. 마르크스가 늘 이야기하듯이 임금 노동자는 언제나 과잉 생산자입니다. 물론 산업의 종류에 따라 임금 비중은 다릅니다.
경기가 끝에 가서 굉장히 좋을 때가 호황입니다. 완전 고용 상태로서 경기 순환 전체로 봐서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때입니다. 오히려 임금이 높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소소비설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2.이윤율 저하 경향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 제5편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TRPF)을 설명합니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은 이윤을 얻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윤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투자할 수 있는 금액 자체가 결국엔 줄어드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마르크스는 공황 이론을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서 도출하고 있습니다.
일년 동안 얻은 이윤량, 1년 동안 얻은 잉여가치량을 ‘s’라고 합시다. 처음에 자본가는 기계와 원료라는 불변자본(c)과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드는 돈인 가변자본(v)에 투자합니다. 자본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이윤율이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하는 이윤율의 변동이 있습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이윤율이 떨어지면 공황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본 축적 과정에서 이윤율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알아 보기 위해 이윤율 공식 s/(c+v)를 살펴봅시다.
마르크스는 어떤 상품의 가치가 얼마인지 이야기할 때 상품에 들어가는 원료와 기계값 전부가 상품의 가치에 그대로 이전된다고 말합니다. 반면, 노동자의 임금은 다릅니다. 노동자는 임금을 받고 일합니다.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가치를 창조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만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말합니다. 노동자가 하루에 10시간 일했으면 10시간만큼의 가치를 창조합니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임금에 해당하는 필요 노동시간과 잉여가치가 만들어지는 잉여 노동시간으로 구성됩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잉여 노동이 이윤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자본가들은 자본 축적 과정에서 될 수 있는 한 노동 생산성을 많이 올리려고 합니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면 그만큼 물건을 싸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 가격은 100인데 자본가가 물건을 80으로 만들어 100에 팔면 20의 초과이윤을 얻습니다. 자본가들은 초과이윤을 얻기 위해 새로운 기계를 계속 도입합니다. 새로운 기계의 도입은 노동자 한 사람당 사용하는 기계나 원료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자본의 기술적 구성(c/v)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과 함께 이윤율이 상승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자본의 기술적 구성(c/v)이 높아지면서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합니다. 그러나 잉여가치를 만드는 것은 노동자입니다. 노동자가 자꾸 없어지니까 이윤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자본의 기술적 구성을 높이는 이유가 결국 생산성이 올라가므로 원료의 값과 기계의 값이 떨어지고 또 노동자들이 구매하는 생활 수단의 가치가 떨어져 노동자에게 돈을 적게 주더라도 실질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자본가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 대신 기계를 계속 도입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윤율 저하 경향과 그 상쇄 경향이라는 서로 모순된 두 측면이 다 있습니다.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단지 역사적으로 계속 떨어진다고 봐요. 이윤율이 계속 하락해 제로가 되면 자본가들이 이윤이 없어지니까 투자도 못하고 그래서 자본주의는 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윤율이 계속 올라가기만 하거나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이윤율이 계속 상승하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과 함께 이윤율이 상승하는 경향도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인터내셔널의 입장과 마르크스의 TRPF 법칙과는 결코 관계가 없습니다.
산업 자본은 이렇게 순환합니다. 기업이 화폐를 가지고 시장에 나가서 생산수단을 사고 그 뒤 노동력을 삽니다. 노동자를 고용해 상품을 생산합니다. 예컨대 컴퓨터라는 상품을 생산하려면 컴퓨터 부속품을 사고 노동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컴퓨터를 생산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야 이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 100억 원을 투자해서 20억 원의 이윤을 얻었다 합시다. 이윤율이 20퍼센트가 되겠죠. 이 기업이 다른 기업에서 기계나 원료를 사 왔겠죠. 기업의 투자가 이윤율에 비례한다면 이윤율이 20퍼센트인 기업에 기계와 원료를 판매한 기업은 생산을 20퍼센트 증가시킵니다. 수요가 매년 20퍼센트씩 증가한다고 생각하면 공급 또한 매년 20퍼센트씩 증가할 것입니다.
또한 생산재 산업이 20퍼센트씩 증가하면 고용되는 노동자 수도 20퍼센트 증가하겠죠. 소비재의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겠죠.
한 산업의 이윤율이 매년 동일하다는 이야기는 관련 산업이 그만큼 확장돼 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기업의 이윤율이 20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저하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실제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이윤율 저하 이전에는 늘 원료의 수요량을 20퍼센트씩 늘렸지만 이윤율이 10퍼센트 낮아졌으니 10퍼센트만 증가시킵니다. 공급하는 기업은 예년같이 수요가 20퍼센트 증가할 것을 예상해 공급할 상품의 생산을 20퍼센트 늘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공급은 10퍼센트에 그칩니다. 금방 과잉 생산이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에 대한 수요도 10퍼센트가 됩니다. 노동자들의 수요가 줄기 때문에 소비재 산업에 대한 수요도 줄겠죠. 소비재 산업에서도 판매 부진, 과잉 생산이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케인즈가 말한 유효 수요의 부족입니다. 그러나 케인즈는 실제로 유효 수요의 부족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케인즈는 핵심적으로 유효 수요의 부족을 사람의 심리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분명하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윤율이 저하하면 그것이 바로 유효 수요의 부족, 판매 부진을 초래하고 그 결과 과잉 생산이 발생한다.’
주류 경제학자는 공황의 원인이 아닌 공황의 국면만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의 축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왜 공황이 발생하는지를 분석합니다. 공황의 주요 원인에 이윤율의 저하 법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어느 단계에서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이 이윤율이 상승하는 경향을 이겨 결국 유효 수요가 부족해지고 물건이 잘 안 팔려 과잉 생산이 발생하는지에 관해 주장했습니다.
자본가들은 이윤율의 하락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합니다. 마르크스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로 물건 값의 폭락을 이야기합니다.
1974년 불황기에 물가가 올라갔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과잉 생산됐기 때문에 물가가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물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업이 이윤을 얻으려면 엄청난 원가 절감이 필요해요. 다시 말하면 굉장히 능률적인 기계를 도입해야 합니다. 기계를 도입하고 노동 조직도 바꿔야 되고 새로운 상품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기술혁신이 발생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기술혁신이 불황기에 다 일어나요. 왜냐하면 상품 값이 너무나 싸기 때문에 싼 값으로 물건을 만들어야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모든 혁신에 대한 충동은 여기에서 일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다시 경제가 회복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한국 경제 공황의 원인
1997년 11월에 IMF가 터졌습니다. 1999년과 2000년에 경제가 조금 좋아졌어요. 그러나 지금도 공황은 여전합니다.
한국 경제 공황을 설명할 때 늘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도덕적 해이”와 “연줄(정실) 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종 차별적인 말이며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소위 “아시아 모델” 때문에 한국 경제 공황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굉장히 많아요. IMF도 그렇게 말합니다. 대체로 주류 경제학자는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사실도 이론도 아닙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공황론이 없습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 주류 경제학에서 공황론이 있을 리 없죠. 그렇다 보니 한국 경제 공황을 놓고 딴소리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한국 경제 공황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야기는 “아시아 모델”론입니다. 한국 자본주의는 박정희 시대부터 산업 정책도 잘 폈고, 외환 관리나 외자 도입뿐 아니라 금융 통제도 잘해서, 즉 국가가 이 모든 경제 정책을 주도해서 고도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정부 주도의 수출 촉진 정책, 이것이 기본적으로 고도 성장을 가져왔는데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정부의 경제 개입을 자꾸 없앴다는 거죠. 아시아 모델이 해체되고 모든 것이 자유화로 나아가는 바람에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이 힘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유화 때문에 한국 경제 공황이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체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죠. 김영삼 정부는 삼성의 자동차 산업 참여를 허락했어요. 그러나 옛날에는 삼성이 자동차 산업에 못 들어왔죠. 자동차 시장 상황은 현대·대우·기아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삼성이 참여하면 경쟁이 더 심해지고 과잉 생산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죠. 그래서 삼성을 못 들어오게 했다구요. 결국 삼성은 자동차 시장에서 망했죠. 한보도 마찬가지예요. 이미 광양·포항·인천에 엄청나게 큰 철강 회사가 있었어요.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한보의 철강 시장 진출을 허락했어요.
그 후 금융 자율화가 진행됐어요. 시중 은행들이 금리를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도 많이 풀었죠. 그러다 보니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왔고 증권 시장에서 주가를 좌지우지했죠. 정부는 외자 도입 규제를 굉장히 완화했어요. 그래서 우리 나라 기업은 외국에 나가서 외자를 많이 빌려 올 수 있었어요. “기적”이라고 할 만큼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외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돈을 꿔 줬으므로 외자 유치는 수월했죠.
결국 정부가 국가 경제를 정책적으로 관리·경영하며 개입하지 않고 자유화하는 바람에 아시아 모델이 깨졌고 결국 공황이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 경제 공황을 설명할 때 이런 이야기가 주류입니다. 좌파 케인즈주의자 중 제임스 크로티라는 교수가 있어요. 그는 정부 주도의 아시아 모델이 굉장하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론 논쟁할 때마다 주류 경제학 쪽은 늘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좌파쪽은 시장이 아니고 정부가 나서도 잘 되는 게 있다고 이야기하죠. 정부가 개입하면 잘 되는데 정부가 개입을 안 하기 때문에 공황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공황을 설명한다면 1930년대 미국 공황을 설명할 수 없어요.
한국은 1997년 12월 3일에 국제통화기금한테서 “구제 금융”을 받았습니다. 구제 금융을 받은 것은 달러 부족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은행이 외국 은행이나 외국 기업한테서 달러를 많이 빌려 왔는데, 만기일에 외채 상환을 못해 도산할 위기에 있었어요. 도산할 위기에 있었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한테서 구제 금융을 받았어요.
왜 도산 위기가 왔는지 살펴봅시다. 한국 경제가 호황일 때 제가 외환은행한테서 3개월 후에 갚는다는 조건으로 1억 원을 빌렸다고 합시다. 만기일이 되어 3억 원을 좀더 쓰겠다고 할 경우 신용이 있다면 만기일을 3개월 더 연장해 주겠죠. 또, 3개월 후에 “나중에 갚을께” 하면 그 은행이 또 연장을 해 줘요. 대출 기한을 계속 연장하는 거죠. 달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만기가 됐을 때 외국 은행들이 대출 연장을 안 해 주고 “돈 내놓으라”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신문을 보니까 현대는 자기자본의 5백 퍼센트의 빚이 있고 삼성은 1백50퍼센트의 빚이 있더군요. 대부분의 기업이 빚을 지고 경영을 하면서, 빚도 갚고 이자도 갚다가 또 빚을 얻는 식이죠. 어느 기업에게는 기한 연장을 안 해 주고 현금을 내라 하면 그 기업은 망하겠죠. 그렇다면 1997년에는 왜 대출 연장을 안 해 줬을까요? 돈을 많이 빌린 은행과 기업이 언제 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놀래서 기한 연장을 안 해 줬어요.
우리가 공황의 원인을 알려면 은행과 기업이 왜 부실해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봅시다. 1997년 1월에 한보부도 사건이 터졌어요. 10월에 재벌 7위인 기아가 부도가 납니다. 기아 부도로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을 받는다니까 모든 나라가 더 놀래서 돈을 더 안 꿔 줬어요.
그런데 과잉투자나 과잉생산은 왜 벌어질까 이야기해 봅시다.
처음 투자할 때는 과잉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투자한 뒤 물건을 만들어 내지만 시장이 그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결국 과잉투자가 되는 것입니다.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은 모두 사후적인 개념입니다.
우리 나라는 재벌 세상입니다. 1986년부터 1989년 정도까지는 무역수지 흑자 등으로 경제가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 수출의 70∼80퍼센트를 담당하는 재벌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중국과 동남 아시아 나라들이 노동집약적인 산업 부문에서 우리 나라를 바짝 뒤쫓고 기술집약적인 부문에서는 독일이나 일본, 미국 등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어요. 재벌들은 엄청난 위협을 느꼈고 1990년대 초반부터 대규모 투자를 하기 시작했어요. 자동차 산업에서 반도체 산업, 석유화학, 철강 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굉장한 투자를 했어요.
은행 차입이 굉장히 늘었죠. 해외 차입도 굉장히 늘었구요. 그런데 자동차 산업이나 석유화학 산업, 반도체 등은 엄청난 투자 자금이 필요한 산업이죠. 헌데 국내 은행에는 재벌에 대한 투자가 상당히 규제돼 있었어요. 그래서 해외에서 자금을 끌어 오고 기계를 사 오기 위해 해외로부터 자금 차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재벌은 정부에게 요청을 많이 했죠. 재벌은 이 때 종합금융회사를 세웠어요. 주로 해외에서 돈을 많이 꾸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회사였죠. 그런데 이 쪽 친구들이 돈을 하도 많이 싼 값에 빌려 오니까 이 돈을 가지고 어디 대출할 데가 없었을 정도였어요. 러시아에 대출을 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하고 홍콩에 대출하기도 하고 주식도 사고 그랬던 거죠. 나중에는 그 돈들을 다 잃어 버리고 말죠.
어쨌든 재벌이 투자를 엄청나게 늘리는 동안 산업 시설이 많아지고 차입도 굉장히 늘었어요. 이 두 개의 요소가 문제를 낳았던 거죠. 투자를 해서 물건을 만들어 놓고 시장에 내고 보니 세계 시장이 그렇게 확대가 돼 있지 않았던 거예요.
국가경쟁력 향상 노력은 세계경제 규모 자체를 자꾸 축소시키는 효과를 낳아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영국은 국가경쟁력 올린다며 당장 임금 깎자고 합니다. 임금을 깎으면 자기 나라 시장도 줄 뿐 아니라 영국에 물건을 파는 나라의 시장도 줄게 됩니다. 다음으로는 사회보장 제도를 줄이려 합니다. 사회보장 제도를 줄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병원과 학교가 자꾸 줄어들고 실업 수당이 줄어 드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누리는 혜택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노동자만 자르면 국가경쟁력이 올라 간다고 여기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시장을 줄이는 일입니다.
당시 재벌은 투자를 엄청나게 했지만 이렇게 세계 시장이 줄어 드는 바람에 물건이 안 팔리게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원리금을 상환하기 굉장히 어려워지게 된 겁니다. 결국 은행 자체가 또 어려워지게 됐죠. 종합금융회사가 엄청나게 해외에서 꾸어 온 돈을 갚을 수가 없게 된 겁니다. 더욱이 종금사가 돈도 못 갚고 해외에 엉뚱하게 투자를 해서 손해를 많이 봤기 떄문에 갚을 수도 없게 된 것이죠. 결국 1997년 12월 한국의 공황으로 터지게 된 것입니다.
만약 도덕적 해이가 문제였다고 말한다면 나는 잘못은 되레 외국 투자자한테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 은행들이 왜 우리 나라에 그렇게 많이 돈을 꿔 줬느냐 그 말입니다. 그 놈들이 돈을 엄청나게 많이 꿔 줬는데 그 놈들은 늘 믿는게 뭐냐 하면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국제통화기금한테 꼼짝 못한다’는 점이예요. 그래서 실제로 외국의 은행이나 투자자들은 국제통화기금하고 미국 정부를 믿고 우리한테 그냥 생각 안 하고 막 돈을 빌려 준 겁니다. 나중에 결국 IMF와 미국 정부가 받아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도덕적 해이입니다. 그래서 내가 늘 얘기하지만 우리가 그 돈을 떼 먹어도 별 문제될 것이 없다 이겁니다. 그 돈 못 갚겠다 하면서 배 째라 하고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김대중이 워낙 친미주의자라서 그것을 못해서 문제입니다.
신자유주의
1990년대 중반쯤에는 개방·자유화가 매우 진전된 상황이었습니다. 경제도 상당히 잘 나가던 상황이었죠. 정부가 개입을 하지 말라는 입장이 주류였어요. 왜냐하면 정부가 개입하니까 부정부패만 자꾸 생기다는 것이죠. ‘민간주도의 경제’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재벌들도 정부한테서 벗어나려는 게 하나의 주류적 경향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습니다.
경제에서 신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이 당시에는 케인즈주의 경제 정책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케인즈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복지국가와 사회보장제도가 그 당시 사회 조류였습니다. 완전 고용, 사회보장 제도 그리고 노동조합 보호는 좌파·우파·중도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의 합의였습니다. 자유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모두 동의했어요.
그러나 1974∼1975년부터 시작된 공황은 그 당시의 사회 조류를 바꿔 놓았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기업을 살리기 위해, 케인즈주의의 산물을 해체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신보수주의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케인즈주의 하의 자유주의자와 달리 지금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없애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 앞에 신(neo)이 붙은 것입니다.
결국 시장에 맡긴다는 이야기는 기업가들이 투자를 해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시장을 넓혀 나가야 되겠죠. 예를 들어 영국 같으면 병원이 전부 공짜입니다. NHS(National Health Service)라고 하는데 병원에 가면 공짜로 치료받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은 기업이 병원을 세워서 자본가들이 이윤을 보게 하라는 겁니다. 정부의 사회복지 제도를 시장에 맡기라는 이야기입니다.
공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철도는 공기업입니다. 그런데 철도를 운영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돈이 듭니다. 정부가 운영하기 때문에 벽지에서도 철도를 운행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손해를 보면서도 운행하는 거죠. 벽지에 있는 사람도 국민이잖아요.
그런데 공기업인 철도를 지역별로 나누고 노선 별로 나누어서 기업에게 팔았어요. 기업들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기 때문에 이윤이 나지 않는 노선을 폐쇄했습니다. 철도가 민영화되자 이윤이 남지 않는 노선을 폐쇄했어요. 그뿐 아니라 수리도 안 합니다. 수리를 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 왜 수리하겠어요? 그래서 큰 사고가 많이 났죠. 독점이니 가격을 높게 매기는 거예요. 가격을 높게 해도 국민들이 대항할 방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기차 안 타고 다닐 방법이 거의 없거든요.
국가 개입을 마구 줄이라는 것은 사실 자본가를 위해 시장을 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민영화한다고 해서 국가 개입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민영화 계획은 대체로 많이 실패했어요. 공기업이 민영화된 뒤 사기업들은 엄청나게 이윤을 많이 봤어요. 정부는 이에 대한 특별법을 만들었죠. 윈드폴 브로픽텍스라고 하는 세금을 부과해 이윤을 국가로 환수하는 방식이죠. 사기업의 가격 결정이 온당한지 여부를 검사하는 국가기관이 또 생겼어요. 공기업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것 저것 만들고 온갖 짓을 다 하는 거죠. 결국 국가 개입이 줄어든 게 아니라 국가 개입 형태가 자꾸 변해 가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가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할 때 우리 나라에서는 자본의 힘을 자꾸 줄여야 됩니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자본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국민 전체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우자동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가 돼야 해요. 대우자동차의 해결 방법은 공기업밖에 없다고 결정하는 거죠.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자꾸 공기업은 비능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기업하지 말고 진짜배기 공기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지금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자본의 힘을 자꾸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