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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시온주의의 본질

이 글은 리영희 교수가 번역·출간한 《80년대 국제 정세와 한반도》(동광출판사, 1984)에 실렸던 글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테러 국가 이스라엘 지배자들이 표방하고 있는 시온주의를 설명하는 글을 싣는다.

[리영희 교수의 편자 주] 유대인은 평화와 인도주의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정치와 군사를 제외한 모든 인간생활의 분야에서 인류발전에 남긴 공헌으로 존경과 찬사를 받은 민족이었다. 스피노자·하이네·마르크스·아인슈타인 등의 이름들과 그 밖의 무수한 이름들이 서구문명사에 영원한 빛을 남겼다. 나찌에게 6백만의 동족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유대인들은 인간의 양심을 구현하는 사회를 지구상에 실현하기 위해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나안의 성지에 모였다. 그 국가건설에는 소련이 제 1착으로 국가 승인을 할 정도로 전 세계의 동정과 지지가 있었다. 유대인 자신들도 평등·자유·박애·평화의 정신이 꽃피는 키부츠 공동생활체로써 ‘지상의 낙원’을 위해 땀 흘리는 것으로 믿어졌다. 모두가 그렇게 희망했었다. 그러했던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초부터 시대착오적인 제국주의적·식민지적 아랍 침략전쟁으로 중동평화의 화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인구 3백50만의 이스라엘에게 연전연패의 고배를 마시는 수억의 아랍민족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유대인 대 팔레스타인 민족·아랍 세계의 분쟁을 모든 측면에서 공평하고 명쾌하게 해부해 주는 아이작 도이처에게서 듣는다. 도이처는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도 없는 유대계 시인·사상가·철학자·역사가이자 러시아 혁명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다. 여기 소개한 논문은 그가 사망하기 전인 1968년에 영국의 《옵저버》에 연재한 것이지만 그 분석과 관점은 오히려 오늘에 와서 더욱 탁월함이 입증된다.

중동의 프러시아 제국

이스라엘은 프러시아 제국이 지난 세기에 유럽에서 했던 역할을 지금 중동에서 연출하려고 결심한 듯이 보인다. 이것은 역설적이면서 또 불쾌한 현상이다.

이스라엘은 벌써 세 번이나 인근 아랍 국가들을 유린했다. 1세기 전 유럽에서 프러시아는 불과 몇 해 사이에 덴마크·오스트리아·프랑스 등 인접 국가들을 모조리 유린했다. 그들의 연전연승으로 프러시아인은 마음 속에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절대적 자신과, 군사력에 대한 맹목적 신뢰감, 그리고 쇼비니즘(배외적·호전적 애국주의)의 오만함과 타민족에 대한 멸시감을 키웠다. 그와 같은 퇴화 ― 그것은 퇴화, 바로 그것이다 ― 현상이 이스라엘 국가의 정치적 속성이 되는 것 같아 두렵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중동의 프러시아라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허약한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프러시아인은 적어도 잇따른 승리를 이용하여 제국의 판도 속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밖에 사는 독일어를 쓰는 민족을 규합하여 하나로 만들 수가 있었다. 독일의 인근 국가들은 상호간 이해·역사·언어·종교 등의 차이로 분열되어 있었다.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2세, 그리고 히틀러가 이 나라들을 서로 대립·반목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랍 민족뿐이다. 아랍 국가들을 서로 반목·대립시키려는 시도는 거시적으로 볼 때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이 아랍과 제1차 전쟁을 치렀던 1948년에는 아랍 국가들은 서로 불화 상태였다. 1956년, 이스라엘이 제2차 전쟁을 감행했을 때 그들의 대립은 다소 완화되어 있었다. 1967년의 제3차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은 공동전선을 형성했고(1973년의 제4차 전쟁에서는 낫세르의 이집트군에게 초전의 승리를 주어야만 했다), 아랍 민족은 앞으로 이스라엘과의 대립에서 훨씬 강력한 단결력을 보일 것이다.

독일 민족은 그들의 체험을 빈정대는 투의 표현에 압축시켰다. “사람은 스스로 사지에 몰아넣어야 비로소 이길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땅을 아랍인들에게서 뜯어냈다. 유대인이 정복한 땅에는 약 1백50만 명의 아랍인이 살고 있고, 이스라엘 인구의 40퍼센트를 넘는다. 도대체 이스라엘인들은 점령 지역의 ‘안전’을 위해 이 많은 아랍인을 추방하려는 것인가? 결국 그런 행동은 가뜩이나 골치 아픈, 그리고 훨씬 위험하고 대규모의 새로운 피난민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정복한 땅을 내놓을 것인가? “천만에!”가 거의 모든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어김없는 답변이다.

이스라엘의 배외적·맹목적 국가지상주의의 악령인 벤-구리온은 요르단에 대해, ‘아랍-팔레스타인 국가’를 만들어 그것을 이스라엘의 보호국으로 할 것이라고 우겨댔다. 그는 아랍 민족이 그 따위 보호국 구상을 수락할 것으로 기대할 권리라도 갖고 있다고 자처하는가? 아랍 민족은 결사적으로 저항하지 않을까? 이스라엘 국가의 어느 정당도 ‘아랍-이스라엘 복합 민족 국가’ 같은 것을 생각할 낌새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수많은 아랍인들에게 팔레스타인-요르단의 정든 집을 놓고 나가도록 하는 강압적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점령 지역의 아랍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처우는 20여 년 간 군사 통치 하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 내의 아랍 소수 민족에 대한 처우보다도 훨씬 가혹해졌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틀림없이 패배보다도 나쁜 결과를 이스라엘에 가져올 것이다. 여러 차례의 승리는 이스라엘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아랍 민족의 복수와 유대인 멸종 정책을 이스라엘이 두려워 할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그 환상을 현실의 위협인 양 행동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서구의 책임

현재의 상태는 어느 정도까지는 제2차세계대전, 아니 제1차세계대전 이래의 아랍과 이스라엘의 관계의 과정의 집약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선택의 상당 부분이 이스라엘 국민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서 이 문제를 이스라엘의 청중에게 제기한 일이 있다.

어떤 사나이가 불타고 있는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그 집안에서는 그 사나이의 가족들이 대부분 다 죽어 있었다. 그 사나이만은 요행 살아났지만, 뛰어내렸을 때 그 아래 서 있던 사람을 덮쳐 다리와 팔을 부러지게 했다. 사실 뛰어내린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팔다리가 부러진 사람으로서는 뛰어내린 사람이 자기의 재화의 원인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슬기롭게 대했다면 서로 원수가 되지 알고 지냈을 것이다. 타는 집에서 도망친 사나이는 정신을 차리는 즉시 자기 때문에 병신이 된 사람을 돕고 위로하고 사과했을 것이다. 불행을 당한 사람은 아침 일진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것이니, 두 사람이 다 별도리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이성을 잃고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 부상당한 사람은 자기의 재앙을 뛰어내린 사람의 책임으로 비난하면서 손해 배상을 요구할 것이다. 뛰어내린 쪽은 병신된 사람의 복수를 두려워한 나머지, 만날 때마다 그 사나이를 모욕하고 걷어차고, 주먹질을 할 것이다. 이렇게 당한 쪽은 다시 복수심을 굳히고, 또 얻어맞고, 욕을 본다. 이 대립 관계는 애당초 단순한 우연의 결과였지만 차츰 격화하여, 서로 깨질 줄 모르는 증오심을 불태우면서 끝내는 두 사람의 온 인생을 암담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여러분(이스라엘인 청중에게 말한 것이지만)은, 이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온 사람이 이스라엘에 이주해 와 있는 유럽계 유대인의 생존자를 두고 하는 말임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부상당한 사람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들 때문에 집과 땅을 잃어 버린 1백만 명 이상의 아랍계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이들은 원한을 품고 있다. 그들은 국경 너머로 자기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정든 고향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기회만 있으면 당신들을 습격하려 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당신들은 그들을 가차없이 때려눕히고, 짓누르고 있다. 당신들은 그들에게, “그런 짓을 하면 이렇게 당한다.”고 혼을 내야 한다고 우겨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전 과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당신들의 행동의 결과가 어떤 것이겠는가?

아우슈비츠·아이다네크·게토가 상징하는 유럽에서의 유대인의 학대와 학살의 비극은 전적으로 서구의 부르주아 문명이 져야 할 책임이다. 왜냐하면, 나찌는 타락한 체계였지만 어쨌든 서구 문명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서구 세계가 유대인에 대해 저지른 범죄의 보상을 강요당한 것은 아랍 민족이었고 아랍 민족은 여태껏 남의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서구는 ‘켕기는 양심’ 때문에 유대인 이스라엘을 토닥거리기 위해서 아랍인을 해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주 쉽사리 서구의 거짓 ‘상납금’(탈세자가 후회해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국고에 납입하는 돈)으로 매수되고 우롱당하고 있다.

유럽 제국주의의 앞잡이

이스라엘-아랍 두 민족의 정상적 관계는, 만일 이스라엘이 조금이라도 그럴 생각이 있다면, 다시 말해서 불타는 집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아무런 죄도 없는 자기로 인한 희생자와 우호관계를 맺고,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한 보상을 하려고만 마음먹었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아랍인들의 불만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순수 유대인 국가’의 전설에 전념하고,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을 추방하면서 쾌재를 불렀다. 이스라엘 정부는 여태까지 한번도 진지하게 아랍 주민의 원한을 풀어주고 화해를 모색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랍 국가들이 먼저 이스라엘 국가를 승인하고, 먼저 정치적으로 항복해 들어오지 않는 한, 1백만 명이 넘는 아랍인 피난민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상을 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것은 지금까지 협상 회피를 위한 구실이었다.

아랍-이스라엘 두 민족 사이의 감정이 극도로 악화된 것은 수에즈 운하 전쟁(1956년) 때이다. 이스라엘은 후안무치하게도, 그들의 공통의 이권(수에즈 운하)과 이집트를 틀어쥐려고 단말마적 몸부림을 치는, 파산 상태에 있는 낡은 유럽(영·프)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행동했다.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의 주주들의 편을 들 것이 아니었다. 어느 쪽에 명분이 있는가 하는 것은 물을 필요도 없이 명백한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도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전적으로 악한 쪽에 붙었던 것이다.

아랍 민족주의의 문제점

피상적으로 보면, 아랍-이스라엘의 싸움은 단순히 적대적 두 민족주의의 충돌로서 각자가 자기 정당화와 야망의 달성을 위한 공허한 이론구조 속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추상적 국제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쌍방이 다같이 무의미한 반동 세력이라고 한마디로 규정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해석은 사회적·정치적 현실을 무시한 견해일 수가 있다.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식민지나 반식민지 여러 나라와 지역 민중의 민족주의를, 정복자의 국가 중심주의와 동일한 도의적·정치적 차원에서 논하는 것은 부당하다. 전자는 역사적 정당성을 지니고 진보적 측면을 갖는 반면, 후자에는 그런 것이 없다. 이스라엘과는 달리 아랍의 민족주의는 아직까지는 분명히 전자에 속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랍측에도 문제는 있다. 착취받고 박해받는 쪽의 민족주의라도 그 전개에 여러 단계가 있고 보면 전적으로 비판에 대한 면책권을 누릴 수는 없다. 어느 단계에서는 진보적인 포부가 지배적이지만 다른 단계에서는 반동적 경향이 표면에 나온다. 독립을 쟁취한 순간부터 민족주의는 혁명적 측면을 버리고 반동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여러 나라들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민족혁명의 단계에서조차 민족주의는 으레 비논리적 색채를 띠고, 배타주의, 국가지상주의적 에고이즘, 민족적 우월감 등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랍 민족주의는 역사적으로 보아 적지 않은 장점과 진보적 꿈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 속에도 이와 같은 반동적 요소가 있다.

이스라엘-아랍 사이의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특히 1967년 위기에서) 아랍 국가들의 정치사상이나 행동양식에 근본적 취약점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대책이 없고, 감정적 자기도취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며, 민족주의자의 대중 선동에 좌우되는 흠이 있다. 이 같은 취약성이 아랍 민족의 연전연패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다!’느니 심지어 ‘유대인종을 멸종시킨다!’느니 하는 따위의 허장성세 ― 그것이 얼마나 빈말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사실은 전쟁할 때마다 드러나는 아랍 국가들의 군사적 미숙 상태로 입증되었다 ― 를 일삼아 왔고, 그런 선동가들은 거꾸로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배타적·맹목적 애국심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국민 대중의 공포심을 난폭한 침략 전쟁으로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그 협박은 아랍 민족 자신의 머리 위에서 폭발하곤 했다.

전쟁이 정책의 연장임은 분명하다. 여태까지의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아랍 국가 정권들의 상대적 미숙함을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승리는 단순히 그 선제공격의 탓만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그들이 훨씬 현대적인 경제·정치·군사적 조직력을 가진 탓이라 할 것이다. 여태까지의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아랍 땅에 국가를 건설한 이후의, 특히 수에즈 운하 전쟁 이후의 아랍 사회의 발전의 결산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결산서는 아랍측의 엄청난 무능을 입증했다.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의 사회·경제구조와 아랍 민족의 정치 감각의 근대화는, 현재의 아랍 체제를 이상적인 것인 양 과신하고 있는 많은 아랍 국민들이 생각하기보다 훨씬 그 속도가 더디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그 끈덕진 후진성의 뿌리는 물론 사회·경제적 조건에 있다. 하지만 아랍 민족의 이데올로기와 조직방식도 그 자체로서 취약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일국일당 전제체제’, ‘낫세르주의’, ‘언론 자유의 결여’ 등을 두고 하는 말이며,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대중적 정치 교육과 사회 의식의 계몽이 크게 제약받고 있다.

그와 같은 저해 요인의 결과는 여러 수준과 측면에서 느껴진다. 모든 주요 결정은 거의가 독재적 ‘지도자’가 혼자 결정하고, 평상시에도 정부 정책의 실시과정에 진정한 국민의 참여가 없고, 아래로부터의 체계적이고 적극적 의식이나 이니셔티브도 없다. 이 상태는 여러 가지 저해적인 결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군사적 실패도 그 결과이다.

초기의 전쟁에서 재래식 무기로 감행된 이스라엘군의 선제공격은, 만약 이집트군이나 다른 아랍 국가 군대가 통상적으로 각급 장교나 사병층의 자발적 협동의식을 권장하고 있었다면 그토록 철저한 파멸적 결과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군사적 무능은 넓고 깊은 사회적·정치적 취약성을 반영하고 있다.

아랍 국가들이 군대식·관료식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아랍 해방 운동의 정치적 통일을 저해하고 있다. 민족주의의 민중 선동은 쉽게 열기를 돋군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적·민족적 통합을 지향하는 진정한 기구나 분열된 봉건적·반동적 힘에 대한 인민의 군대의 참된 동원을 대치할 수 없는 것이다.

아랍 국가들을 엄습한 여태까지의 위기에서 한 사람의 ‘지도자’에의 지나친 의존상태가 아랍 국가들의 운명을 사실상 강대국들의 간섭과 외교 흥정의 노리개로 만들어 버렸으며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것이었는가 하는 사실을 거듭 목격했다.

미국의 등장

이스라엘의 ‘기적’ 같은 전쟁 승리들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해묵은 난제들을 더욱 꼬이게 하고, 더 위험한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너무도 간단한 승리는 멀지 않은 장래에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비극의 시점이었음이 판명될 것이다.

국제 정세적 배경을 살펴보자. 이 전쟁들은 강대국들간의 힘의 싸움과 그 싸움의 핵심인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의 관련에서 생각해야 한다. 지난 여러 해 동안의 미국의 공격주의와 그를 돕는 세력은 정치·사상·경제·군사 등의 면에서 아시아·아프리카의 광대한 지역에서 공세를 폈다.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그와 같은 국제 정세의 움직임에 속하는 사건의 하나로 연출되었다.

중동에서 미국이 ‘앞을 바라보는(진보적)’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수에즈 운하 전쟁 때만 하더라도 미국은 ‘반식민주의’의 입장을 취했다. 미국은 외견상, 소련과 손을 잡고 영·불 양국을 중동에서 철수시키도록 행동했다. 미국 정책의 근본 방침은 이스라엘의 국가 형성기인 1940년대 말과 같았다.

미국의 지배층이 낡은 식민지 강국들을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밀어내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백악관은 ‘식민주의 반대’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책으로 몇 개의 낡은 제국의 몰락을 거든 이후, 현지의 혁명세력이나 소련, 또는 그 양자가 차지할지도 모르는 ‘힘의 공백’을 두려워했다.

이 때부터 중동에서 영·불의 구식민국의 뒷자리에 미국이 ‘등장’했다. 수에즈전쟁, 그 다음은 이스라엘-아랍 전쟁이 그랬고, 1958년 미국 해병대의 레바논 상륙은 중동, 특히 이라크에서의 혁명의 고조를 가로막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 후에는 미국은 소련의 온건정책을 믿고 중동에 대한 공공연한 직접적 군사 개입을 피하면서 초연한 태도를 취해 왔다.

이스라엘의 대외의존성

이스라엘은 물론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 것이지 단순한 미국 정책에만 편승해서 행동한 것은 아니다. 지도자들과 대중은 자기들이 아랍 국가들의 보복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다. ‘피에 굶주린’ 아랍 민족의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말살하자!”는 선전과 선동이 이스라엘 국민을 공포 속에 몰아 넣은 것도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과거 유럽에서 유대인이 겪은 비극을 언제나 기억에 되살리면서, 지금도 원한에 찬 몇 천만의 아랍인 세계 속에 포위되어 고립되어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하는 논객들은 아랍측의 격렬한 발언을 이용해 중동에서 제2의 ‘최종적 해결’(히틀러가 유대인 전멸 정책에 사용한 슬로건)이 시도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유대인에게 불어넣으려 힘써 왔다. 이런 선전가들은 성서의 신화나 유대 역사에 나오는 고대 종교 국가적인 상징을 총동원해 가면서, 시나이 반도, ‘통곡의 벽’(예루살렘 서쪽 성벽의 일부로서, 파괴된 솔로몬 신전의 일부라고 믿고 있다), 요르단령, 예리고성(예루살렘 북동쪽)을 향해 돌진했던 옛 이야기의 유대인 조상들의 투쟁심·광포함·광신적 열정의 폭풍을 부채질했다. 현재의 광기와 횡포 속에는 아랍 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눌리고 있는 죄책감 ─ 아랍 민족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한 짓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고 또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 이 있다.

아랍 민족은 땅을 빼앗기고, 1백만 명이 넘는 난민 문제를 안고, 여러 차례 군사적 패배의 굴욕을 당했다. 아랍 민족의 복수가 두려워서 반광란 상태가 된 이스라엘 국민은, 자기 정부의 기동력이 되고 있는 ‘원칙’ ―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몇 해마다 한번씩 아랍 국가들을 반신불수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전쟁을 해야 한다는 원칙 ― 을 두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기와 공포가 어떤 것이든 이스라엘 정부가 전쟁을 단독으로 감행한 일은 없었고 또 할 수도 없다. 이스라엘이 외부 강대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는 건국 이후 이스라엘 역사의 한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대 정권은 그 집권 정당의 차

이와 관계 없이 한결같이 나라의 생명을 ‘서구 지향’에 걸어왔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스라엘은 중동의 서구 ‘최전선 기지’로 변했다. 따라서 해방을 위해 싸우는 아랍 민족과 제국주의(또는 신식민주의)와의 일대 투쟁 속에 말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도 또 하나의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는 형편 없는 경제적 수지와 그 성장을 해외의 시온주의자(팔레스타인에 순수 유대인만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주의자)들의 경제 원조, 그 중에서도 미국의 기부와 원조에 의존해 왔다. 이런 송금은 이 신생국가로서는 ‘위장된 악’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정부의 적자를 처리해 주는 것이었다.

정상적 국가의 경우 적자는 인근 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해 결제되는 것이 상례이다.

외국으로부터의 그와 같은 형태의 자본 도입은 이스라엘의 경제 구조를 왜곡시켰고, 대규모의 비생산적 부문의 성장과, 이스라엘 국가 자체의 생산이나 소득과 무관한 생활 수준의 상승을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럴수록 이스라엘은 아랍 세계에 있으면서 ‘서방 세력권’ 속에 편입되어 갔다.

이스라엘은 식량의 태반을 서방 사회에서 수입한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로 보내는 ‘기증’이라는 특별 지정된 수입이나 이익금을 재무행정상 면제 취급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워싱턴의 재무부는 이스라엘의 재원을 장악하고 역으로 이스라엘 경제는 미국 원조에 의존하게끔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 정부가 중요한 장기적 국가 정책으로서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무역이나 긴밀한 경제적 제휴, 또는 소련이나 동구 국가들과의 경제 관계 개선을 고려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타국에의 경제적 의존은 필연적으로 이스라엘의 국내 정책이나 ‘문화적 모습’에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기부자는 바로 ‘성지’에서 활약하는 가장 중요한 외국 투자가이다.

미국의 산업·재정의 중심지에 앉아서 스스로 ‘세속적 기업가’를 자처하고 있는 부유한 유대계 미국인들은 마음 속으로는 자기가 ‘선민’의 한 사람임을 자부하면서 이스라엘의 보수 세력과 반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유기업 체제를 신봉하는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기초인 키부츠의 온건 사회주의에 대해서마저 적개심을 가지고 그 억압에 한몫을 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유대교의 랍비(성직자)를 원조하여 유대민족의 탈무드(유대율법)적 배타주의와 우월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이웃 아랍 민족에 대한 적개심의 형태를 취하여 불타오르게 한다.

냉전과 중동문제

냉전은 이스라엘의 반동세력에 큰 구실을 제공하여 아랍 민족에 대한 분쟁을 격화시켰고 명확한 반공주의 입장에 서게 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스탈린의 만년의 정책과 소련 내에서의 반유대운동의 대두, 스란스키·라이크·코스토프 등의 재판으로 나타난 반유대적 의도, 허무맹랑한 종류의 아랍 민족주의까지도 지지하는 소련 정책 등이 이스라엘의 그 같은 태도에 대한 일단의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스탈린이 바로 이스라엘 국가 탄생의 대부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스탈린의 명령으로 공급된 체코슬로바키아제 무기로 1947∼1948년까지 영국 점령군 및 아랍 민족과 싸웠다. 유엔에서 이스라엘 공화국을 가장 먼저 승인 투표 한 것이 소련 대표였다. 이스라엘에 대한 스탈린의 태도 변화는 이스라엘이 친서방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정책은 아랍 민족의 단결과 서구 제국들로부터 민족 해방을 지향하는 아랍의 숙원에 대해서 화해할 수 없는 적대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으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여태까지 이스라엘이 감행해 온 전쟁의 역할이다.

서구 식민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 민족을 분열과 후진성 속에 묶어놓고 아랍사회 속의 반동적 또는 봉건적 세력들을 부추겨 공화주의와 민족주의적 혁명 세력에 대항시키는 것을 최상의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해결방안 ― 중동연맹

문제는 다시 아랍으로 돌아간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대립은 군사적 수단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어느 누구도 아랍 국가들이 패전 이후 군대를 재건을 할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 아랍 국가들에게 진실로 당장 필요한 일은 사회적·정치적 조치이며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의 새로운 방책이다. 여태까지의 반이스라엘 일변도의 정책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이 그 점령 지역을 반환하지 않는 한 협상을 거부할 것이고, 요르단이나 가자 지대의 이스라엘 점령군 정부에 저항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쟁의 재발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전’이나 선제 공격에 의한 것보다도 더 큰 이익을 아랍 민족에게 주는 길이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진정한 승리, 문명의 승리를 안겨 줄 것이지만 그 방책의 실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아랍계 경제 구조의 힘찬 현대화가 제1 요건이다.

그리고 낡은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것을 이어받은 제멋대로 그어진 국경선과 분할 통치의 수법 때문에 아직껏 분열 상태에 있는 아랍 민족의 현 상태에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힘겨운 과제는 아랍 세계 내의 진보적 요소가 강화되지 않는 한 그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다.

끝으로 아랍 민족주의가 해방 세력으로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명력을 발휘하려면, 국제주의적 사상에 의한 훈련과 합리화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랍 민족은 이스라엘과의 문제를 좀더 현실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랍측은 언제까지나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적 생존권을 부정하거나 호전적 언사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적 성장, 공업화, 교육의 확장, 더 능률적인 사회 조직화,

더 냉정한 정책 등만이 단순한 인간의 머리의 수나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의 뜨거움만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아랍 민족에게 가져다 줄 것이 틀림없다. 아랍 민족 자신이 현실적 우위를 이룩하게 되면 그것으로써 저절로 이스라엘은 제 분수의 틀 속으로 되돌아갈 것이며 중동에서 자신에 어울리는 분별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과업이 하루 이틀에 달성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시간을 요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가장 간단한 해결의 길이기도 하다. 민중을 선동하거나 보복 행위를 일삼거나 전쟁에 호소하거나 하는 일이 얼핏 보기에는 지름길 같으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위험한 길인가 하는 것은 여러 번의 전쟁을 통해서 십분 입증되고도 남았다. 아랍측의 정책은 이스라엘 정부의 어깨 너머로 이스라엘 국민, 노동자나 키부츠원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스라엘 국민의 정당한 권리는 존중되고, 이스라엘도 장차 ‘중동연맹’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분명한 약속과 보장으로써 이스라엘인들의 공포심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의 배타적·맹목적 애국주의의 광기도 진정되고, 시온주의의 영토 확장주의적

지배 정책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내부 세력을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호소에 호응하는 이스라엘의 노동자를 위시한 국민의 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강대국들의 힘의 농간에서 스스로를 단절시켜야 한다. 강대국들의 농간은 중동 지역의 사회적·정치적 발전을 기형화시켜 왔다.

앞서 나는 미국의 세력이 이스라엘의 정책에 현재와 같은 추악한 반동적 성격을 주입하는 데 얼마나 많은 작용을 했는가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러시아의 세력은 그것대로 내용도 없는 슬로건을 공급하여 민심 선동에 열을 올림으로써 아랍인들의 마음을 일그러뜨리는 데 큰 작용을 하는 반면, 모스크바의 에고이즘이나 기회주의는 그들의 실망과 조소를 자아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언제까지나 강대국들의 이기주의적 중동 정책의 농간의 노리개가 되고 있는 한 장래 전망은 암담하다.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다같이 애정을 가지는 사람으로서 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충고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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