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보복 전쟁을 군사대국화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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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전쟁을 군사대국화의 기회로
이원재
부시가 보복 전쟁을 시작하자마자 일본 지배자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위대를 파병하겠다고 나섰다. 고이즈미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구상하여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나아가 군사 대국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일본이 전후 폐허에 가까운 상태에서 ‘기적’에 가까운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 비용이 매우 적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냉전 시기에 미국의 군사력이 일본을 보호하는 우산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모든 에너지를 경제 성장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급속한 성장을 두고 ‘안보의 무임승차’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러한 성장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 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세력 재편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군사력이 강력하지 않다면 탁월한 경제력조차 온전히 보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애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특히 1991년 1월에 벌어진 제2차 걸프전은 일본의 군비증강 경향을 더욱 부추겼다. 이 전쟁에서 일본은 전체 전쟁비용의 17.5 퍼센트에 해당하는 130억 달러를 냈지만 전쟁 이후 중동 지역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이 일은 일본 지배자들이 자국 군대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던 현실의 제약을 뼈아프게 확인하는 계기였다. 그 뒤 일본은 국내외의 반대 때문에 국회에서 3년 동안 질질 끌어 온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파견법안을 1992년 6월에 통과시켰다. 곧이어 1992년 9월 17일 일본의 자위대는 평화유지군으로서 캄보디아로 파견됐다. 이후 일본은 1993년 5월에 모잠비크, 1994년 자이레, 1996년 골란고원에 자위대를 보내 그 활동 범위를 점차 넓혀나갔다. 1997년 9월 "일본 주변 지역의 사태가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영향을 주는 경우 자위대를 투입할 수 있"도록 한 미·일 신가이드라인이 제정됐고, 1999년에는 평화헌법 개정을 논의하는 헌법조사회가 국회에 만들어졌으며, 유사시 미국의 후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주변 사태법이 제정됐다.
보복전쟁을 기회로
일본은 이번 보복전쟁을 자위대의 본격적인 해외진출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그 동안의 평화유지군 활동이 분쟁 이후의 수습 과정에 참여하는 한계를 넘어 직접 분쟁 지역에서의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려고 한다. 일본 정부는 10월 5일 보복공격 지원을 위한 ‘테러대책 특별조처법안’과 ‘자위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본은 이 법안에서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타국의 영해와 영토로까지 크게 넓히려 할 뿐 아니라 미군 지상부대 의료 지원 등을 위해 타국 영토 상륙까지 검토하고 있다. 또 고이즈미는 이번 자위대 파병이 비전투 지역에 한정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미군의 전투 구역일지라도 일본 정부가 ‘비전투 구역’이라고 판단하면 자위대 파병은 가능하다고 뻔뻔스럽게 말한다.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군대 파병에 제한을 받던 독일이 자신들의 군사력 확장의 교두보로 발칸 전쟁을 이용했던 선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1999년 독일의 슈뢰더는 “우리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력을 통해서라도 코소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게끔 강요받고 있다.”며 나토의 군사개입을 정당화한 뒤 전후 최초로 독일군을 파병했다. 독일이 발칸 전쟁을 이용했듯이 일본은 부시의 전쟁을 제국주의적 개입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제국주의 경쟁체제
지금 일본이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으로 나아가려는 이유는 더 이상 단순히 ‘무역국가’로는 자국의 이익을 지킬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비군사적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군사력을 통해 얻으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냉전 이후 다극화된 세계 자본주의의 정치 상황 때문이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부하린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세계적 규모의 생산관계에서 자본가들간의 경쟁은 더 이상 시장을 겨냥한 사적 기업들의 투쟁이 아니라 점점 더 군사적·영토적 경쟁의 형태를 띤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군사적 힘이 투쟁하는 ‘민족적 자본가 집단들’이 호소하는 최후수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고 있는 지금 제국주의 열강은 경제적 이권을 획득하기 위해 군사적 무장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일본도 제국주의 군비경쟁에 엄청난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이 부시의 전쟁에 적극 참여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다. 에너지의 90퍼센트를 석유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은 중동에 이어 떠오르고 있는 유전·가스 지대인 중앙 아시아에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투자를 해왔다. 일본은 이번 전쟁에 참여해 중앙 아시아에 대한 통제권의 일부를 얻고 싶어한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 있어 자칫하면 옛 소련이 그랬듯이 막대한 군사 비용 때문에 일본의 경제 회복은 더욱 더딜 것이다. 한편, 군사 대국화에 대한 제국주의 열강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자위대 파병과 평화헌법 개정이 동북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다. 또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확장을 지원해 왔지만 미국이 정해 놓은 한도를 벗어나는 걸 결코 원하지 않는다. 10월 3일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일본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후 재건 프로그램에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 주기만 바란다고 밝혔다.
이렇듯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냉전 이후 다극화된 제국주의 체제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일본내 반전 운동
하지만 일본의 다른 한쪽에서는 군사대국화를 반대하는 저항을 시작하고 있다. 9월 27일 ‘평화와 생활을 연결하는 모임’, ‘피스 보트(Peace Boat)’ 등의 시민단체들이 “테러대책 법안과 자위대 파견은 전쟁을 금지한 헌법에 위배된다” 며 고이즈미의 전쟁 노력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지난 10월 9일에는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자료센터(PARC), 아시아인권기금 등 28개 단체가 한국의 참여연대와 민중연대를 비롯한 319개 단체와 함께 전쟁 반대 공동선언을 하기도 했다. 반전 시위는 10월 7일과 8일에도 계속되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0월 11일 도쿄에서 4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반전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 노동자들은 도쿄 시내를 행진하면서 전쟁협력법안들의 국회 통과에 반대했다.
일본에서 반전 운동에 대한 공감대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런 본격적인 시위들이 벌어지기 전인 지난 9월 28일 실시된 〈아사히〉 신문의 여론 조사에서 자위대 파병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46퍼센트로 찬성 응답 42퍼센트를 웃돌았다. 아마도 이 수치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일본의 시민·사회 단체들은 얼마 전에 역사교과서 왜곡에 맞서 승리한 경험이 있다. 전쟁과 군국주의에 맞서는 운동이 더욱 확대된다면 이 야만적인 보복 전쟁을 더욱 빨리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