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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세계화 - 세계화 반대 운동 현황과 과제

세계화 반대운동 - 현황과 과제

장석준(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교육부장)

지난 9월 30일은 원래 워싱턴에서 IMF-세계은행 연례 총회가 열리기로 돼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이에 맞춰 미국과 세계의 진보세력이 세계화 반대 시위를 벌이기로 돼 있던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9월 11일의 테러 참사로 말미암아 9월 30일 행사는 무기한 연기됐고, 따라서 시위 계획도 무산됐다. 물론 테러 참사 자체가 세계화의 모순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어쨌든 테러 및 미국의 보복전쟁 움직임이 야기한 새로운 정세로 인해 ‘세계화 반대 운동’(Anti-Globalization Movement)은 전 세계적으로 상당 기간 동안 ‘전쟁 반대·미국 반대 운동’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테러 직후 많은 논평가들은 이 참사가 세계화 반대 운동의 일시적 쇠퇴를 낳을 것이라 보았지만, 지금 진행되는 반전·반미운동은 결코 운동의 후퇴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세계화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통해 세계화 반대 운동은 오히려 더욱 성숙하고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2년 만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둔 세계화 반대 운동

1999년 12월 시애틀 항쟁으로 세계화 반대 운동의 강력한 흐름이 시작된 지도 벌써 2년 가까이 되어 간다. 그 동안 IMF, 세계은행, 다보스포럼, G8회담, APEC, ASEM, 미주개발기구 등 세계화와 관련된 모든 국제기구의 회의 때마다 다양한 진보세력들이 참여한 국제 시위가 계속됐다. 스위스의 제네바, 미국의 워싱턴, 한국의 서울, 캐나다의 퀘벡,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프랑스의 니스, 체코의 프라하, 이탈리아의 제노바 등이 국제회의 자체보다는 오히려 이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떠들썩했다. 2년이라는 짧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세계화 반대 운동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국제회의가 있는 곳마다 노동조합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좌파 민족주의자, 급진종교세력의 ‘무지개’ 시위대가 등장하는 것이 세계인의 상식처럼 되었다. 노엄 촘스키, 수잔 조지, 월든 벨로, 나오미 클라인, 미셸 초수도프스키 등 세계화 반대 운동의 주요 논객들의 이름이 주류 언론에 오르내리고 그들의 책이 서점의 한 귀퉁이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제 세계화의 큰손들은 회의 한 번 열려면 아예 카타르 같이 시위대의 접근이 어렵고 사회운동이 발전하지 않은 외진 곳을 찾아다녀야 할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를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를 놓고 세계화 반대 운동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지난 7월의 제노아 G8회담 때 1명의 사망자를 내기까지 한 이탈리아 정부의 극히 폭력적인 대응을 마주하면서 운동의 질적인 도약에 대한 고민이 진전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이 진전될수록 세계화 반대 운동의 넓은 공동전선 안에 잠재한 차이와 긴장, 갈등도 더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세계화 반대 운동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세계화 반대 운동 하나만을 떼어놓고 보면 과거의 진보운동에 비해 꼭 발전했다고만 할 수는 없는 측면들이 있다. 광범한 사회운동의 공동전선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아직 그 공동전선 내의 중심 세력이 확고히 등장하지는 못했다. 노동계급 헤게모니를 중요시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념과 전략적 목표라는 측면에서도 여전히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지난 2년간 운동의 주요 목표는 ‘기업 주도의 세계화’(Corporate Globalization)였다. 그리고, 운동이 요구하는 대안은 ‘세계적 정의’(Global Justice)였다. 1997년 동아시아 위기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세계화의 모순이 현대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산물이며, 따라서 운동의 목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대안은 결국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사회, 즉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어떤 형태의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 반대 운동이 세계인에게 역사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이 운동이 지난 1989∼91년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최초로 진보운동 쪽에 반격의 기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가 세계 진보운동에 던져준 충격은 사뭇 비관적인 것이었다. 소련, 동유럽 사회에 대해 애당초부터 진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온 좌파 경향들조차도 세계적인 침체와 위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냉혹했다. 이런 상황은 1995년 12월 프랑스 공공부문 총파업을 필두로 한국,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주요 쟁점으로 한 총파업 투쟁이 벌어지면서 처음으로 흔들리는 조짐을 보였다. 노동계급이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 또한, 한때 각종 포스트주의의 창궐로 인해 ‘유럽 반동의 수도’라 불렸던 파리가 세계화 반대의 이론적·실천적 거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5월 영국의 신노동당 정부가 출범한 뒤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에 적녹연합 정부가 등장했다. 이들 유럽 중도좌파 정부의 이후 실적은 실망의 수준을 넘어 너무나 절망스러운 것이었지만, 아무튼 현실정치에서도 좌파가 썩은 시체만은 아니라는 게 일단 입증됐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벌어지면서 이데올로기 전선에서도 우파의 헤게모니가 도전받고 진보이념이 다시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우연치않게도 이는 《공산당 선언》 발간 150주년(1998년)과 겹쳐, 마르크스주의 르네상스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투쟁의 새로운 양상이 세계화 반대 운동이었던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들어 서서히 재생·성장한 각국의 노동자운동, 사회운동 세력, 그리고 세계화 비판을 통해 진보이념의 부활에 기여해온 논객들이 국제적 차원의 공동 실천으로 결집한 게 지난 2년간의 세계화 반대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많은 참여자들, 관찰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것은 이 운동이 전 세계의 이념적 평형추를 다시 한 번 크게 뒤바꿔놓았다는 것이다. 1991년 결정적으로 우경화했던 그 평형추는 이제 되돌이킬 수 없게 왼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시애틀, 워싱턴, 프라하, 니스, 제노아의 사건들은 세계인의 머리와 가슴 속에 그러한 방향 전환을 확실히 다지는 일련의 축제들이었다.

세계화 반대 운동 내의 차이와 갈등

그러나, 세계화 반대 운동 내의 동의는 대체로 여기까지만이다. 이 운동의 이후 전망에 대해서는 동의보다도 이견이 더 많다. 이 운동의 가장 오른쪽에는 1970년대 이후 지난 30여 년간 후퇴만을 거듭해온 서구의 노동조합운동이 존재한다. 또한, 사회민주주의의 우경화, 각종 포스트주의·자유주의의 침투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서구의 NGO들이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미국의 AFL-CIO 같은 경우는 세계화 반대 운동을 자국 노동자의 애국주의·보호무역주의 정서와 연관시킨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일부 논자들은 세계화 반대 운동을 제1세계 노동귀족과 제3세계 NGO 사이의 야합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게다가 세계화의 본거지 중 하나인 서유럽에서 이에 도전하는 데 실패하거나(프랑스), 도전 자체를 꺼리거나(독일), 더 나아가서는 우파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투항한(영국) 유럽 중도좌파 정부와의 관계 문제가 있다. 운동 내의 많은 세력은 이들 정부에 대해 분명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세계화 반대 운동을 이러한 주류 좌파정당에 대한 비판, 그리고 서구 좌파 정치세력을 새로이 형성해야 한다는 인식과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또한 적지 않은 세력이 여전히 중도좌파 정부들에 대한 기대, 그리고 종속적 협력관계의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운동의 왼쪽 경계에서도 문제는 존재한다. 제노바 시위 때 유혈참극이 벌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이탈리아 극우 정부의 야만적 폭력 때문이었지만, 일부 극단적 세력의 모험주의가 이에 빌미를 준 것도 사실이다. 흔히 ‘흑색 그룹’(Black Group)이라 불리는 무정부주의자들 중에 이런 흐름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던져주는 인물로는 이탈리아의 극좌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사상이 끼치는 해악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논의가 필요한데, 독자들은 《진보평론》 9호(2001년 여름호)에 실린 정성진 교수의 글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운동의 전망’을 참고하기 바란다.

세계화 반대 운동은 어디로?

세계화 반대 운동의 미래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흐름은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포르투갈, 브라질, 우루과이 등에 기반을 둔 ‘제4인터내셔널(Fourth International)’이나 영국의 ‘사회주의자 동맹(Socialist Alliance)’,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Scottish Socialist Party)’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제4인터내셔널은 특히 프랑스 조직인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을 중심으로 세계화 반대 운동의 광범한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 조직은 1995년 공공부문 총파업 이후 프랑스 사회 곳곳에서 부활한 사회운동들(노동조합 운동, 실업자 운동, 이주노동자 방어 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다진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유럽의회에까지 진출했다. 또한 사회당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과 손잡고 ATTAC(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이라는 국제적인 사회운동 조직을 건설했다. ATTAC은 이제 유럽 최대의 세계화 반대 운동 기구로 성장해 있으며, 조직의 주 목표인 토빈세 도입 외에도 세계화 반대 운동과 관련된 모든 쟁점에 대해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화 반대 운동의 공동전선을 유지·발전시키는 것뿐 아니라 운동 내의 이론적·실천적 중심을 새로이 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기업 주도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라는 모호하고 소극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반대라는 더 분명하고 적극적인 단계로의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하면 각국의 노동계급 운동을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복귀시킬 것인가 하는 실천적 고민으로 나타난다.

또한, 단순한 ‘반대’를 넘어 ‘대안’의 차원에까지, 즉,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사회주의 전망을 구체화하자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사실 대안에 대한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논의의 부재야말로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세계 진보운동의 가장 결정적인 후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안 논의의 재개를 위해 추진된 것이 올해 2월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1차 세계사회포럼인데, 이 회의의 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제4인터내셔널 경향이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비단 제4인터내셔널 경향의 사회주의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노동당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는 사회주의자 동맹,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 등도 세계화 반대 운동이 이렇게 ‘자본주의 반대 운동’으로, 더 나아가 ‘자본주의 극복 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선을 추구하는 유력한 진보 잡지로는 영국의 월간 시사지 〈붉은 고추 Red Pepper〉, 영국·캐나다에서 공동 편집되는 연간 이론지 〈사회주의 연감 Socialist Register〉, 미국의 〈월간 평론 Monthly Review〉 등이 주목된다. 또한, 대안 문제까지 논의를 확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논객들로는 영국의 힐라리 웨인라이트, 알렉스 캘리니코스, 캐나다의 레오 파니치, 그레고리 앨보, 샘 긴딘, 러시아의 보리스 까갈리쯔끼, 미국의 마이클 알버트 등이 있다. 세계화 반대 운동은 이제 성장의 한 매듭을 짓고 있다. 이 운동은 바야흐로 각국 노동계급 운동의 재생, 그리고 탈자본주의 대안 이념의 부활이라는 가장 첨예한 도전에 맞닥뜨려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는 물론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세력에게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