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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 규제를 철폐하라

출입국 규제 철폐하라

김은영

지난 10월 7일, 우리 나라로 밀입국하려던 중국 동포를 포함한 중국인 25명이 숨졌다. 이들은 환기구도 유리창도 없이 밀폐된 네 평 크기의 생선 보관 창고에 숨어 있다 질식사했다. 경찰은 간신히 살아 남은 중국인 35명이 한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체포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의 증언은 너무나 끔찍했다. 그들은 “중국 배에 있는 6일간은 아무것도 못 먹었고 한국 배에 옮겨 탄 뒤에도 먹은 거라곤 각자 밥 한 끼와 곰팡이 낀 빵 두 개뿐이었다.”고 증언했다. 또, 사망한 중국인들이 숨어 있던 생선 보관 창고 벽면은 그들이 죽기 직전까지 엄청난 고통 때문에 피가 나게 긁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는 숨진 이들을 바다에 버린 선장과 선원, 알선책을 “비인도적·반인륜적 범죄자”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은 김대중 정부이다. 최근 몇 달 동안 김대중 정부는 불법 체류자들을 악랄하게 단속했다. 지난 6월에는 11일 동안 무려 2천여 명이나 되는 이주 노동자들을 강제 출국시켰다. 실업과 노동 조건 악화에 대한 국내 노동자들의 불만을 이주 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사망한 이들은 김대중 정부가 행한 이주 노동자 정책의 희생자들이다. 작년에도 한 이주 노동자가 여객선 냉동실에 숨어 밀입국을 시도하다 숨진 일이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은 좀 더 나은 벌이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밀입국한다. 이번에 죽은 중국인들도 자식들의 학비 마련과 가난 때문에 이런 참사를 당한 것이다. 이들의 죽음은 정부가 이주 노동자들의 합법적인 노동을 제한하고 출입국을 규제해 온 결과이다. 만약 이주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드나들 수 있었더라면 이런 끔찍한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운이 좋아 ‘합법적으로’ 입국한 이주 노동자들 대부분은 합법적인 연수생 신분에서 이탈해 불법 체류자가 된다.(이주 노동자 30만여 명 중 20만 명이 넘는 수가 불법 체류자다.) 연수생이라는 빌미로 이주 노동자들에게 끔찍한 노동 조건을 강요하고 임금도 불법 체류자보다 적기 때문이다. 출입국 규제는 수많은 불법 체류자들을 양산해 낸다. ‘불법’이라는 딱지는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산업 재해를 당해도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충분한 보상과 치료를 받기 힘들다. 1998년부터 1년 반 동안 산재를 당해 사망한 이주 노동자 수는 52명에 달한다. 이 수치가 신고에 한한 노동부 통계임을 감안한다면,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또 일부 이주 노동자들은 잦은 임금체불로 자살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의 끔찍한 이주 노동자 정책은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 때문에 노동·시민단체들은 ‘연수생제도 폐지’와 ‘노동허가제 도입’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 절박한 요구들을 묵살했다.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은 국내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 때문에 일하기를 꺼리는 3D업종에 취업해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 나라 경제 성장에 크나큰 기여를 해 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주 노동자들의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지난 8월 19일, 정부는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연수취업제를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존의 2년 연수, 1년 취업의 연수취업제를 1년 연수, 2년 취업으로 바꾸는 ‘개선책’”은 말 그대로 조삼모사식 기만이다. 연수생 제도가 철폐되지 않고 노동허가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주 노동자들의 삶은 조금도 개선될 수 없다. 김대중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속임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밀입국 ‘범죄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6월, 김대중의 경찰은 이주 노동자들을 살인 용의자로 몰아 고문 수사를 벌였다. 그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성기를 노출시킨 후 혁대로 때리거나 손톱을 스테플러로 눌러 잡아 빼는 가혹행위를 했다. 또 작년 5월에는 몽골인 노동자를 신문하다 얼굴에 총을 쏘아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최근 법무부는 밀입국 알선자와 밀입국자에 대한 처벌과 벌금을 높였다. 정부는 매번 단속 강화를 외쳤지만, 불법 체류자들은 더 늘어났을 뿐이다. IMF이후 정부의 단속으로 국내 불법 체류자들이 10만여 명으로 줄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2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정부의 해결책은 이주 노동자들을 더욱 음지로 내몰고 참혹한 삶으로 이끌 것이다.

지난 10월 14일, ‘밀입국 중국인 사망자 추도집회’에 참석한 중국 동포들은 정부에 자유왕래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눈물어린 호소처럼, 정부는 모든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출입국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