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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의 ‘공황에 대한 이해’에 대한 논평

최일붕

〈다함께〉 5호(2001년 10월호)에 실린 ‘공황에 대한 이해’(김수행 교수)를 잘 봤다. 기본적으로 이 글은 한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경제가 왜 위기에 빠지는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 글 뒷부분에 있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한 설명은 부적절하다. 김수행 교수는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과 함께 이윤율이 상승하는 경향도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 높아지면서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하기 때문에 이윤율이 떨어지지만 다른 한편 생산성이 올라가서 원료와 기계의 값이 떨어지고 노동력 가치도 떨어지기 때문에 이윤율 저하를 상쇄한다고 주장한다. 다음의 글은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자본가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 대신 기계를 계속 도입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김수행 교수의 이런 설명은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은 투자된 자본이 생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생산성의 변화로 인해 가치의 변화를 겪는 것을 반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자본가가 올해 초에 불변자본 80과 가변자본 20을 투자하여 연말에 20의 잉여가치를 얻었다면 이 자본가의 이윤율은 20퍼센트다. 하지만 1년을 거치는 동안 불변자본(특히 기계)의 도덕적 마모와 생산성의 상승으로 그 가치는 연초의 가치만큼 되지 않을 것이다. 편리하게 말해서 연초에는 80이었던 불변자본이 연말에는 60으로 20만큼 가치가 줄었다고 생각해보자. 김수행 교수는 이 자본가의 이윤율이 20/(60+20)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윤율은 25퍼센트가 된다. 김수행 교수가 말하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경향이란 다름 아니라 생산성 향상으로 줄어든 불변자본 가치 때문에 이윤율이 늘어나는 것(20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을 의미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김수행 교수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이란 투하된 자본에 대한 잉여가치라고 봤기 때문에 설사 연말에 불변자본의 가치가 줄어든다 할지라도 이윤율은 20퍼센트다. 어떤 자본가가 신규 기계의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된다면 이전의 생산방식을 사용하는 자본가에 비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초과 이윤은 경쟁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경쟁은 체제 전체에 이윤율을 끌어 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경쟁 압력 때문에 다음해 초에는 자본가들이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비율을 80 대 20이 아니라 100 대 20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윤율이 20퍼센트에서 17퍼센트로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이윤율 상쇄 요인을 이윤율 저하와 대등한 하나의 경향으로 봐선 안 된다. 이렇게 보게 되면 자본주의가 상쇄 요인을 통해 위기를 자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하지만 상쇄 요인은 이윤율 저하 경향에 비해 항상 부차적이며, 이윤율 하락을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저하 경향 그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김어진의 ‘세계 경제는 공황으로 가는가’에 대한 논평

최일붕

‘세계경제는 공황으로 가는가’의 저자 김어진 씨는 위기에 빠진 세계 경제가 온갖 경기부양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급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저자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마도 관변 경제학자나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이 늘어놓는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너무 황당해 이에 대한 해독제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의 소단락 ‘단기적 처방들’에서 저자는 기업에 제공하는 세금 감면, 금리 인하, 각종 경기부양 정책들 모두가 실효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대안 부분에서는 “자본주의 위기는 종종 극단적 방식으로 해결됐다.”며 1929년의 대공황을 예로 들고 있다. 물론 저자가 “자본주의 위기는 자동 조절되기 마련”이라는 주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가 곧장 극단적 방식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사태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세계 경제 위기는 장기적이고 고질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 심화 정도가 1929년 대공황과 비슷한 수준은 아니었다. 1929년 대공황은 자본주의 체제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였다. 세계적으로 국내 총생산은 15퍼센트가 감소했고 경제 대국이었던 미국과 독일의 국내총생산도 각각 29.6퍼센트와 16.9퍼센트 감소했다. 노동자 세 명당 한 명이 실업자였다. 물론 저자도 지금 의 위기가 1929년 대공황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에 직면한 지배자들은 온갖 노력을 다해 위기가 빠른 속도로 심화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 물론, 저자의 지적처럼, 지배자들의 이런 노력이 위기의 원인을 제거하지도 위기로 빠지는 추세도 바꾸지 못한다. 저자가 놓치고 있는 점은 이런 노력마저 없었다면 위기는 훨씬 더 심화됐을 것이란 사실이다. 최근의 세계적 경제 위기에 직면해 대부분의 국가들은 케인즈주의적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그래서 친체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경제 위기가 죽은 케인즈를 살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1990년대에 세계 경제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는 것을 어느 정도 늦춘 것은 미국 경제의 부분적 호황이었다. 1990년대말부터 미국 경제조차 위기에 빠지면서 ‘○○발 세계공황’이라는 말이 며칠마다 하루씩 경제면의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국가가 세계공황에 빠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온갖 경기부양책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사라졌다는 주장을 펼치던 신자유주의자들이 이제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의 세계경제는 짤막하고 회복 같지 않은 회복과 함께 길고 힘든 불황·경기침체가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어떤 때는 서서히 또 어떤 때는 급속히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