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여성위의 민중가수 백자 보이콧 선동:
비판을 넘어 또 배척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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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노래패 ‘우리나라’ 소속 가수인 백자 씨(이하 존칭 생략)에 대한 보이콧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백자는 7월 2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나이스 쥴리’라는 신곡을 발표했다. 이 노래는 윤석열의 아내 김건희 씨가 과거 유흥업소 종사자 ‘쥴리’로 일했었다며, 김 씨가 서초동 법조계 사람들과 사귀더니 이제는 영부인이 되려 한다는 조롱을 담고 있다.
민주노총 여성위는 백자의 노래가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가르는 전형적인 이분법으로 여성혐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백자와 노래패 ‘우리나라’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사과와 반성이 없이는 무대에 설 수 없도록 할 것”을 민주노총과 민중운동 진영에 요구했다.
루머와 비하
백자의 ‘나이스 쥴리’는 루머를 퍼뜨리는 데 일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유흥업소 종사자에 대한 비하를 담은 노래다. 그런데 백자의 노래는 친문 진영 일부의 저열한 비방을 재생산한 것이다. 그들은 윤석열을 공격하는 데 ‘쥴리’ 루머를 이용하고 있다. 7월 29일 서울 종로구 한 서점에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벽화가 그려지고 그들이 이를 적극 옹호하고 나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쥴리’가 김건희 씨와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김 씨는 자신이 쥴리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만약 루머가 사실이 아니라면 문제의 친문 인자들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한 셈이 된다.
설사 루머가 사실이라 해도 김 씨의 과거는 윤석열의 정치 행보와 아무 관계 없다. 윤석열을 공격하고 싶으면 그의 정치와 실천을 비판하면 된다. 친문 진영이 별 관련성 없는 김 씨의 과거를 문제 삼는 건 야비하다. 사실상 진보 진영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그간 일부 친문 지지자들이 우파 정치 지지자들처럼 경쟁자 흠집내기를 위해서 온갖 중상도 서슴지 않아 온 걸 보면 이번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과거 이재명을 ‘불륜’이라고 공격했던 것도 한 사례다.
윤석열 같은 우파 정치인을 비판하더라도 천대 받는 사회집단에 대한 비하를 재생산하는 방식은 역겹다. 유흥업소 이력을 ‘문란’하다며 비난하는 건 자본주의에 의해 소외된 인간 실존에 대한 천박한 종류의 도덕주의일 뿐이다. 그리고 트로츠키의 지적처럼, 대중의 특정 집단을 비하해 나머지 부분과 이간시키는 것은 좌파가 채택할 수 있는 윤리적 수단이 아니다.
캔슬 컬처 또는 배척
하지만 민주노총 여성위가 자기 나름의 비판과 이의 제기를 넘어, 민주노총과 다른 민중단체들에 백자와 ‘우리나라’ 보이콧을 요구한 것은 과도하다.(여성위는 8.15 대회 일부 행사에 ‘우리나라’가 공연하기로 한 상황에서 이를 취소시키기 위해 성명을 낸 것으로 보인다.)
가사에 문제가 있는 노래를 불렀다고 아예 아무 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건 노래를 듣는 청중과 청취자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토론과 논쟁으로 설득할 문제이지, 보이콧을 통해 권위주의적 조처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말보다 힘을 앞세우는 것은 오히려 백자의 그 노래가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토론되기 어렵게 만든다.
사실상 이런 조처는 운동 내에서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주장이 나오면 일단 취소시키고 배제해 버리자는 것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과도한 측면을 보여 준다. ‘정치적 올바름’은 차별에 철저히 반대하자는 취지가 있지만, 도덕주의와 분열주의 때문에 종종 운동 내에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자아낸다.(관련 기사: 차별, 혐오, 정치적 올바름)
노동계급 대중은 물론이고, 활동가들도 차별받는 당사자의 눈과 귀에 거슬리는 언행을 할 수 있다. 이런 조심성 없는 태도에 대해 모두 행정 조처로 쳐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운동은 극도로 경직되고, 서로 껄끄럽고 심지어 반목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더욱이 민주노총 여성위는 다른 민중단체에게까지 보이콧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해당 민중단체도 문제 삼을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말이다.
이번 보이콧 요구 성명은 민주노총 여성위가 낸 것이지만, 어쨌든 민주노총의 기구가 냈다는 이유로 여러 민중단체에게는 압박으로 느껴질 것이다.
논란이 된 백자의 노래에 비판적인 사람들 중에도, 100만 명이 넘는 조합원을 거느리고 여러 연대체에서 목돈을 대는 민주노총의 영향력을 배경 삼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운동권 내에서 ‘완장질’을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사실 민주노총 여성위든 민주노총이든 친문 진영 일각이 ‘쥴리의 남자들’ 벽화를 그리거나 옹호해 정치권의 주요 쟁점이 됐을 때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반면, 한 자주파 정치단체에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백자에 대해선 곧장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는 민주노총 여성위 스스로 공정하지 못한 갑질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주요 공격 대상을 운동 내에서 찾는 민주노총 여성위의 내향적 접근법과 태도는 차별 반대 운동이 진정으로 겨냥해야 할 대상(자본주의 체제와 그 수혜자인 지배계급)을 헛갈리게 만든다.
운동 내의 잘못된 견해나 태도는 논쟁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다. 도덕주의와 갑질, 완장질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찍어내고 배척하는 것(노동자연대도 이런 일을 겪었다)은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낳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