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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거짓말 그리고 언론

전쟁, 거짓말 그리고 언론

김덕엽

미국의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후 조지 W 부시와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보도 자제 신사 협정을 맺었다. 부시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공격을 시작하면서 “국가 안보를 위해” 그리고 “미군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군사 작전에 대한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군이나 정보당국 관련 웹 사이트도 잠정 폐쇄했다.

부시 정부가 언론 통제를 하는 상황에서 언론은 정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 ‘진실’을 말하기는커녕 삼류 전쟁 소설을 쓰고 있다.

CNN의 조작

〈워싱턴 포스트〉의 미디어 비평 담당 기자인 조우얼 아헨바는 현재 언론의 모습을 이렇게 말했다. “미국 언론이 정확한 정보 없이 오보를 남발하고 있다. … 불행하게도 지금 미국은 계속되는 엄청난 혼란의 위기 속에 풍문과 그릇된 정보로 가득하다. 이럴 때 독자와 시청자가 따라야 할 첫번째 원칙은 [언론 보도를] ‘의심’하는 것”이다. 실제로, CNN은 테러 직후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환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CNN이 보도한 내용은 1991년 걸프전 당시의 것으로 드러났고, CNN도 나중에 이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CNN의 거짓말과 왜곡은 계속됐다. CNN은 테러 용의자들의 사진과 이름을 공개했는데, 공개한 용의자 중 한 명은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바로 그 시간에 플로리다에 있었다. 게다가 다른 한 명은 이미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언론의 왜곡과 거짓말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면 언론의 거짓말·조작·왜곡·검열·보도 통제는 극에 달한다.

1990년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영아들을 탈취했다는 기사는 이라크와의 전쟁 열기를 부추긴 결정적 사건이 됐다. 이 사건을 진술한 15살의 쿠웨이트 소녀는 쿠웨이트 병원 간호사가 아니라 다름 아닌 미국 주재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다. 언론은 쿠웨이트 왕가 전속 거대 광고 회사인 힐 앤 노튼에서 배운 그녀의 거짓말 연기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재갈 물리기

전쟁 몰이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특히,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나 부시를 비난하는 것은 모두 “비애국적이고 반역과 다름없는 짓”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테러 사건 이후 조지 W 부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자 몇 명이 해고당했다. 대학 교수 한 명은 징계 위협을 받았다. 한 기자는 테러 이후 부시가 “허둥지둥 도망갔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지난 20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와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방송하려다 국무부의 압력에 밀려 방송을 취소했다. “탈레반 지도자의 주장을 내 보내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최근에는 미국의 주요 5대 방송망인 NBC, CBS, ABC, CNN, 폭스의 고위 이사들이 백악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라덴과 알 카에다와 관련된 방송 보도에 대해 “신중을 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CNN은 “직접적인 폭력을 조장하는 어떤 내용도 방송하지 않을 것”이라며 알아서 기었다. 보도 내용에는 빈 라덴과 알 카에다 대변인 슐라이만 아부 가이트가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의 언론인들은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에 대한 전쟁 선포가 아니라, 언론 자유에 대한 전쟁 선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취재 자체를 통제하는 것도 다반사다. 기자들이 바레인에서 이번 군사작전에 참여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에 탑승했을 때, 지휘관들은 기자들에게 작전 내용에 대해 철저한 보안을 요구했으며 작전 수행 전에 조종사들과 대화하는 것도 금지했다.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1차 공격에 나선 항공기들이 모두 귀환할 때까지 기사 송고를 막았다.

아버지 부시가 걸프전을 수행하면서 언론을 통제한 것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버지 부시가 1989년 12월 파나마를 침공했을 때 언론은 미군 사상자를 취재할 수 없었다. 1983년 레이건의 그레나다 침공 때도 언론은 사흘 동안이나 취재 허가를 얻지 못했다. 파나마 침공 당시 기자단은 침공이 있은 지 5시간 이상이나 파나마 입국이 허용되지 않았고, 현지에 들어가서도 몇 시간 동안 미군 기지에 발이 묶였다. 아들 부시도 전투 취재를 엄격하게 규제했다. 특히 TV 방송국들은 미군이 촬영한 관제 비디오 테이프를 방송에 내보냈다. 부시의 언론 통제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행정부는 중동과 아시아 지역의 언론이 반미 감정을 달래는 기사로 내보내고 ‘테러와의 전쟁’을 긍정적으로 다루도록 유도했다. 파키스탄 주재 미국 대사관 홍보책임자가 파키스탄 공보부 책임자와 만난 직후, 관영 파키스탄 라디오는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보도의 핵심적 내용은 미국 국무부의 발표를 토대로 한 기사를 18건이나 보도했다. 그것은 빈 라덴의 테러 개입과 아프가니스탄 피난민들에 대한 미국의 인도적 지원이다. 또, 콜린 파월은 카타르의 인기 방송국 알 자지라에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를 완화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국제언론연구소(IPI)조차 콜린 파월 앞으로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이번 전쟁에서도 언론 보도는 군 당국이 제공한 기자 회견문과 테이프로 채워졌다. 전문가 의견의 대부분은 군사 전략가나 펜타곤 대변인 또는 전쟁 옹호론자의 자문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일반인 정보원을 통한 기사의 경우도 전쟁을 찬성하는 일반인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CNN과 영국의 공중파 텔레비전 전쟁 보도의 절반 이상은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스커드 미사일 폭격 영상만이 실제로 ‘생방송’됐다.

외면

언론 통제는 전쟁이 생명을 구하기는커녕 수천, 수만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다는 진실을 숨기는 구실을 해 왔다. 언론은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는 보도를 자제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

뉴스 보도의 3퍼센트만이 ‘인명 살상의 견지에서 본 전투 행위의 결과’였고 텔레비전 영상 이미지의 단 1퍼센트만이 ‘죽음과 상해’에 대한 것이었다. 펜타곤은 전쟁에서 ‘피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한다. 1991년 1∼2월의 2차 걸프전 당시 미국의 바스라 시가지 폭격으로 숯으로 변해 버린 한 이라크인의 시체를 찍은 사진은 전쟁이 끝난 뒤에야 공개될 수 있었다.

정작 전쟁의 진실을 알린 것은 반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베트남 전쟁 동안에 정부의 거짓말이 계속되고 언론도 정부의 공식 발표 이상을 좀처럼 넘지 않으려 하자,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병사들은 전국 도처의 군 기지에서 자신들의 신문을 만들었다. 1970년 무렵 이런 종류의 신문은 50종에 달했다. 그리고 반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학 캠퍼스들에서 열린 반전 토론회, 대안 신문, 집회, 피켓 시위, 데모, 청원, 신문 광고, 벽낙서 등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을 만들었다. 언론 자유가 가장 필요한 때는 전쟁 때이다. 우리에게는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고통과 전쟁의 진실을 알리는 언론이 필요하다. 《다함께》는 바로 그런 언론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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