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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를 배웁시다 - 전쟁에 대한 사회 변혁가들의 태도

전쟁에 대한 사회 변혁가들의 태도

부시의 폭격과 그것이 빚고 있는 끔찍한 결과들은 21세기가 지난 세기가 시작됐을 때의 모습 ― 전쟁으로 점철된 모습 ― 그대로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1세기는 평화와 번영의 신새벽에 관한 세계 제국 지도자들의 약속과 함께 시작됐다.

그러나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야만을 목격하고 있다. 지난 1백 년 내내 우리는 전쟁으로 보통의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불구자가 되고 정신이 파괴당하는 것을 봐 왔다. 전쟁의 부산물 ― 질병, 굶주림, 대규모 피난 ― 때문에도 수백만 명이 죽었다.

매번 세계의 열강과 언론의 전쟁광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숭고하다고 설명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쟁이 독재와 악에 맞서고 민주주의와 해방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왔다. 전쟁의 이유는 시기에 따라 바뀌어 왔다. 그러나 열강은 매번 전쟁의 진짜 동기 ― 지구를 분할해 이윤을 얻기 위한 세계 지배자들의 권력과 지배 ― 를 가리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전쟁 때마다 각국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보통의 노동계급 병사들을 보내 자기들을 대신해서 죽게 했다.

전쟁의 원인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호전적인 사회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끌던 대군도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수에는 훨씬 못 미친다. 중세의 십자군이 사용했던 어떤 무기도 일주일 안에 할 수 없었던 일을 현대의 폭탄은 단 몇 초만에 끝내 버릴 수 있다. 자본주의는 피를 뚝뚝 흘리며 태어났고, 나이를 먹을수록 대량 학살에 대한 욕구도 점점 더 커졌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식민지, 금, 노예, 석유, 아편, 값싼 노동력, “전략적 이점” 등을 위해 전쟁을 낳았다. 전쟁은 단지 지배자들의 개인적 야망과 탐욕의 산물이 아니다. 자본가들은 그들 사이의 경쟁 때문에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의 동력인 경쟁, 곧 생산 시설과 은행과 운송 수단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빨리 축적하려는 동기가 전쟁의 진정한 원인이다. 이것은 평화스런 과정이 아니다. 경쟁자들이 파산하고 살아 남은 기업들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발전을 위해 국가와 군사 기구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19세기 말이 되자 자본주의적 경쟁이 일차적으로 경제 경쟁으로 표현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가장 강력한 지배계급들이 영향력 확대와 시장과 식민지 지배를 놓고 서로 다투게 됨에 따라, 경쟁에는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까지 필요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체제를 제국주의라 부른다. 세계가 경쟁하는 열강 사이에서 분할·재분할되면서 제국주의가 20세기의 운명을 지배해 왔다.

야만의 시대

20세기는 역사상 가장 유혈낭자했던 시기다. 자본주의는 시장과 자원을 위한 경쟁과 나란히 살인 기술과 무기를 엄청난 규모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산업이 발달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량파괴 무기들이 이제 수백만 명을 살상했다. 탱크와 기관총, 독가스와 전투기가 등장함으로써 사망자의 대다수가 질병이 아니라 상대국 병사들의 손에 희생되었다. 이것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처음 나타난 현상이었다. 1914∼1918년간에 벌어졌던 제1차세계대전은 식민지를 쟁탈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영국은 세계의 3분의 1을 지배했고,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의 절반을 지배했다.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 지배계급은 식민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더 가지기를 원했다. 영국 정부는 죄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끔찍한 참사가 자행되고 있다고 보통의 사람들을 납득시킬 때만 그들의 전쟁을 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국 정부는 독일 지배계급과 군대를 악마로 보이게 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다. 언론은 독일 병사들이 벨기에에서 수녀들을 강간하고 어린이들의 손발을 잘랐다는 거짓말을 했다. 주미 영국 대사를 지낸 적이 있었던 브라이스 경이 이끄는 변호사와 “역사가”들의 위원회는 당시 이렇게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3백 년 동안 문명 국가들 사이의 어떤 전쟁도 규모 면에서 벨기에의 대부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정욕·약탈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었다.

나중의 조사는 단 한 가지의 일화도 입증할 수 없었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이러한 사건들을 목격하지 못한 익명의 벨기에 난민들의 진술과 내무부에서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서류들에 근거하고 있었다. 동시에 영국 정부는 죽은 부대의 사진들, 패배와 참호의 현실에 관한 뉴스들을 검열했다. 제1차세계대전으로 1천만 명이 죽었다.

승리한 열강 ─ 영국·프랑스·미국 ─ 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선언했다. 그들은 제1차세계대전이 전쟁 자체를 없애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무렵에 주요 열강은 몸의 먼지를 털어낸 뒤 이내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세계 강대국들의 경제적 경쟁을 강화했다. 20년만에 세계는 1939∼1945년간에 벌어진 제2차세계대전으로 다시 한 번, 이번에는 훨씬 더 큰 규모로 갈갈이 찢겼다. 오늘날 제2차세계대전은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 독재에 대항한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의 병사들은 정말로 히틀러와 나찌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 전쟁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의 지배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영국 지배계급은 특히 중동과 극동에서 영국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싸웠다. 미국은 영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열강이 되고자 했고, 태평양을 두고 벌인 일본 지배계급과의 경쟁에서 싸워 이기고자 했다. 일본 지배자들은 석유 공급을 위해 인도네시아, 말레이 반도, 동남 아시아를 식민지로 삼고자 했다.

2차대전의 결과 5천만 명이 죽었다. 열강이 나찌를 물리치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왜 그들은 가스실로 가는 철도를 폭파하지 않았는가? 왜 그들은 유대인들이 히틀러를 피해 다른 유럽 나라들로 피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제2차세계대전의 종말을 이룬 사건들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패색이 짙은 일본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막 항복할 찰나였음을 알고 있었다.

냉전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은 냉전기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옛 소련과 서방의 경쟁은 더 많은 전쟁을 불렀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지 5년만에 한국에서 전쟁이 터졌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말했고, 좌파에 속하는 인물은 가리지 않고 마녀사냥하는 맥카시 시대로 들어갔다. 한국전쟁은 실제로는 미국과 소련이 냉전 과정에서 북한과 남한 민중 모두를 희생시켜 가면서 벌인 한 차례의 피어린 열전이었다. 미국은 한국에서 융단 폭격과 화학무기인 네이팜 탄을 사용했다. 2백만 명 가량의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10만 명의 고아가 생겨났다. 처음에 군사 당국은 검열 도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래서 동요하고 있던 한 미군 병사의 다음과 같은 말이 보도됐다.

당신네 기자들은 고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싸워야 할 적이 없다는 것, 이 전쟁은 완전히 무의미한 전쟁이라는 것을 당신네들은 말하고 있습니까?

군부는 유엔 사령관들이 내린 결정이나 연합군 병사들이 전장에서 자행한 행위들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것으로 신속하게 전환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다시금 미국은 그 전쟁이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민간인들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문명”의 이름으로 제2차세계대전기를 통틀어 사용한 것보다도 더 많은 폭탄을 베트남에 떨어뜨렸다. 미국은 베트남 민간인들에게 폭탄을 퍼부었고 들과 마을에 네이팜탄과 고엽제를 뿌려댔다. 베트남에서 1백만 명이 죽었다. 미국이 캄보디아로 전쟁을 확대하면서 또다시 1백만 명이 죽었다. 약 5만 5천 명의 미군이 죽었다.

신세계?

1989년에 냉전이 끝나자 서방 지도자들은 다시 진보와 평화의 신세계를 약속했다. 그러나 1년 만에 그들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새로운 히틀러”라고 선언했다. 언론은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쿠웨이트에서 비행기 여승무원을 강간하고 병원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들을 찢어 죽였다는 일화들을 토해 냈다. 오직 한줌의 사람들만이 이런 일화들에 의문을 제기했다. 나중에 그 모두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진짜 어린이들이 죽는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어린이들은 연합군의 폭격 때문에 죽었다. 최근 유엔은 경제 제재로 매달 6천 명의 이라크인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인정했다. 아기들이 영양실조로 죽고 있고 노인들과 병자들을 돌볼 수 없고 노숙자들과 빈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동안 자원은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군수산업에 낭비되고 있다. 20세기에는 끔찍한 순환이 반복돼 왔다. 그리고 21세기에 그 야만의 순환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거짓말로 이어지고 있다. 매번 세계의 통치자들과 언론은 학살을 변명하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이 지나면 흔히 그 때의 학살을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 대부분의 정치인, 역사가, 군 장성 들은 제1차세계대전이 무의미했다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을 옹호하는 사람은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1991년 제2차 걸프 전쟁이 석유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에 정부와 언론은 그러한 전쟁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전쟁 열기를 부채질했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투쟁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뒤에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지금 당장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전쟁의 끔찍한 순환에는 또 다른 측면도 있다. 매번 정부와 언론은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을 영웅으로 추켜 세웠지만 일단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야멸차게 버렸다.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수많은 병사들이 참호에서 돌아와 실업자가 되거나 거리에서 구걸하는 신세가 됐다. 베트남 전쟁의 예비역 병사들은 헐어빠진 병원에서 점점 쇠약해져 가는 신세로 방치됐다. 오늘날에는 제2차 걸프 전쟁 증후군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무시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전쟁을 낳는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전쟁에 대한 혐오도 낳는다. 전쟁은 초기에 더러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전쟁의 비극적 참상은 결국은 사회 내의 모든 계급 갈등을 격화시키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형편없는 임금에 반대하는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사병들은 적진의 병사들을 친구이자 동맹자로 보고, 더 많은 죽음을 요구하는 정부와 장교들을 자신들의 공통의 적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바로 그래서 전쟁은 흔히 거대한 사회 변혁으로 이어지곤 한다. 제1차세계대전은 1917년의 위대한 러시아 혁명을 탄생시켰다. 게다가 1차대전을 실제로 끝장낸 것은 1918∼19년의 독일 혁명이었다. 1905년의 제1차 러시아 혁명은 러일전쟁이 초래한 위기 때문에 터졌다. 그리고 2차대전에 뒤이어 유럽과 아시아 전체에서 반란이 물밀 듯이 일어났고, 세계 전역에 파병된 수십만 사병들 사이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군 사병들의 불만이 엄청났다. 전쟁 막바지에는 베트남군 손에 죽은 미군 장교의 숫자보다 사병들 손에 죽은 장교의 숫자가 더 많은 실정이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베트남 전쟁은 한 세대를 급진화시켰다. 또, 베트남 전쟁기간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의 거대한 반전 시위와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이 거둔 승리는 미 제국주의를 20년 동안이나 크게 약화시켰다. 미국 지배자들은 함부로 다른 나라를 침범할 수 없었다. 베트남전에서 세계 최대 열강인 미국을 패배시킨 영웅적 희생이 니카라과나 이란과 같은 다른 제3세계 국가의 수만의 목숨을 구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의 야만적인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야 하지만, 그러한 반대를 전쟁을 낳는 체제와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그리고 전쟁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투쟁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모든 힘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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