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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협상 결과에 실망해야 하는가?

일부 반신자유주의 활동가들은 이번 WTO 협상 결과를 보고 실의에 빠졌다. 사실, 협상 문구만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첫째, 선진국들이 2013년까지 수출보조금을 전면 폐지하기로 했고, 대다수 언론들은 이것이 개발도상국 농민들을 위한 커다란 진전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수출 보조금보다 훨씬 규모가 큰 국내 보조금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둘째, GATS 협상에서 “상대적으로 유연한” 양허안 제출 방식이 아니라, “복수국간(plurilateral)” 방식이 채택됐다. 이 방식의 골자는 싫더라도 서비스 시장 개방 협상에 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NAMA(비농산품협정)에서는 관세 인하 방식으로 “스위스 공식”이 채택됐다. 이것은 기존 관세가 높을수록 많이 인하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선진국보다는 개도국들이 국내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가 높기 때문에 이것은 개도국들에게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다.

이런 자구만을 보면 우리는 패배한 것 같다. 하지만 도하협상이 종결된 것이 아니다. 이번에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브라질과 인도가 양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협상에서 1999년과 2003년처럼 지배자들 간 갈등이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또, 이번 반 WTO 시위의 의의를 협소하게 WTO 협상안 문구에 따라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맥락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약 3천여 명의 국제 시위대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불모지인 홍콩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 얼마 전에 한 홍콩 신문이 ‘2005년 홍콩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조사했을 때, ‘반 WTO 시위대’가 2위를 차지했다(1위는 홍콩 경찰이었는데 이것은 시위대가 1등을 할까 봐 경찰이 일가친척들을 동원한 덕분이었음이 폭로됐다).

세계적 세력균형에서 우리가 중요한 패배를 겪은 것도 아니다. 볼리비아에서 좌파 대통령 후보가 당선했고, 미국에서는 부시 정부의 도청사건이 폭로됐다. WTO 협상 개최 불과 일주일 전에 세계 반전운동은 올해 3월 18∼19일에 세계적 공동행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마지막으로, WTO 문구를 만드는 것과 각국에 ‘성공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제 투쟁이 국내 전선으로 옮겨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