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은 왜 7차 교육과정안을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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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왜 7차 교육과정안을 반대하는가
김성보
교사들은 7차 교육과정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 시장화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은 교육을 바라보는 근본 철학의 변화와 함께 교육내용, 교원 등 공교육의 구조가 완전히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7차 교육과정은 ‘7차 체제(system)’라고 불러야 한다.
7차 체제는 불평등 교육이다
7차 체제는 그나마 미약했던 ‘교육 복지’를 축소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재정은 1997년 GDP 대비 4.4퍼센트에서 1998년 4.3퍼센트, 1999년 4.2퍼센트, 2000년 4.1퍼센트로 계속 감소해 왔다. 교육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7차 체제에서는 교육이 ‘소비자 주권’이라 말한다. 소비자 주권은 학부모의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상품의 질이 달라지는 권리일 뿐이다. 결국 7차 체제는 부자집 학생의 선택권만을 보장하며 구매력이 없는 노동자 서민의 자녀는 ‘똥통 학교’에 버리는 것이다. 귀족학교인 ‘자립형 사립학교’에 다니려면 1년에 1천만 원 이상의 수업료를 내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농어촌 학교와 실업계 학교는 ‘똥통 학교’로 전락한다. 7차 교육과정은 10학년(고1)까지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이다. 대부분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1, 2학년 때 집중적으로 실업계 과목을 배워 자격증을 따고 3학년이 되면 연수생으로 취직하는 현실을 볼 때, 1년 동안 실업계 과목을 배우지 못한다면 실업계 고등학교는 유명무실해진다. 학교 자원과 교사가 부족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보장할 수 없는 농어촌 학교도 7차 체제에서는 꼴찌 학교로 밀려난다. 6차 교육과정에서도 실업계와 농어촌 학교의 어려움은 존재했다. 그래도 6차 과정에서는 소외되기 쉬운 지역의 학교에도 재정이 투입됐다. 하지만, 7차 과정에서는 ‘학교의 자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교육 재정의 차별 지급이 정당화된다. 학교 서열화는 사설모의고사가 폐지되고 정부 기관인 교육평가원이 주관하는 ‘학업 성취도 평가’를 실시함에 따라 가속된다. 전국에서 단일한 시험을 보기 때문에 학생들의 전국적인 서열이 생기며, 이에 따라 각 학교의 서열도 생긴다. 학업 성취도 평가의 결과에 따라 학교 예산을 차등 지급하는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7차 체제의 비극적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연속으로 꼴찌를 하는 학교들은 예산이 부족하게 돼 학교 운영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폐교를 선택한다. 그러면 폐교된 학교의 학생들은 주변 학교에 전입해야 하지만, 성취도 평가 점수 하락을 우려하는 주변 학교의 교장들이 폐교된 학교의 학생 수용을 기피함에 따라 매년 5만 명의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의 대부분은 못 사는 지역 노동자 서민의 자녀들이다. 교장들은 학교 예산 확보를 위해 기업들의 기부금에 의존한다. 어느 담배 회사의 경우 기부금의 조건으로 학교의 금연 교육을 모두 폐지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우리 나라의 7차 체제가 본보기로 삼고 있는 영국의 모습이다. 교사들은 우리 나라에서도 맥도널드 포스터를 교실 환경 미화에 사용해야 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개탄한다.
7차 체제는 학생 중심 교육 과정이 아니다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 시절에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 간다’는 말이 유행했다.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들은 개개인의 특기, 적성, 소질이 인정받는 사회가 오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영수’가 입시의 당락을 결정한다. 7차 체제는 지금 세계가 ‘지식 기반 사회’라고 말한다.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예술, 인성, 특기, 적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식이 중요하다고 한다. 7차 체제의 교육 내용은 매우 어려워졌다. 학생들은 지식을 중시하는 7차 체제 아래서 특기와 적성을 억압당한 채 고통받을 것이다. 학부모들은 대폭 상승하는 학비를 대기 위해 고통받을 것이다.
교육부가 힘을 싣고 있는 수능 개편 시안은 수능Ⅰ과 수능Ⅱ로 이뤄져 있다. 수능Ⅰ은 공통10학년 과정에서 국영수 등 기본 과목만 검사하고, 수능Ⅱ는 선택과정에서 진학 예정 대학이 지정하는 과목을 검사하는 것이다. 서울대의 안을 보면 대부분 국영수 중심으로 성적 반영 과목을 지정하고 있다. 다른 대학도 학생들이 국영수를 선택하도록 지정할 것이다.
결국 학생 중심으로 과목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가 과목을 선택하면, 그에 따라 학생이 과목을 개설하는 고등학교를 선택하고, 학교는 해당 과목 교사를 선택하게 된다. 학교는 입시 학원이 되고, 교사는 쪽집게 강사가 돼야 하며, 학생은 국영수 과목 중심의 입시 경쟁에 시달린다.
이런 교육 과정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학생 중심’일 수 있는가?
7차 체제는 교원 구조조정이다교육부는 “교육과정 운영의 탄력성, 융통성은 교사 수급의 유연화 정책의 지원 하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기간제 교사, 파트 타임 교사를 활용하는 것이 기존의 정규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축소”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도 한다. 교사들은 비정규직의 증가가 업무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다.
7차 체제에서는 국영수 과목 교사가 많이 필요하고, 기타 과목 교사는 조금 필요하거나 오히려 축소돼야 한다. 교육청이 각 학교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교사가 축소돼야 하는 과원 예상 과목은 독일어·프랑스어·중국어·스페인어·가정·미술·윤리·지구과학·물리·화학·교련·상업 등이다. 이들 과목 교사에게는 부전공 연수를 장려해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니며 수업하는 순회 교사나 둘 이상의 과목을 담당하는 겸임 교사가 되라고 권유한다. 7차 체제는 과원인 중등 교사가 보충 연수를 받고 급조된 자격증을 받아 초등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학생을 가르칠 곳이 없다면, 그냥 교무실에서 행정업무만 담당하는 교사가 될 수도 있다. 전문성을 박탈당한 채 부서 이동하는 것이 해고의 직전 단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국영수 과목 교사도 신분이 불안하기는 과원 과목 교사와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완상 교육부총리는 교원 자격증이 없는 일반 석박사도 교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고 있으며, 이 제도가 마련되면 석박사 실업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범대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교사를 하지 못하는 마당에 석박사 실업 문제를 중고등학교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연봉 계약제로 들어올 그들과 경쟁하는 것은 정규직 교사의 신분을 불안하게 한다.
정부는 교사들에게 성과 상여금을 지급하려 했다. 공무원은 임금의 절반 이상이 수당으로 채워진다. 따라서 수당을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것은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과 같다. 교사들은 성과급이 교직 사회의 분열과 잡무에 대한 경쟁심만 남겼다고 말한다. 학생에 대한 사랑보다 윗사람에 대한 충성으로 평가하기 쉬운 성과급이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한 마디로 말해, 7차 체제는 ‘교육 붕괴’다. 교육재정은 축소되고, 학생들은 인성을 무시당한 채 지식 중심의 입시 경쟁으로 내몰리며, 학부모는 높은 학비 부담에 시달리고, 교사는 구조조정 압력에 짓눌린다. 거리로 나서서 싸우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겠는가? 교육 불평등과 교육 복지 축소를 반대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무너지는 공교육을 바로 잡기 위한 교사들의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