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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한총련의 경찰첩자(혐의자) 구타치사 사건을 계기로 다시 생각해 본다:
마르크스주의자는 폭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이 글은 필자가 1997년 7월 3일 다른 매체에 기고한 글이다.

김영삼과 사장들의 매스 미디어가 한총련 죽이기에 광분하고 있는 지금, 마치 먹이를 만난 하이에나처럼 기회주의자들도 한총련을 물어뜯고 있다.

물론 기회주의자들의 모든 주장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두세 가지 단편적인 주장들은 동의할 만하다. 그러나 그들의 전반적인 논조 자체가 방향이 잘못 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올바른 특정 주장들은 그동안 한총련을 성심껏 지지해 왔던 혁명적 투사들을 설득할 수 없다.

기회주의자들의 한총련 비판은 단지 망원(또는 그 혐의자) 구타치사 사건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전투성과 폭력이라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말》에 기고한 전대협·한총련 방북대표 박성희 씨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우리 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올바르게 지적하면서도, 한총련의 김영삼 퇴진 요구가 김 정권의 부르주아적 합법성 때문에 비현실적이고 주관적인 오류라고 주장한다.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노태우와 같이 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정권이 아니며, 선거를 통한 대중의 합법적 승인이라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갖고 있는 정권입니다.”

그러나, 이석 씨 사망 열흘 전인 5월 27일 민교협은 공식 성명서를 통해 김영삼의 퇴진을 요구했고, 전국연합도 그때쯤엔 그 요구를 지지하고 있었다. 서유럽 의회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도 여러 차례 노동자 운동은 선거로 뽑힌 정부를 무너뜨렸고, 미국 대통령 닉슨도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퇴진당했다.

개인(들)에 대한 개인(들)의 폭력과 체제에 대한 대중의 폭력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한다. “기회주의자들은 인간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엄숙히 선언하는 부와 권력에 매수된 도덕주의자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상적 도덕론은 검찰·경찰·법원·군대 등을 비롯한 국가 기관들 전체가 자본가 계급의 제도화된 폭력에 지나지 않는 마당에 온갖 도덕을 들먹이며 분개하는 지배자들의 위선에 동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폭력적인 언론·출판·결사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고, 집회와 시위 그리고 파업을 탄압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경찰 폭력을 고무하고, 스팅어 미사일 등 살상무기 구매를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낭비하고, 하루에도 7~8명씩 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을 죽이는 자들이 학생들의 폭력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로 메스껍고 역겹다.

지배계급은 자신의 대중매체들을 통해 화염병 투척 학생들은 잔인한 괴물들이고 그들이 내세우는 목적은 저주받아 마땅하다며, 학생들이 나날이 겪고 있는 너무나도 절박한 소외와 억압의 고통을 퇴색시켜 버리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감정적인 흑색선전을 대대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기회주의자들이 지배자들의 신경질적인 위선에 비겁하게 굴종하는 것이 정떨어지는 일이라면, 단순한 급진주의자들의 무비판적인 한총련 변호는 그보다는 듣기가 훨씬 더 낫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경찰 첩자에 대한 폭행치사는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단순한 우발적·감정적 사건으로서, 순전히 김영삼 정권에게 책임이 있는 일이지 한총련은 책임이 없으며,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이 한총련을 비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판을 한다 하더라도 김영삼 정권이 한총련에 대한 마녀사냥을 자행하고 있는 지금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판이 누구에게 득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급진주의는 비굴한 투항주의에 대한 건강한 반발로, 전투성과 투쟁정신의 발로이긴 하지만, 폭력에 대한 감정적이지 않은 냉철한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경찰 첩자에 대한 증오심은 진지한 투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모든 폭행이 그렇듯이 사망 또는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적에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신나는 행사를 허용하고, 경찰이 이전보다도 더 야만적이고 뻔뻔스럽게 행동하도록 만들 뿐이다.

배신자와 첩자에 대한 우리의 증오심이 아무리 커도 개인에 대한 복수가 그것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런 쓰레기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뱉어내는 수많은 오물들의 단지 일부 ─ 그것도 매우 적은 일부 ─ 일 뿐으로, 체제 자체를 깨끗이 청소함으로써만 더 이상 배출되지 않는 체제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소각장을 없애지 않고 다이옥신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폭력은 필요악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노동자 권력과, 강제력에 의한 자본주의 전복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우리는 국제 노동계급이 자신을 억압하는 지배계급들에 맞서 혁명과 내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항상 주장해 왔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이 없는, 계급 없고 국가 없는 사회라는 점 또한 분명히 해왔다.

기회주의자들은 이 때문에 우리를 이상주의자 또는 심지어 ‘공상주의자’, ‘몽상가’ 따위로 여기고 있다. 사회와 개인들 사이의, 그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데 더 이상 폭력이 영구적으로 필요하지 않게 되도록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은 이처럼 기회주의자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비폭력적 사회라는 비전을 수용하는 데서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비폭력주의보다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갔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는 폭력의 근원을 밝혀낸 데 반해 비폭력주의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르크스주의는 폭력의 근원을 공격한다. 단지 인간의 사상과 감정으로부터 폭력을 근절하려 한 것이 아니라 사회 물질 생활의 토대로부터 폭력을 근절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폭력이 사회의 계급 적대에서 자양분을 얻고 있음을 알고 있다.

몇 천 년 동안 종교가 자비와 이웃 사랑을 설교해 왔지만, 종교는 폭력을 조금치도 감소시키지 못했다. 종교는 미국의 크리스천들이 베트남의 농민을 네이팜 탄으로 태워 죽이고 걸프의 바그다드 시민들을 스텔스 헬기로 학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또, 종교는 보스니아에서 인종 청소를 저지하지 못했으며, 크리스천인 나치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 집어넣는 것을 저지하지도 못했다. 밀레니엄(1천 년)이 벌써 두 번 지나가고 있지만, 비폭력주의가 낳은 결과는 고작 이것이었다.

그 이유는 폭력의 뿌리가 결코 파헤쳐지지 않았고 공격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급 사회의 존속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비폭력주의 설교가 단지 폭력의 표면만을 공격함으로 말미암아 비폭력주의는 쓸모없을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비폭력을 꿈꿔 왔다. 이 점이 의심스럽다면 레닌의 국가론 관련 저작들을 한번 훑어보라. 러시아의 1917년 10월 봉기는 당시 페트로그라드 주재 서방측 대사들의 적대적인 증언에 따르더라도 희생자는 모두 합쳐 열 명밖에 안 됐다.

이 봉기를 지도한 레닌과 트로츠키(당시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는 불필요한 인명살상이 없도록 최대한 주의하라고 적위대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정부청사 공격에 앞서 트로츠키는 수도방위사령부 사병들에게 선동 연설을 먼저 한다. (이 장면은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에 묘사돼 있다.)

러시아 혁명은 총이 아니라 말로, 주장과 설득으로 승리했던 것이다. 말은 매우 과격했고 격렬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폭력에 ─ 더구나 거의 1천만의 인명을 앗아가고 있던 세계대전에 ─ 맞선 감정의 폭력, 언어의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1천만 명 대 열 명, 정말이지 새 발의 피였다.

휴머니즘은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 혁명의 본질적인 요소였다. 소위 ‘폭력 혁명’은 비폭력 사회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었다. 반대편에서 피억압 민중을 향하여 비폭력을 설교했던 케렌스키는 전선에서 전투를 거부하는 사병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혁명 후 러시아에는 내전이 도래했다. 폭력 사용이 증대했다. 하지만 이 때조차도 볼셰비키는 폭력보다 주장·설득에 의존하려 애썼다. 트로츠키가 이끄는 적군은 훨씬 우세한 화력을 가진 영국·프랑스·미국 등 14개 외국 군대와 이들의 지원을 받는 백군에 맞서 사병들의 의식에 호소했다. 트로츠키의 선동 연설을 들은 오데사 주둔 프랑스 해군 사병들은 볼셰비키에 맞서 싸우기를 거부했다. 폭력을 예방한 비폭력의 승리였다.

서구, 특히 독일 혁명의 패배로 러시아 혁명이 고립되자 러시아 민중은 주장·설득과 폭력 사이에서 점점 균형을 잃어 갔다. 스탈린주의 관료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휴머니즘적·해방적 요소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점진적 국가 사멸 이론(무계급·무국가 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 국가인 노동자 국가는 점점 제구실을 못 하고 ‘말라비틀어져 가’ ─ 즉 고사하여 ─ 마침내 없어지게 된다는)을 배격하고, 오히려 혁명 후 국가는 강화된다는 이론으로 대체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일성 주체사상도 스탈린주의와 똑같이 주장한다.

스탈린주의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적 비폭력이 집약돼 있는 마르크스·레닌의 국가 고사 이론을 분쇄해야 했다.

이제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와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로 폭력 남용이 정당화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이란 노동하는 다수가 지배하는 소수를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에 폭력 사용이 최소한에 그칠 것이고 매우 한정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서방 열강들과 자본 축적 경쟁에 돌입한 스탈린주의는 국내 노동자·농민의 피와 땀을 쥐어짜고, 외국 공산당들을 이를 방위하고 변호하는 소련 국경 수비대로 만들기 위해 비폭력적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을 휴지통에 처넣어 버렸다.

그리하여 심지어 프랑스 공산당 소속 지식인 알뛰세르 같은 자는 ‘이론적 반(反)휴머니즘’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북한식 스탈린주의자들인 주사파는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북한과 중국·쿠바에서 자행되는 온갖 끔찍한 국가 폭력(예컨대 천안문 학살, 사소한 범죄자들에 대한 가혹한 형벌과 심지어 사형, 동성애자 박해, 민주적 권리 억압 등)을 역시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 해방과 노동계급 해방을 위해 헌신하는 투사들에게 왜 매번 경찰 첩자 또는 그 혐의자 구타치사 사건에 스탈린주의자들이 연루됐는지, 이것이 과연 순전한 우연 또는 우발적 사건인지 묻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불가피하게 폭력을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에 그것이 필요악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때 강조는 ‘필요’와 ‘악’ 모두에 놓인다. 혁명에 폭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요성’을 ‘미덕’으로 격상시켜서는 안 된다.

더구나 혁명가들이 폭력 활동에 나섬으로써 혁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투쟁이 누적되고 계급 적대가 더할 나위 없이 첨예해져 결국 비등점 또는 한계점을 넘을 때 비로소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 노동계급이 필요한 폭력 사용을 주저한다면 지배계급은 비할 데 없이 야만적이고 끔찍한 폭력을 피억압 계급들에게 대거, 주저 없이 사용할 것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혁명가들은 노동자 대중에게 폭력 사용을 호소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미덕으로 격상시키지 않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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