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여성 억압 가중시킨 서울구치소와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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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서울구치소에서 여성 재소자 K씨는 남성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정신분열 증세로 시달리다 끝내 자살을 기도해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 여성은 석방을 겨우 넉달 앞둔 상태였고, 돌아갈 가정과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이 여성은 구치소 직원들의 눈을 피해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니(의) 억울한 일 풀어줘. 아이들 곁으로 갈 일 얼마 안 남았는데 그게 가장 슬프다. 정말 숨쉬기가 힘들어” 라고 말하며, 성추행 후 무려 19일 동안 극심한 절망과 고립감에 시달렸음을 드러냈다.
남성 교도관은 가석방 심사를 담당하는 월등히 우세한 위치에 있었고, 심사를 받아야 하는 재소자 처지의 피해 여성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강제 성추행을 당했다.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면, 가해 교도관이 행한 성추행은 피해 여성을 껴안고 옷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 처벌받아 마땅한 범법행위였다.
그 러나 피해 여성이 구제를 요청했을 때 서울구치소와 지휘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교정청, 법무부는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되레 피해 여성을 회유·협박하며 그 책임을 덮어씌우려 했다. 서울구치소·서울교정청·법무부가 이 여성을 죽음의 골짜기로 내몬 것이다.
교 정당국은 성추행 사건 후 일주일이 넘도록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피해 여성이 심각한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가족들이 입원치료를 요구했는데도 묵살한 채 돈으로 ‘입막음’하려 했다. 피해 여성이 자살을 기도한 후에도 “성폭력 사건과 자살 기도는 무관하다”며 유서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은 또한 전국의 구금시설이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유사한 성추행 사례가 잇달아 폭로되고 있다.
3월 7일 국가인권위는 이 피해 여성 말고도 성추행 피해자가 3명 더 있었으며 가해자의 상습성으로 미뤄 피해자가 여럿 더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미 군산교도소에서도 4명의 여성재소자가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고 밝혔고,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수용자 인권실태조사를 봐도 여성재소자의 43.8퍼센트가 ‘구금생활 중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달라지지 않은 한국 감옥 현실
이번 사건은 수감시설의 경직되고 폐쇄적인 행정체계가 불러온 참극이다. 한국의 감옥은 ‘보안’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외부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극도로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인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 동안 한국의 지배 권력은 재소자들이 ‘죄값만큼 고통을 받아야 한다’, ‘너무 편하면 그게 어디 감옥이냐?’며 감옥 환경 개선에 국가예산을 투입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못마땅해 했다.
그래서 감옥의 의료실태는 끔찍하기 짝이 없고(재소자 1천 명당 의사 1명), 여성 재소자를 담당할 여성 교도관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진정한 ‘재활’을 도와 줄 전문인력은 전무한 상태다.
게 다가 한국의 행형 관련 법규들은 소장에게 무소불위의 재량권을 허용하고 있다. 재소자들의 최소한의 인권적 요구들조차 ‘소장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같은 재소자라도 사회적 지위가 높으냐(범털), 그렇지 않느냐(개털)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현격하게 달라진다.
감옥에 갇히는 재소자의 대다수는 피억압 대중의 일부다. 지배자들은 이들의 인권 개선에 관심이 없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 “감옥만큼은 확실하게 바꾸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고쳐지지 않고 있는 한국 감옥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보여 줬다.